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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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2박3일 평양취재기… 믿기지 않는 사건의 연속, 눈과 가슴으로 ‘달라진 반쪽’ 확인

  • 입력2006-01-25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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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6월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 ‘충격’과 ‘감격’의 연속이었다. 평양에서 목격한 장면 장면은 가끔씩 ‘관찰자’로서의 위치를 망각하고 그 중심부로 몰입하게 하는 우를 범하게도 했다.

    평양행과 첫인상

    예정보다 하루 연기된 6월13일 오전 9시15분경, 드디어 수행원과 기자단이 탄 아시아나 특별기(1002편)가 활주로를 치솟아 올랐다. 오전 9시45분경, 기장의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10초 후면 특별기가 NLL(북방한계선)을 통과합니다. 3시 방향에 보이는 섬이 우리의 영토 백령도이고, 2시 방향에 보이는 곳이 북한의 장산곶입니다.” 일순간 기내에 정적이 흐르는가 했더니 곧 술렁거림으로 변했다.

    분단 반세기 만에 북으로 향하는 ‘하늘길’을 처음으로 여는 장본인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기자를 흥분으로 들뜨게 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울컥 올라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10여 분 후 “곧 순안공항에 도착합니다”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창 밖을 보니 북한의 산하가 엷은 구름 속에서 비교적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특별기가 순안공항에 굉음을 내며 안착했다. 기내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순안비행장을 출발해 숙소인 고려호텔까지 가는 30여 분의 길은 또다른 충격이었다. 진홍색 꽃가지를 들고 한복으로 차려 입은 평양시민들이 끝없이 늘어서서 열광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평양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끝없이 늘어선 시민들은 보통강변에서, 인민대학당 앞에서, 만수대동상 앞에서, 평양 탑 앞에서, 무엇에 홀린 듯 ‘김정일! 결사옹위(擁衛)!’를 쉼 없이 외쳐댔다. 버스의 앞뒤 창문을 번갈아 보니 마치 거대한 철쭉꽃 터널을 지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북측 안내원들은 “평양시민들이 얼마나 여러분들을 환영하는지 알겠지요? 평양시민이 220만명인데 어른들은 다 나왔다고 보면 될 겁네다”라면서 “여러분들이 이런 환영에 보답해야 합네다”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기도 했다.

    이미 북한을 다녀갔던 수행원이나 기자들의 전언과 서울에서 듣고 배운 것을 토대로 평양에서 느낀 첫인상은 ‘북한이 변하고 있구나’라는 것이었다. 아니 북한이 의도적인 연극을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박3일 동안 지내면서 그보다는 북한이 진정 변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훨씬 더 강하게 들었다.

    안내원이나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만났던 직원들이나 거리의 시민들 그 어느 누구로부터도, 북한을 방문했던 남쪽 사람들로부터 간접경험했던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폐지 등 대남비방이나 정치공세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통일에 대한 열정과 ‘김정일 장군님’에 대한 믿기 어려운 충성심만을 드러낼 뿐이었다.

    기자들을 1대 1로 안내했던 안내원들은 주요기관 간부들인 탓인지 남쪽의 정치문제에 대해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이회창씨나 이인제씨가 다음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하지요?”심지어 “지난번 총선에서 지역감정 때문에 김대통령이 졌지요”라고 물어 남쪽 사정에 도통한 사람들 같았다. 김대통령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평가도 기대 이상으로 긍정적이었다. “과거 박정희에게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 아니냐. 그런 점에서 호감이 간다. 김대통령은 북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김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우리와의 관계 개선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인 것 같다.”

    북한에 대한 달라진 인상의 중심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순안공항 영접에서부터 남측은 물론 세계인을 놀라게 한 이후 쉴 틈 없이 ‘원맨쇼’를 계속했다. 김대통령과 리무진에 동승한 채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한 것, 즉석에서 1차 정상회담을 가진 것, 다음날 목란관 만찬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파티’, 마지막 날 고별오찬석상에서 보여준 거침없는 행동들은 모두 충격적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기자는 운 좋게도 목란관 만찬에서 그와 악수하고 인사할 기회를 가졌다. 가까이서 본 경험과 TV중계, 그를 지켜본 다른 남측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위원장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진 인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솔직하고 소탈했다. 김대통령 앞에서 조금 어려울 법도 한데 그가 쏟아 내는 말은 거침이 없었다. 때로는 김대통령의 말허리를 자르기도 했고 선을 넘는 듯해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둘째, 대단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10여 년 동안 사실상 북한을 통치해온 인물이라는 점을 배제하더라도 그런 개인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셋째, 아는 게 많았다. 경제면 경제, 환경이면 환경, 음식이면 음식…. 상황에 맞게 새로운 화제들을 끊임없이 꺼냈다. 공부를 많이 한 것인지, 교육을 잘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대단히 유식했다.

    넷째, ‘우리식 사회주의’의 지도자답게 ‘우리 것’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최고인민회의 대회의장의 대리석을 당초 설계도를 바꿔 북한산으로 시공하게 한 것도 그렇고, 한 마디 한 마디에 우리 산하에 대한 애정이 묻어 나왔다.

    다섯째, 거침없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기본 예의는 깍듯했다. 눈치를 보지 않고 한참 얘기하는 듯하다가도 김대통령에게 “제가 경거망동한 것 아닙네까”라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고, 김대통령보다 반 걸음 정도 뒤떨어져 걷는 경우가 많았다. 연장자인 김대통령을 예우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결론적으로 김위원장은 ‘똑똑한 부잣집 외동아들’의 면모에 근접한 인물이었다. 그동안 남쪽 사람들이 알고 있던 김위원장의 모습은 허상에 가까웠다. 그것이 왜곡된 학습의 결과이든 제한된 정보 탓이든 어쨌든 우리가 알고 있었던 인물과는 달랐다. 그의 언행을 지켜보면서 언뜻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또하나 있었다. 남북한 내 강경파나 반통일세력에 의해 김위원장이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었다. 김위원장은 고별오찬석상에서 두 가지 비화를 소개했다.

    “내가 공항에 환영을 나가는 것을 김용순(노동당 대남)비서가 말렸는데 나갔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주변에선 빨간 불을 켠다. 내가 새총으로 빨간 불을 모두 깨뜨리면서 나가겠다” “국방위원회를 소집해 6·25가 10일 남았는데 휴전선에서 절대 비방하지 말라고 했다. 지시받은 군 수뇌부가 남쪽에서 안하면 안하겠다고 하기에 내가 화를 내며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고 했다. 서로 상대가 하면 나도 하겠다는 자세를 갖는다면 적대감을 갖게 되고 결국 비방하게 된다. 그러니 아예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 남측에서도 이렇게 해달라.”

    그 다음날 비무장지대에서의 상호비방방송은 사라졌다.

    가려졌던 북한의 이런 모습들을 대하면서 남쪽 사람들의 인식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북한에 대한 폄하와 왜곡, 질시, 두려움 등 편견과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김위원장과 북한이 보여준 긍정적인 면모들이 과연 태생적인 부정적 요소들을 상쇄할 수 있겠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었다.

    전력난에도 불구, 해저문 평양 하늘에는 선전탑의 강렬한 네온사인이 밤을 밝히고 있었고, 열광적인 환영의 행렬 속에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연 김위원장은 지금 ‘인민을 위한 정치’를 구현하고 있는가, 북한 인민들은 지금 ‘인간다운 삶’을 영유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물론 행복의 기준이라는 것이 다분히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 평등 정의 이런 것들이 보장되고 있는지가 사회를 평가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가치의 적용은 남쪽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남과 북이 모두 변해야 통일이 가까워진다’는 것이 평양에서의 2박3일이 기자에게 가져다 준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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