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0

2000.06.29

스타가 스타를 만든다

풍부한 필드 경험 치밀한 마케팅 접목…신인 발굴부터 교육까지 ‘완벽 조련’

  • 입력2006-01-31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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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가 스타를 만든다
    스타에 의한 ‘스타 마케팅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대중문화의 권력자로 군림하는 스타의 탄생은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기만큼 어려운 것이 사실. 스타가 철저히 대중의 기호에 맞춰 상품화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특성상 이제 스타는 ‘과학’과 ‘경험’의 유기적 결합체로 탄생한다.

    이 대열에 왕년의 스타 혹은 현재진행형 스타들이 활발히 참여하는 풍속도가 그려지고 있다. 과거 풍부한 인맥과 돈줄을 움켜쥔 매니저들이 스타 제조기로 각광받았다면 최근 들어서는 스타들이 자신의 ‘필드경험’을 십분 살려 스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

    이같은 움직임은 가요계에서 유달리 활발하다. 이는 연기자보다 가수의 생명력이 훨씬 짧기 때문이다. 데뷔 후 평균 4, 5년이 지나면 전성기를 지나 퇴조기에 접어드는 것이 국내 가수들의 현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기 은퇴한 가수들은 자기만의 노하우를 살려 후배 양성에 나선다. 가요계를 움직이는 음반제작-기획자 부분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10~20% 정도에 불과하지만 확산 추세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런 현상에 하나의 ‘전범’으로 꼽히는 이수만씨. 그는 1970년대 중반 대학생 가수로 인기를 누리다 미국 유학(UCLA 대학원)을 다녀온 뒤 1989년 음반기획사 ‘SM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그후 현진영에서 ‘Fly to the Sky’까지 인기 가수들을 양산하고 있는 중이다.

    이수만씨가 운영하는 SM 엔터테인먼트는 철저한 시장 조사와 기획력에 입각해 ‘히트 상품’을 만들어낸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이후 새로운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H.O.T를 비롯해 대다수 음반 기획자들이 여가수의 음반제작을 기피하던 1997년 당시에 ‘여성 가수’로 눈을 돌려 성공을 거둔 여성그룹 S.E.S가 그렇다.



    이수만씨는 스타를 만드는 데 있어 “그 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읽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문화 트렌드를 읽는데는 가수, MC, DJ로 20년 넘게 대중문화 한복판에서 활동한 연예인으로서의 경험이 큰 힘이 됐다는 것.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현진영의 음반들은 그의 마약 복용 스캔들 때문에 실패를 거듭했고, 세상물정에 ‘어두운’ 가수 출신이기에 경영상의 문제가 누적돼 회사 문을 닫을 뻔한 위기를 맞은 적도 많았다. 결국 음반 기획에서 홍보, 총무까지 도맡아하는 주먹구구식 운영으로는 성공이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1996년 H.O.T 탄생 이후 그는 프로듀서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대신 이씨는 자신의 ‘문화기업론’을 관철시키는데 주력한다. 국내와 해외에서 정기적인 오디션을 통해 쓸 만한 인재를 미리 발굴, 2∼3년간 철저한 트레이닝을 시켜 가수로서의 자질을 함양시키는 ‘조기 교육’과 발굴한 가수를 국제 경쟁력을 갖춘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해외 무대에 진출시키는 ‘문화수출’이 바로 그의 기업논리의 핵심이다.

    이수만씨 외에 80년대 인기 댄스그룹이었던 ‘소방차’의 정원관 김태형은 댄스그룹 N.R.G를, 김학래는 로커 김경호를, 김범룡은 보컬그룹 ‘녹색지대’를, 태진아는 성진우를, 구창모는 록가수 강형록을 인기가수 대열에 올려놓았다.

    70, 80년대의 구세대 가수들과 달리 90년대 이후의 신세대 가수들은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후배를 양성한다. 이들은 작곡 능력을 앞세워 프로듀서나 음반 기획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같은 움직임은 외국 팝계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마돈나는 ‘매버릭’(Maverick)이라는 자신의 레코드사를 설립해 무명에 불과하던 앨러니스 모리세트, 데프톤스, 솔라 트윈스, 클레오파트라의 음반을 제작해 빅 히트시켰다. 또한 미국의 힙합, R&B 가수인 베이비 페이스는 존 B. 등 후예들을 양성해 가수와 제작자로서 명예와 돈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우리 가요계에서는 박진영이 대표적인 케이스. 그는 가창력 뛰어난 여가수 진주, 최연소 댄스그룹 량현량하, 인기그룹 god를 발굴해 음반을 제작했다. 지난해 군 입대와 함께 잠시 가수 활동을 접은 그는, 가능성 있는 신인을 양성하는데 탁월한 감각을 발휘하고 있다. 후배 가수의 음반 제작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개발하고 발휘하는 기쁨을 맛보지만 고충 또한 만만치 않다고 토로한다.

    “진주의 경우 중-고교 시절 창을 배워서 기본기가 탄탄하고 성량이 좋았어요. 문제는 목소리에 ‘뽕짝기’가 배있어 이를 제거하는 게 관건이었죠. 량현량하는 워낙 어린 친구들이라 쉽게 혼낼 수가 없었어요. 타이르고 어르고…, 한 마디로 인격 수련의 과정이 함께 진행됐다고 할까. GOD 멤버들과는 거의 2년을 함께 합숙하면서 춤의 기본 동작부터 랩, 노래를 하나하나 가르쳐야 했고요.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지’라는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박진영에 앞서 90년대 신세대 문화를 창조해낸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 이주노도 각각 프로듀서 겸 제작자로 변신해 ‘지누션’ ‘원타임’ ‘영턱스클럽’ ‘허니패밀리’를 스타 반열에 입성시켰다. 이승환은 음반기획사 ‘드림팩토리’를 내세워 여가수 이소은을 스타로 만들었고, 올 상반기 화제를 모은 신인 여성그룹 ‘샤크라’는 룰라의 이상민(프로듀서), 디바의 채리나(안무), 탤런트 이혜영(코디네이터)이 공동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렇듯 스타에 의한 스타 마케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배경에는 ‘스타 탄생’에 있어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대중과 언론을 손쉽게 흡인하겠다는 의도가 깊숙이 깔려 있다. 무명에 가까운 신인들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데 스타의 이름 석자는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스타 쭛쭛쭛의 작품’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신인들을 접할 때 스타의 분신으로 여기며 묘한 친밀감을 느낀다. 또한 홍보의 절대적인 통로인 방송과 신문-잡지에서도 ‘써먹기’ 좋은 기삿거리로 이들을 즐겨 다룬다.

    기존 스타의 풍부한 경험이 유실되지 않고 이어진다는 점에서 신종 스타 마케팅의 미덕은 빛이 난다. 하지만 기존 스타의 스타일과 음악성이 신인에게 판박이로 대물림돼서는 곤란하다는 경계의 시각도 존재한다. 올 상반기 최고의 인기그룹으로 부상한 GOD의 창법과 래핑, 심지어는 무대 안무에서까지 ‘박진영 냄새’가 남에 따라 이 특출난 신인 스타그룹의 참신함이 반감됐다는 지적이 많다. 대중의 우상으로 떠오른 새내기 스타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조련’을 통해 익힌 익숙하고 세련된 테크닉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과 신선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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