주간동아 244

2000.07.27

인터넷 점쟁이들 떴다

익명성·편리성 이점 ‘사이버 占집’ N세대들로 문전성시

  • 입력2005-08-03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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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점쟁이들 떴다
    “디지털 도사님 안냥… 그 남자가 날 좋아할까여?” “애인이 바람을 피우는데 어떻게….” 인터넷 점보기 사이트 ‘디지털 역술방’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모두 ‘디지털 도사’와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인터넷 시대에 또 하나의 신종 직종으로 떠오른 ‘인터넷 점쟁이’. 그들의 세계는 최첨단 디지털 문명과 태고적의 샤머니즘이 공존하는 묘한 공간이다. 웹 공간의 ‘사이버 철학관’이라는 말이나 ‘디지털 도사’라는 애칭부터 뭔가 부적절한 느낌이지만, 점(占)도 시대의 변화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법.

    역학 분야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역술인부터 자칭 신내림을 받았다는 신세대 처녀 무속인에 이르기까지 인터넷 점쟁이들의 출신은 다양하다. 그러나 인터넷 문화의 특성상 사이버 철학관의 주고객은 성인층보다 10, 20대 초반의 N세대들이다.

    사이버 철학관은 상담자가 이메일을 통해 자신의 고민거리를 전달하고 역술인이나 무속인으로부터 직접 상세한 점괘를 받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역술 관련 웹사이트와 구별된다. 별자리점이나 토정비결, 명리점, 꽃점, 동전점 등과 같이 입력된 프로그램에 의해 결과가 도출되는 사이트가 아니라 철저하게 일대일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더 자세한 점괘를 요구하는 상담자는 직접 방문도 가능하다. 다만 대부분의 사이트가 유료로, 2만∼10만원의 복채를 은행에 입금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점괘를 알려준다.

    온라인에서의 점보기라는 것을 빼고는 골목 점집과 다를 바 없지만 인터넷이라는 익명성은 사이버 철학관에 신세대와 네티즌을 몰리게 하고 있다. 점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막상 점집을 찾는 것을 쑥스럽게 여기는 신세대의 습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



    사이버 철학관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사이트는 ‘디지털 역술방’(yuksul.

    com)이다. 디지털 도사의 무료사주 상담코너는 올 들어 4000여건의 상담 신청이 들어왔을 정도로 유명하다. 유료 사이트도 성명학, 기문둔갑 등 각 분야별로 12명의 사이버 점쟁이들이 전문 상담을 벌이고 있다. 명리점 담당 점쟁이 송병창씨(34)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94년 초부터 신세대 역학 연구소를 열어 ‘압구정동 키드’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처녀 도사로 알려진 김민정씨(29)는 점쟁이에서 일약 방송 스타가 된 경우. 김씨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녀가 운영하던 ‘김민정 21세기철학관’(kmj21.co.kr)의 주고객이 한국 인터넷 벤처의 요람인 ‘테헤란 밸리’의 기업인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부터. 실제 자신의 점집(철학관)도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한복판에 있다. 상담 내용도 어떤 벤처를 창업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얼마나 투자해야 되는지, 동업자와의 궁합은 괜찮은지 등 경영 컨설팅이 대부분이다. 최근엔 주식 투자 상담도 부쩍 늘었다.

    김씨는 “첨단 과학기술도 벤처 기업인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해결해 줄 수는 없으며 ‘벤처’라는 말 자체가 불안을 의미하고, 그들의 불안 속에서 점의 수요는 무한대로 창출된다”며 “사이버 점쟁이의 출현은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말한다.

    이들 인터넷 점쟁이 사이에도 경쟁은 치열하다. 최근 개설한 ‘역술일지’란 사이트는 상담자들을 모으기 위해 ‘100명 무료사주상담’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신세대 네티즌을 겨냥한 완전 무료상담 사이트도 등장했다. 이성수 사이버 도사의 무료상담사이트(ls2000.wo.to)는 지난 5월17일 상담 개시 후 두 달이 안돼 1000여건의 상담 신청이 몰렸다. 방문자가 1만명 수준에 조회수가 2만회를 넘은 것을 보면 신세대들의 점보기 열풍을 짐작할 수 있다.

    “이메일만으로 ‘느낌이 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날아온 메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보낸 이의 상황이 필름처럼 눈앞에 펼쳐지더군요.” ‘점보기’(jumbogi.pe.kr)의 운영자 옥균씨(40·무속인)의 말대로 점쟁이의 신기(神氣)가 과연 인터넷망을 타고 상담자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그러나 디지털 문명이 계속 진화하는 가운데서도 샤머니즘에 대한 인간의 향수가 존재하는 한 사이버 점쟁이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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