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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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사초남’ 리포트

“우리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꼰대”

풍요로운 80년대 관통한, 결코 평범해질 수 없는 ‘두 번째 스무 살’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l.com

    입력2016-02-01 16: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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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요. 제가 그다지 일반적인 40대는 아니라서 말이죠.” “딱 그 또래긴 한데, 그렇다고 제가 딱히 X세대였던 건 아니거든요.”
    ‘40대가 된 X세대’들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인터뷰를 청했을 때 그들에게서 들었던 공통적인 말은 스스로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던 그들이 스스로에게 내린 이상한 결론. 모두가 일반적이지 않다고 하니, 그렇다면 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40대들을 인터뷰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어차피 20여 년 전 스무 살들이 X세대라 불리던 것도 기성세대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반적이지 않은 일’들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재주를 지녔기 때문이었으니까.



    이기적이고 싶지 않은 개인주의자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기를 직접 경험한 세대죠. 대한민국 호황기의 막차를 간신히 탔던 세대이기도 하고요. 윗세대와 공통점이라면 그나마 학생운동의 끝물을 경험했다는 정도? 그 덕에 지금의 20대보단 높은 사회 참여의식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회문제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젊은 세대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우리보다 훨씬 힘겨운 시대를 견디며 살고 있으니까요. 제가 지속적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려 노력하는 이유도 저 스스로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음 세대에게 최악의 상황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박종인(43) 씨는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독신남이다. 스스로를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 칭하는 그는 자신의 주거 공간 곳곳을 취미생활에 최적화된 구조로 꾸몄다. 닌텐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 공간과 가정용 빔 프로젝터가 설치된 영화감상 공간, 그리고 작은 미니바도 마련해놓았다. 그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소주를 진탕 마시는 것보다 컬렉팅해둔 고급 술을 한 잔 마시는 것에서 더 큰 위로와 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얼핏 은둔형 외톨이가 아닐까 의심됐지만 그는 학창시절에도, 지금도 교우관계는 매우 좋은 편이라고 잘라 말한다. 학창시절 노래동아리 회원이던 그는 최근 케이블TV방송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도 출전했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예선 탈락이었지만.
    동갑내기 남편과 유기견 두 마리를 키우며 살고 있는 이지영(43) 씨는 딩크족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그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결정에 대해 남편도, 자신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녀 양육에 드는 엄청난 비용과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살아가기보다 주말마다 남편과 취미생활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쪽이 삶의 질을 훨씬 높일 수 있는 선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없다고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새로운 학교로 발령받을 때마다 왜 아이가 없는지 꼬치꼬치 캐묻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했죠. 바로 윗세대까지만 해도 부부가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그나마 근래에 들어 인식이 조금 나아진 것 같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무분별한 간섭과 사생활 침해는 여전히 스트레스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과 다른 삶의 가치를 지닌 기성세대나 젊은 세대에 대해 특별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보편적이지 않은 삶을 선택한 이상 남이 나와 다르다고 뭐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꼰대’가 되고 싶진 않지만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회사원 이현섭(43) 씨는 올해 부장 승진이 내정된 상태다. 그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지금의 40대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꼰대’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어느 정도 책임 있는 위치에 서게 됐지만 이전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윗사람에게도 따지고 개기고 그런 마인드가 자리 잡은 첫 세대가 아닐까 싶어요. 바로 윗세대까지만 해도 윗사람 말이라면 일단 고개 숙이고 수긍하는 마인드가 컸잖아요. 그래서인지 또래 회사원을 보면 스스로 ‘나는 윗세대와는 다른 꼰대가 될 거야’라든가 ‘나는 그 사람들이랑은 달라’라는 의식이 있는 듯해요. 이전 세대가 아랫사람에게 대접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세대였다면 우리는 적어도 윗사람이니 당연히 대우해줘야 하고 대접받아야 한다는 그런 것들에 대해 일정 정도 거부감이 있는 거죠.”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던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신문에 한글식자와 가로쓰기를 도입한 일을 꼽았다. 편집과 디자인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기존 세로편집과 한자 중심의 식자체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인쇄 방식은 물론 기계까지 바꾸는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했다. 각 대학 학보사들이 지역 인쇄소를 들쑤셔가며 식자체계의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내부적으로는 별생각 없이 사용하던 한자어들을 원고에서 덜어내고 한글로만 된 기사를 작성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딱딱하고 지루한 기사문에서 벗어나고자 이전 신문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재미있고 참신한 기획과 문체에 목숨을 걸었다.
    출판사 편집장 김은주(41) 씨는 편집장이 되고 나서야 후배들과의 세대 차이를 제대로 경험했다고 털어놓았다.
    “주말에 급한 일이 생겨 직장 후배에게 전화했는데 받지 않더라고요. 어찌어찌 혼자서 겨우 해결하고 월요일에 출근했는데 후배가 제 전화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거예요. 근무시간 외에는 업무 관련 전화를 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었던 거죠. 우리 세대만 해도 상사가 전화하면 싫더라도 받거나, 받지 못했을 경우 그다음 날 이러저러해서 전화를 못 받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후배들은 그러지 않더라고요. 당혹스럽긴 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상황이야 어찌됐건 근무 외 시간에 전화를 한 건 제 잘못이고,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그러면서도 그는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자신으로서는 선배들에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박준우(42) 씨는 40대에 대해 ‘머리로는 다음 세대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윗세대와 많이 다르지 않은 세대’라고 자평했다.
    “예전에 선배한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자기 세대에 가장 똑똑한 사람들은 죄다 학생운동을 했는데 너희 세대에 가장 똑똑한 애들은 죄다 고시 준비를 하거나 의사가 되려 한다고 말이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선배 말이 틀렸더라고요. 우리 세대에 정말 똑똑한 친구들은 죄다 영화판에 뛰어들었거든요. 선배는 윗세대의 시선으로 우리를 봤을 뿐, 우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 걸 꼰대들의 시선이라 본다면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우리는 정말 다음 세대들을 제대로 이해한 걸까요? 제가 보기에 우리 다음 세대의 똑똑한 친구들은 죄다 고시공부를 하거나 의사가 되려고 하는 거 같은데 알고 보면 그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지방 국립대 교수인 조선희(43) 씨는 서른아홉에 결혼하고 첫아이를 출산했다. “30대 후반, 40대에 첫 출산을 경험하는 것도 우리 세대가 처음이 아닐까 싶어요. 결혼이 필수가 아니란 인식이 생겨난 것도 우리 세대부터고요.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싱글로 살았을 거라 생각해요. 그 덕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아들을 얻었지만 나이가 많은 만큼 불안한 것도 사실이에요. 아이가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고 올바르게 자라길 바라지만 그러기 위해선 저희 부부 또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하니까요.”





    불안한 미래, 그래서 현재를 즐긴다

    그는 최근 지인들과 뜻을 모아 지역에 흙집으로 된 공동체 마을을 짓기로 했다. 모두가 서울살이에 지쳐 귀촌 아닌 귀촌을 택한 사람들이다. 물론 여기에는 건축가인 남편의 힘이 가장 컸다.
    “우리 세대는 한국 사회에서 문화적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세대로 기억될 거예요.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어디서나 쉽게 공연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돈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혜택이 널려 있었죠. 새롭고 신선한 시도도 많았고요.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너무 비싸고, 천편일률적이라고 할까요. 영화관은 대자본이 투입된 영화들에 잠식된 지 오래고, 지방은 그 편차가 더 심해져 보고 싶은 영화는 아예 개봉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저부터 주말이면 영화관을 찾는 대신 집에서 이동통신사 포인트로 볼 수 있는 영화를 검색하니까요.”
    그와 친구들이 준비하는 공동체 마을은 서울 중심, 자본 중심으로 고착돼버린 삶의 양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세무사 전재한(40) 씨는 지금의 40대를 해체의 세대라 표현했다.
    “우리 세대는 풍요로웠던 1980년대와 그 풍요가 일순간에 무너진 외환위기를 모두 겪은 세대입니다. 윗세대와 달리 부모를 부양하고 다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책임면에서는 다소 자유로워졌지만 상대적 박탈감과 콤플렉스는 매우 큰 세대이기도 하죠. 40대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키덜트 문화를 단순히 개인의 취향 또는 문화적 향수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외형상으론 20년 전보다 더 풍요로운 시대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TV나 잡지 등에서 광고하는 명품, 비싼 자동차를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나머지들은 그보다 훨씬 저렴한 장난감 자동차, 인형 등을 구매하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죠.”
    그는 아이들을 재운 후 아내와 함께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주말 저녁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대출금은 거의 다 갚았고,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며, 아내와 공유할 수 있는 취미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아는 한 평범한 40대들은 자신처럼 속 편한 소리를 할 수 없을 거라고 걱정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쥐꼬리만한 월급에 대출 이자를 갚느라 허덕이거나, 아이들 성적에 목을 매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들이 스스로를 ‘평범하지 않은 40대’라 칭한 이유는 다양했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아이를 낳지 않아서, 결혼을 너무 늦게 해서, 혹은 여느 40대처럼 아등바등 살지 않아서 등등. 또는 과거 X세대의 대표격으로 지칭되던 ‘오렌지족’과는 거리가 먼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자신은 X세대도 아니라거나, 문민정부 이전 대학문화를 경험한 세대는 엄밀히 신세대라 부르기 힘들다는 답변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시대의 단물을 쭉쭉 다 빨아먹은 세대’로 지칭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적어도 우리는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이 통했던 세대예요. 하지만 다음 세대에겐 그런 얘기가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죠.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게 없는데, 어떻게 너희가 겪는 고통이 당연한 거라 말할 수 있겠어요.”
    인터뷰에 응했던 또 다른 40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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