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4

2016.02.03

책 읽기 만보

그의 노래가 있음에 철학이 있네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02-02 10: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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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1월 6일 서른두 살 짧은 생을 마친 가수 김광석. 얼마 전 그의 20주기를 맞아 추모제와 공연, 특별 방송이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95년 6월 29일로 기록된(공교롭게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난 날) 김광석의 마지막 콘서트 영상을 반복 재생하며 가슴 시린 그의 목소리에 젖어든다. ‘김광석 오마쥬 : 나의 노래’ 앨범을 제작한 최성철 페이퍼레코드 대표는 19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마스터피스를 정리한 책 ‘청춘의 노래들’에 이렇게 썼다.
    “1980년대, 20대. 그 시대에는 20대라는 이유만으로도 괴로웠던 시절이었다. 크게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던, 떠나간 사랑과 보이지 않는 미래에 좌절하며 소리 죽여 울던 밤. 우리는 기댈 무언가가 필요했고 누군가의 위로를 간절히 원했다. 그때 김광석의 노래가 있었다.”
    김광식, 김용석 2명의 철학자가 김광석을 추모하는 방법은 ‘김광석과 함께 철학하기’다.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김광식 교수는 강의 첫 시간에 ‘거리에 가로등 불이 하나 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로 시작하는 노래 ‘거리에서’를 들려준다. 그는 우리가 삶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 또는 가치라고 믿는 소중한 것들이 한순간에 ‘꿈결처럼’ 덧없이 변하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꿈결의 철학’이라 명명한다. 그 반대쪽에는 독단과 집착으로 나타나는 ‘반(反)꿈결의 철학’이 있다. 이제 ‘꿈결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철학’으로 넘어가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 경계(중용)를 꿈결처럼 넘나들며 사는 라이프스타일이 바로 ‘행복’이라고 결론짓는다. 김광식의 ‘김광석과 철학하기’는 ‘거리에서’와 행복의 철학 등 총 12강으로 구성돼 있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의 ‘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는 ‘이등병의 편지’로 시작한다. 이 노래를 젊은 남자가 입영 전야에 또는 군에 막 입대해 부르는 노래 정도로 기억하면 절반만 이해한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 모두가 ‘인생 이등병’이기에 이 노래는 입영 노래가 아니라 인생 노래”라고 했다. ‘서른 즈음에’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또 어떤가. 두 곡 모두 삶의 한계를 노래한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모든 것을 변하게 하고, 태어나면 소멸하게 하는 한계, 그 야속한 한계, 곧 시간의 한계를 노래한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서른 즈음에)의 노랫말은 그래서 애잔하다. 김 교수는 텍스트로서 노래뿐 아니라 음유시인, 핏덩이를 입에 물고 노래하는 낭만가객으로서 그의 소리까지도 철학 대상으로 삼는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던 그의 음악은 이제 추억이 되고 아름다운 슬픔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노래를 들을 때면 여전히 그와 함께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그는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최성철의 ‘청춘의 노래들’ 가운데)



    율곡의 경연일기
    이이 지음/ 오항녕 옮김/ 너머북스/ 656쪽/ 2만9000원
    경연(經筵)이란 왕과 신하가 함께 읽고 토론하며 공부하는 제도로 강의를 마치면 국정 현안을 논하기도 했다. 율곡은 1565년(명종 20) 7월 문정왕후의 죽음을 시작으로 1581년(선조 14) 11월 성혼이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기까지 17년간 경연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록했다. 오항녕 전주대 교수는 정확하고 쉬운 번역으로 율곡의 경세론을 전할뿐 아니라 ‘깊이 읽기’와 ‘해제’를 통해 ‘난세에 읽는 정치학’으로서 ‘경연일기’를 소개했다.



    오리지널스
    애덤 그랜트 지음/ 홍지수 옮김/ 한국경제신문/ 464쪽/ 1만6000원
    이 책에서 ‘originals’는 대세에 순응하지 않고, 시류를 거스르며, 구태의연한 전통을 거부하는 독창적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와튼스쿨 교수인 저자가 ‘독창적 리더’들을 분석한 결과 실패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옆에서 등 떠밀어 억지로 책임을 떠맡고, 마감에 닥쳐서야 겨우 일을 완성하는 미루기의 달인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들의 차이는 도전에 직면해 얼어붙거나 나약해지지 않고 어떻게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데 있다.





    0 이하의 날들
    김사과 지음/ 창비/ 256쪽/ 1만4000원
    ‘나는 나를 개처럼 사육했다.’ 10대 후반 일기에 이렇게 쓴 소녀는 2005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어 장편소설 ‘미나’ ‘풀이 눕는다’ ‘천국에서’로 비관적이고 묵시론적인 세계관을 보여줬던 작가가 20대를 마무리하며 산문집을 펴냈다. 1부 ‘읽다’와 2부 ‘무엇을 쓸 것인가’는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며, 3부 ‘망함에 대하여’와 4부 ‘우리들’, 5부 ‘폐쇄된 풍경’에서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여섯 빛깔 무지개
    임근준 외 지음/ 워크룸프레스/ 608쪽/ 2만 원
    남색이 빠진 여섯 빛깔 무지개는 성소수자(LGBT·남녀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의 영문 이니셜)를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 기호다. 이 책은 2014년 ‘한국에서 LGBT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진행돼 화제를 모았던 팟캐스트 19편을 엮은 것이다. 동성애자의 연애와 라이프스타일, 동성혼 법제화, HIV·에이즈, 성전환, 게이와 레즈비언의 하위문화, LGBT 인권운동 등의 이슈를 재기발랄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나를 빛나게 한 두 번의 도전
    조우상 지음/ 새녘/ 368쪽/ 1만5800원
    2011년 일본 사법시험에 한국 청년 3명이 나란히 합격해 화제가 됐다. 그중에는 고교 졸업 후 일본 유학을 떠나 게이오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조우상 씨도 있었다. 조씨는 지난해 11월 한국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153명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건국 이래 첫 한일 사법시험 동시 합격자라는 영예를 얻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만의 공부법을 중심으로 한일 사법시험의 차이점 등을 소개했다.



    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에 가라
    배국환 지음/ 나우린 그림/ 나눔사/ 240쪽/ 1만 3000원
    ‘을미년 축시는 푸르고 검었다.’ 1895년 10월 경복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됐다. 일명 ‘여우사냥’의 현장인 건청궁 옥호루에 서서 저자가 읊은 시의 첫 구절이다. 경제관료 출신인 저자가 10여 년 전부터 문화유산답사를 해온 결과물 가운데 28곳을 골라 책으로 엮었다. 우리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 아니라 저자의 솔직한 감회를 감상시와 에세이로 접할 수 있다.



    정신의학의 탄생
    하지현 지음/ 해냄/ 428쪽/ 1만9800원

    “당신의 위궤양 증상은 어린 시절의 구강 의존 욕구가 적절히 해소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서 발생한 것입니다.” 속이 쓰리다고 호소하는 환자에게 의사는 정신분석을 권한다. 이 책은 ‘마음의 병’을 고치는 학문으로서 정신의학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고 거식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사이코패스 같은 질환이 치료의 대상인지 문화의 산물인지 살펴본다. 네이버캐스트 연재 시 조회 수 440만 회를 기록한 화제의 글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
    다비드 에버하르드 지음/ 권루시안 옮김/ 진선북스/ 336쪽/ 1만4800원

    스웨덴 정신의학자이자 여섯 아이의 아빠인 저자가 ‘애착이론’에 기반을 둔 극단적인 아동 중심 육아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그에 따르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떼를 쓰고 행패를 부리는 버릇없는 아이가 느는 것은 잘못된 부모의 훈육 탓이다. 절대 아이와 타협하지 마라. 더는 아이에게 끌려다니지 마라.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마라. 육아 전문가를 믿지 마라. 그러나 저자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쉽지는 않을 듯.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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