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9

2016.05.25

사회

비행시간 짧고 연봉은 갑절

한국 조종사들 모셔가는 중국…국내 항공사 근무 조건에 대한 반발도 이직 이유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5-24 16: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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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항공사로 이직한 모 선배가 말하더라. ‘현직 국적기 조종사들이 왜 중국에 안 오는지 모르겠다’고. 중국 항공사는 국내 항공사보다 비행시간이 짧고 연봉은 2.5배 높다고 들었다. 최근 석 달간 내가 아는 조종사만 10명 넘게 해외로 이직했다. 중국을 비롯해 해외 이직이 업계 트렌드인 것은 확실하다.”(한 국적기 조종사)

    국적기 조종사의 해외 이직이 가속화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내국인 조종사 148명이 해외로 이직했다. 각 항공사 통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에서 해외 항공사로 이직한 조종사는 2013년 15명, 2014년 5명에서 2015년 47명으로 급증했다. 아시아나항공에서는 2013년 3명, 2014년 6명, 2015년 15명의 조종사가 해외 항공사로 떠났다.

    국적기 조종사는 억대 연봉을 받는 고소득자다. 자녀 학자금을 지원받고 직계가족이 쓸 수 있는 항공권을 연 30여 매 제공받는 등 복지혜택도 풍부하다. 그럼에도 조종사의 해외 이직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에 대한 불만과 외국 항공사가 제시하는 매력적인 조건이 이들의 이직을 부추기고 있다.



    “연 1000시간 비행, 과로 유발”

    국내 조종사의 해외 이직이 가장 두드러진 나라는 중국이다. 지난 5년간 해외로 이직한 국내 조종사 148명 중 113명이 중국을 선택했다. 2015년 해외에 진출한 대한항공 조종사 47명 중 46명도 중국으로 떠났다.



    이유는 중국이 제시하는 근무 조건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항공사에서 제시하는 월급은 국내 조종사의 2.5~3배. 경력 10년이 넘은 한 국적기 조종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경우 세금을 뗀 월급이 1000만 원 이하다. 중국에서는 이 정도 경력이면 월급 2만~2만3000달러(약 2740만 원)를 주고 교통비와 주거지도 제공한다. 비행 안전수칙도 국내보다 철저하게 지킨다. 중국은 악천후 시 항공 일정을 취소하고, 항공기가 ‘쾅’ 소리를 내며 착륙하는 하드랜딩(hard landing)을 방지하는 데 한국보다 더 엄격하다고 들었다. 해외 현지에서도 4성급 이상 호텔에 머물게 한다. 반면 국내 항공사 직원들이 체류하는 해외 호텔은 모텔 수준이다. 최근 한 외국 호텔에서는 국적기 소속 여승무원이 샤워하는 도중 도둑이 객실에 침입해 유니폼을 훔쳐간 사건도 있었다. 그만큼 보안이 불안하고 질 낮은 숙소를 제공하다 보니 직원들 불만이 극대화한 까닭도 있다.”

    국내 항공사의 긴 근무시간도 조종사 이직을 부추긴다. 전 세계 공통으로 적용되는 항공법은 조종사의 연 비행시간을 1000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조종사가 조종 임무를 마치고 비행기로 이동하는 시간(편승시간)은 항공법의 제한을 받지 않고 각 항공사 노사 간 협상으로 결정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각각 연 50시간, 100시간의 편승시간을 규정해놓아 조종사들의 비행 및 편승시간은 각각 1050시간, 1100시간에 달한다.

    조종사들은 “긴 근무시간이 안전 운항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내에선 조종사가 연 1000시간을 비행하려면 매일 김포-제주 구간을 2번 왕복하는 비행을 일주일 5회씩 1년간 쉬지 않고 해야 한다. 하루에 김포-제주를 2번 왕복하려면 오전 6시 출근해 점심시간이나 휴식 없이 10시간 이상 계속 근무해야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태평양을 넘는 장거리 비행을 할 경우 밤샘을 해야 하고 시차도 커 해외항공사의 비행 환경에 비해 열악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연 1000시간에 육박하는 비행 일정을 소화하고, 비행 준비 및 다른 지상 근무에 별도 훈련도 해야 해 실제 근무시간은 훨씬 길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50시간은 조종 근무가 아니라 다른 노선 운항을 위해 객실에 앉아 비행하는 시간이며, 2012년 노동조합과 합의한 내용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해외 수요 지속될지는 미지수

    한편 국내 항공시장은 지난 5년간 항공교통량 기준으로 연평균 6% 이상 성장하고 있다. 조종사도 2012년 4522명에서 2015년 5280명으로 증가했다. 업계는 올해 이후 매년 400여 명의 신규 조종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종사들은 왜 해외로 떠나는 걸까. 아시아나항공 한 조종사는 “항공사들이 외적인 규모만 키웠지 내적인 조직문화는 별로 개선하지 못했다. 조종사들의 항의가 빗발쳐도 각 항공사는 ‘아직은 버틸 만하다’는 생각으로 근무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있다. 특히 부기장급 조종사의 공급이 충분하고, 외항사로 떠나는 직급은 대부분 기장이기 때문에 국내 항공사의 위기의식이 덜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공사들이 마냥 안심할 상황은 아닌 듯하다. 대한항공의 경우 진에어, 이스타항공 등 국내 저비용항공사로 이직한 조종사가 2013년 6명, 2014년 11명에서 2015년 75명으로 늘었다. 저비용항공사에서는 대형항공사에 비해 기장으로 빨리 승진할 수 있고, 기장으로서 일정 시간 이상 비행하면 해외 항공사로 진출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즉 국내 저비용항공사는 조종사에게 ‘해외로 이직하기 전 거치는 관문’이 된 것이다. 대한항공 한 조종사는 “예전에는 정년을 앞둔 50대 기장이 주로 이직했는데 요즘엔 30대 후반~40대 초반 부기장의 이직이 부쩍 늘었다. 장기적으로 해외 진출을 내다보고 이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종사의 해외 이직이 장기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특히 중국은 현재 외국인 조종사를 계약직으로 채용 중이지만 곧 중국인 조종사가 그 자리를 메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조종사의 해외생활 적응이 쉽지 않다는 것도 이유다. 아시아나항공 한 조종사는 “해외 항공사로 이직한 조종사 중 일부는 ‘월급 받는 날만 행복하고 나머지 날은 쓸쓸하다’고 한다”면서 “사람이 돈만 갖고 사는 게 아니잖나.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언어, 문화가 다르기에 생활 측면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측은 “장밋빛 기대를 품고 해외 항공사로 이직했다 실망하고 국내로 되돌아오는 조종사들도 있다. 특히 중국은 항공사 규모를 빨리 키워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 고액 연봉을 제시하지만, 그 외 여러 근무 조건이 아직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종사들의 이직이 장기적으로 국내 항공산업의 질을 떨어뜨리고 항공보안상 기밀을 유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호일 중원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국내 항공산업계가 조종사의 애사심을 키우거나 더 높은 보수 및 복지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조종사의 근무를 ‘이윤’으로만 간주하면 중견 조종사의 해외 이직은 증가할 테고, 국내에는 고령 및 신입 조종사만 남아 이들의 소통 문제가 안전 운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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