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0

2000.06.29

주5일 근무, 끈끈한 정… ‘벤처’ 맞아

미국 인터넷업체로 넘어간 뒤 변화 물결…‘사람이 사는 회사’ 내세우고 분위기 혁신

  • 입력2006-01-31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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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5일 근무, 끈끈한 정… ‘벤처’ 맞아
    기업대상 인터넷전용선 제공사업을 하는 아이네트㈜가 최근 미국 인터넷회사 PSINet소속 ‘㈜한국PSINet’으로 이름을 바꿨다. 국내 인터넷 벤처기업이 외국인 회사에 통째로 인수된 것은 이번이 처음.

    6월부터 이 회사에선 잔잔한 혁명이 일고 있다. 테헤란밸리의 벤처기업들이 한국기업의 전통적 사내문화를 전면으로 부정하고 있는데 반해 이 회사는 한국의 벤처문화를 통렬히 뒤엎고 있는 것.

    6월16일 금요일 오후 7시. 서울 역삼동 ㈜한국PSINet의 최승희대리에게 다시 ‘2박3일의 휴가’가 찾아왔다. 평일 정시 퇴근, 토요일과 휴일은 무조건 쉰다. 최씨는 “주5일 근무제가 전격적으로 도입된 6월3일부터 내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죽기살기로 일에 미치자는 게 벤처정신은 아닙니다.” 이 회사 채승용대표는 “테헤란밸리에 진정한 ‘도전의식’이 있다면 주5일 근무제에 도전하라”고 권했다.

    호스팅사업부 이재현씨는 회사에서 마련한 ‘웹마스터강의’를 듣고 있다. 무료로 핵심적 부분만 1개월 속성코스로 가르쳐준다. 이씨는 “6개월 과정을 1개월로 줄여준 것은 ‘섬세한’ 배려였다”고 말했다. “벤처 다닌다고 모두 ‘컴퓨터 도사’가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을 소진해 버리기만 했다. 재교육도 근무의 연장선으로 봐주는 달라진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이런 변화들은 ‘사람이 사는 회사’라는 새로운 모토가 제시되면서 찾아왔다. 채대표는 이 말의 뜻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서 번 것은 한국에 다시 투자할 계획입니다. 직원들에게도 스톡옵션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톡옵션 많이 받는 게 직장의 최고 가치는 아닙니다. 벤처맨들의 이직이 잦은 것도 직장을 오직 돈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어울려 일하는 맛이 나는’ 직장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 회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원대상 설문조사. ‘사내 커뮤니케이션 통로가 별로 없다’ ‘직원들간 분위기가 삭막하다’ ‘비전도 없이 산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에 대한 해법은 신속하게 나왔다. 화초와 인상파 화가의 그림들이 각 층별로 일제히 배달됐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첫 조치였다. 직원들에게 제때 물주는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화초관리업무는 ‘아웃소싱’했다. 방음장치가 된 ‘DDR방’을 만들고 탁아소도 운영할 계획이다. 금요일 저녁의 술값은 모두 회사가 부담한다.

    이 회사는 또 외부에서 인력을 스카우트해 오는 직원에게 100만∼300만원의 포상금을 준다. 채대표는 “친한 친구와 함께 일하는 사무실이 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두번째 변화는 ‘영어’다. 테헤란밸리 벤처기업 직원들은 의외로 영어에 약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국회사로 바뀌면서 영어로 처리하는 업무가 크게 늘자 토종 벤처맨들은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이 회사 직원 140명 중 영어업무처리가 완벽한 사원은 60여 명에 불과하다.

    새로 생긴 풍속도 하나. 간부들의 데스크에 외국인들의 전화가 특히 많이 걸려온다. 간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전화가 오면 아무도 당겨 받지 않는다.

    지금은 80%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영어공부에 뛰어들고 있다. 마케팅담당 정혜승씨는 “외국과 연결되니 비즈니스에 훨씬 도움이 됐다. 컴퓨터만 잘하면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이제 테헤란밸리도 사업의 무대를 전세계로 돌려야 할 때라는 게 그녀의 견해다.

    ㈜한국PSINet은 한국 벤처의 ‘인간화’와 ‘세계화’의 첫 시험무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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