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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3백일간의 脫北 일기

브로커에 속고 배신에 울고

절박한 가족 상대 엄청난 돈 요구… 어려움 생기면 발 빼고 도주 속출

브로커에 속고 배신에 울고

브로커에 속고 배신에 울고
김명희씨 가족을 동남아 오지에 버리고 왔던 중개인 이씨가 지난 4월22일 김명희씨의 어머니 최현실씨와 기자를 만나 탈출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씨는 이씨가 ‘돈만 착복했다’며 고발할 뜻을 밝혔다.

90년대 중반 이후 급증하기 시작한 탈북자들의 한국행에는 조선족을 비롯한 현지 중개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 북한과 수교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는 물론 다른 제3국 공관을 통해서는 합법적 망명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개인이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제3국을 경유하는 탈출 루트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탈북자들에게는 커다란 구원이 된다. 게다가 최근 들어 탈북자들의 귀순 루트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형편. 96년 일가족 16명을 이끌고 대량 탈출을 감행했던 김경호씨가 이용했던 홍콩 루트는 당시만 해도 탈북자들에게는 한국행의 좁은문을 뚫는 파이프라인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당시 언론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상세한 루트를 공개하는 바람에 이 탈출로는 사실상 폐쇄되고 말았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베트남도 몇 년 전부터 언론을 통해 이 루트가 공개되면서 정부 차원의 물밑 협조가 깨지는 바람에 탈출로가 막혀버렸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 이렇게 귀순 루트가 제한되어 가면서 중개인이나 현지 안내인들의 몸값은 더욱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족의 부탁을 받고 제3국에서 상봉을 주선하거나 탈출 경로를 안내하는 것은 ‘한겨레상봉회’ 등 사설 단체들이 맡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 자격의 중개인들이 이 역할을 떠맡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들 중개인이 가족을 상대로 엄청난 돈을 요구하고 중간에 발을 빼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어 귀순을 희망하는 탈북자들이나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상처만 안겨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김경호씨의 딸 명희씨 일가족이 8개월간 4개국을 넘나들며 영구 고립 상태에 놓일 뻔한 것도 중개인 이아무개씨 때문이었다.

애초 중개인 이아무개씨는 서울의 김씨 가족을 찾아가 자신이 9명의 북한 주민을 탈출시킨 경력을 갖고 있다며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은 이 말을 믿고 그에게 몇 차례에 걸쳐 수백만원씩 총 2000만원 가량의 돈을 경비조로 지급했으나 이씨는 이들을 동남아 국경지대에 방치한 채 중간에 발을 빼 이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현지에서 만났던 명희씨 가족에 따르면 이씨는 이곳 은신처에 도착한 다음날 한국 공관에 들러 사흘 뒤 돌아오겠다고 한 뒤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다.

이씨가 주장했던 북한 주민 9명 탈출 성사 등 자신의 ‘실적’도 대부분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동남아 제3국 현지에서 만난 명희씨와 원주민들은 “중국에서부터 동행했던 이씨가 더 이상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이들 9명은 국경을 넘던 중 1명이 숨지고 8명은 현지 경찰에 잡혀 수용소로 넘어갔다’고 실토했다”고 말했다. 또한 현지 주민들은 “수용소로 넘어간 8명은 머지 않아 처형될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동남아 제3국을 떠난 뒤 3개월이 경과한 지난 4월22일 서울에서 기자와 만난 이씨는 탈출 과정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회피한 채 “명희씨가 사사건건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등 포악한 성격을 드러내 더 이상 동행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서울에서 보낸 돈을 착복한 것 아니냐는 가족의 주장에 대해서는 “탈출 과정이 워낙 험난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씨와 같은 중개인들이 아무리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하고 안내 임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더라도 가족 입장에서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민간단체의 한 관계자는 “탈북자들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이 이러한 브로커들의 폐해를 오히려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240호 (p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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