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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김강자종암서장

‘칼’ 빼든 여전사 “한다면 한다”

미아리텍사스와 ‘전쟁’ 선포한 김강자종암서장… “미성년자 윤락 절대 용납못해”

‘칼’ 빼든 여전사 “한다면 한다”

‘칼’ 빼든 여전사 “한다면 한다”
소한 추위가 찾아와 수은주가 영하 10도까지 곤두박질치던 1월7일 새벽 1시. 김강자서장(55)은 두터운 점퍼를 걸쳐 입고 집무실을 나섰다. 경찰차에 오른 김서장은 성북구 하월곡동의 속칭 미아리텍사스로 향했다.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미아리텍사스는 이제 한창이었다. 대낮 같이 밝은 가게 안에서는 반라에 가까운 여인들이 손짓하며 ‘오빠’들을 부른다. 맘에 드는 ‘영계’를 찾아 헤매는 취객들의 발길이 어지럽다.

동행한 경찰 간부들과 미아리텍사스를 순시하던 김서장은 갑자기 아가씨 대여섯명이 앉아 있는 가게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가씨들의 손을 잡고 나이 등을 물어본 김서장은 ‘은밀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밀실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두 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좁디 좁은 공간. 비릿한 내음이 풍기는 이곳에서 순간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오늘도 취객들은 미아리를 찾는다.

요즘 미아리텍사스 사람들은 심난하기 짝이 없다. 1월6일 종암서장으로 부임한 김강자서장이 미아리텍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김서장은 미아리텍사스의 미성년자 윤락행위를 뿌리뽑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곳 업주들은 그의 선전포고가 예사롭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고 있다. 김서장이 충북 옥천경찰서장을 지낼 때 이미 티켓다방의 미성년자 윤락행위에 대해 단단히 손을 보았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김서장은 옥천서에 부임하자마자 티켓다방의 실태를 파악했다. 생각보다 그 폐해가 심각했다. 옥천의 많은 다방들이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을 고용해 윤락행위를 시키고 있었다.



김서장은 미성년자의 윤락행위만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며 총력전을 벌였다. 형사들로 하여금 여관으로 차배달 나가는 종업원들을 뒤쫓게 해 윤락행위를 하는지 조사했다. 수시로 다방에 경찰관을 보내 미성년자 종업원들을 가려냈다. 그렇게 한 2개월쯤 지나자 기승을 부리던 티켓다방의 윤락행위가 고개를 숙였다. 업주들은 처음엔 으레껏 하는 단속으로 알았으나 ‘장난이 아니었다’. 업주들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처사라며 항의를 하기도 했으나 김서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미아리텍사스는 200여개 업소에 1000여명(경찰 추계)의 윤락녀들이 있는 국내 최대의 윤락가다. 그런 거대조직을 평정하기 위해 김서장은 3단계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첫째는 현장 파악으로, 김서장은 당분간 매일 미아리텍사스를 순시할 예정이다. 두 번째는 업주들에 대한 경고성 설득. 김서장은 지난 8일 업소 대표들을 종암서로 불러 미성년자 고용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전달하고 협조를 부탁했다. 세 번째는 강력한 단속. 업주들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경찰 5개 중대 병력을 풀어 텍사스촌 입구에 배치하고 ‘손님’들의 신원을 일일이 체크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매상이 크게 줄어들어 업주들이 자발적 정화에 나설 것이라는 계산이다.

김서장은 또 단속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강직하고 청렴한 사람 150여명으로 구성된 전담반을 만들 계획이다. 사실 김서장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업주와 경찰간의 유착관계 근절이 관건이다. 단속 정보의 유출, 고질적인 상납 비리 등이 온존하는 한 미아리텍사스 정화작업은 요원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김서장은 경찰조직 스스로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남성들은 너무 잔인하고 부도덕해요. 10대 소녀들을 상대로 성관계를 갖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업주들은 손님들이 ‘영계’만을 찾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모양인데, 우리 나라 남자들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김서장이 미성년자 윤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86년 서울경찰청 민원실장을 할 때부터. 미성년자를 고용해 영업하는 술집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보면서 이 문제 해결에 진력키로 했다는 것. 그는 95년 서울 노원서 방범과장으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칼’을 빼어들었다. 그런 노력은 양천서, 남부서를 거쳐 옥천경찰서의 티켓다방 단속으로 이어졌다.

김서장은 이번 경찰 인사를 앞두고 첫 번째 근무희망지로 종암경찰서를 선택했다. 두 번째는 강동서를, 세 번째는 남부서를 골랐는데 이들 모두 관내에 윤락가가 있거나 미성년자 매매춘의 무대가 되는 곳. 윤락가 단속에 ‘목숨을 건’ 김서장다운 선택이었다.

김서장은 단구(短軀)다. 그러나 태권도 3단에 뛰어난 사격술을 보유한 ‘무서운 여자’다. 눈매도 날카롭다.

전남 구례가 고향인 김서장은 조선대 가정학과를 졸업한 뒤 70년 12월 여경 공채를 통해 경찰에 투신했다. 당시만 해도 여경이 드물 때였는데 그는 왜 어렵고 힘든 경찰의 길을 택했을까.

“멋있잖아요? 저는 경찰 제복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사회악과 싸운다는 게 신나고 재미있어요. 그래서 주저없이 경찰이 되기로 했지요.”

71년 6월 순경으로 임용된 그는 광주공항 경비과에서 경찰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줄곧 여경의 선두주자로 성장한 김서장은 그러나 경찰 내의 뿌리깊은 여성 차별 때문에 서러움도 톡톡히 맛보았다.

“요즘은 많이 개선됐지만 제가 경찰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여경은 액세서리 정도로 취급했어요. 4년제 대학 나온 여경을 길거리에서 교통위반 스티커를 떼는 사람들 밑에 두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많았지요. 승진과 보직에서 여경은 절대적으로 불리했습니다. 여경들이 젊을 때는 귀여워해 주다가 조금 나이가 들면 천시하는 풍토가 있었거든요.”

그런 분위기에서 여성으로는 최초로 총경까지 올라가고 일선 서장을 두 차례나 지내고 있으니 김서장이 여간 녹록치 않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후배 여경들에게 ‘시어머니’로 통한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안주하려 드는 여경들에게 끊임없는 분발과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남자들과 똑같이 일직을 서고 일선 근무에 나서라고 권유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예외를 인정받다보면 정당한 권리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게 김서장의 생각이다.

“제가 여경순찰대장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당시 저는 남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여경들을 현장에 내보냈어요. 그랬더니 단속 실적이 훨씬 좋아지고 시민들의 평도 좋았어요. 남자들의 질시가 만만치 않았지만 제 소신대로 밀어붙였지요.”

김서장은 일선 서에 근무할 때도 힘든 부서를 자원,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준 ‘악바리’다. 95년 그가 노원서로 발령났을 때의 일. 윗사람들은 그에게 편한 부서를 제의했다. 그러나 김서장은 단호히 거부하고 방범과장을 자원했다. 방범과장은 밤늦게까지 근무하고 새벽 순찰도 나가야 하는 고된 자리. 또 방범과장은 방범대원을 포함해 무려 600여명의 부하를 거느려야 하므로 통솔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여자에게는 여간해서 그 자리를 맡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김서장이 고집을 꺾지 않자 경찰서장은 그를 방범과장으로 발령냈다. 그 뒤 본청에서는 두 달간 김서장의 행동을 몰래 감시했다. 그러나 ‘독한 여자’ 김서장은 보란 듯이 방범과장 업무를 수행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김서장은 요즘 웬만한 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언론 매체의 인터뷰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그녀의 행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김서장의 야심찬 계획이 성공을 거두려면 외부의 적과는 물론이고 내부의 반발과도 싸워 이겨야 한다. 업주와 경찰간의 오랜 유착관계를 근절시키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을 것이다.

30년 가까이 경찰생활을 한 김서장은 ‘검은 돈’을 받아본 적이 과연 없을까.

“유혹을 받아본 적은 물론 있지요. 그러나 자제했어요. 솔직히 말해 참 힘든 일이었지요.”



주간동아 2000.01.20 218호 (p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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