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9

2016.05.25

그림 읽어주는 남자

이인성의 ‘여름 실내에서’

대구가 사랑한 천재 화가

  • 황규성 미술사가·에이치 큐브 대표 andyfather@naver.com

    입력2016-05-23 09: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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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 화가, 조선의 고갱 이인성을 아십니까?’ 2012년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최된 ‘鄕(향),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소개하는 한 기사의 제목이었습니다. 국민화가로 꼽히는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백남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인성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이인성(대구), 박수근(강원), 이중섭(평남), 장욱진(충남) 화백은 각각 1912, 14, 16, 17년에 태어났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미술학도를 지향했지만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이는 이인성이었습니다. 그는 대구에서 작은 음식점을 하는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지만 집안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어느 일요일, 이인성이 부모 몰래 야외 스케치를 하고 돌아왔더니 아버지가 붓을 부러뜨리고 화구를 부숴버렸다고 합니다. 어린 이인성은 놀라서 그림만 가지고 달아났는데, 나중에 이 그림이 ‘세계아동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했고 이후 국내 미술상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습니다.

    이인성의 천부적 재능을 높이 산 대구 유지들의 도움으로 그는 일본 유학을 떠납니다. 도쿄 한 크레용회사에 취직해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태평양미술학교(야간부)에서 공부했습니다. 다행히 회사 사장도 그의 열정과 재능을 알아보고 지원해 그는 미술 공부에 좀 더 매진할 수 있게 됩니다.



    그 후 이인성은 17세에 ‘조선미술전람회’(선전·鮮展)에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12년간 출품해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고, 일본 ‘제국미술전람회’(제전)에서 특선을 차지했으며, 25세에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선전 추천 작가가 됩니다. 이 엄청난 일들을 20대에 전광석화처럼 성취한 이인성은 어느덧 많은 이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저명인사가 됩니다. ‘당시 선생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해 민족의 자랑이 됐던 손기정이나 무용가 최승희의 인기에 못지않을 만큼 미술 분야에서 명성이 높았다’는 평가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화가로서 승승장구하던 이인성은 6·25전쟁이 일어난 해 어이없는 총기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나이 38세였습니다.  

    ‘여름 실내에서’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작가가 23세인 1934년 그린 것으로, 햇빛이 투명하게 비치는 창 앞의 실내 정경을 묘사했습니다. 이인성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밝고 명쾌한 색감, 세련된 분위기와 구도에 빠져 잠시 일을 잊고 멍하게 서 있던 기억이 납니다. 레이스 테이블보가 드리워진 탁자, 의자와 쿠션, 식물 등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소품들로 가득한 실내 한쪽에 가지런히 놓인 색동 고무신이 시선을 끕니다. 일본 부르주아 집 안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데 거기에 놓인 고무신이 한국적 색채를 더합니다. 또한 청색, 녹색, 황색, 적색 등 화려한 원색을 자유롭게 사용한 선명한 색채감을 통해 이인성이 왜 ‘수채화의 대가’로 불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인성 작품을 소장한 사람은 주로 대구·경북 출신 유지들입니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인들의 도움으로 미술을 공부한 만큼 이인성은 대구를 대표하는 작가로 기억됩니다. 현재 대구 북구 산격동에 ‘이인성 사과나무 거리’가 조성돼 있습니다. 경기 수원시 ‘나혜석 거리’,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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