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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돌변이 섬뜩한 이유

코로나19 시대의 생명정치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트럼프의 돌변이 섬뜩한 이유

3월 17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오래 전부터 알았다고 강변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3월 17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오래 전부터 알았다고 강변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코로나19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태도가 돌변했다. 한동안 미국에선 코로나19를 걱정할 필요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이 ‘코로나 포비아’를 부추긴다는 의심이 들만큼. 

올해 1월 2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다. 달력상으로 한국의 첫 확진 판정자가 나온 날짜와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이틀 뒤인 1월 22일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되는 거 아니냐”는 CNBC 기자의 우려에 이렇게 답했다. “절대 아니다. 우리가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 중국에서 온 사람 딱 한 명이다. 곧 괜찮아질 거다.” 2월 27일(확진자가 57명)에는 “곧 사라질 겁니다. 딱 하루 만에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3월 7일(확진자 335명, 사망자 17명)에는 수도인 워싱턴 DC까지 전염이 우려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니다. 전혀 걱정 없다. 우리는 잘 해내고 있다”라고 답했다.


트럼프의 변신은 무죄?

데비 벅스 미국 백악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조정관이 3월 2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데비 벅스 미국 백악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조정관이 3월 2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그러던 그가 3월 16일 돌변했다. 하루 사이 867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누적 사망자가 60명까지 늘자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비상사태가 여름이 끝날 때까지, 혹은 그보다 더 늦게까지 지속될지도 모른다”고 발표했다. 다음날인 3월 17일 기자회견에선 두 달 만의 태도변화를 지적받자 “나는 항상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봐왔다. 그 전의 나와 어제의 나 사이엔 별 차이가 없다”며 자신의 발언을 왜곡한 언론이 문제라는 주장을 늘어놨다. 급기야 “나는 팬데믹 선언이 나오기 오래 전부터 팬데믹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까지 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이 발표된 것은 3월 11일이다. 

트럼프의 말 바꾸기가 어디 한두 번이냐며 웃고 넘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의 사태전개를 보면 석연치 않다. 코로나19 방역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거꾸로 국민 을러대기로 선회한 것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3월 30일 데비 벅스 미국 백악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조정관은 미국 NBC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가 완벽하게 대응한다 해도 10만~20만 명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한 미국인 사망자 3000명의 65배가 넘는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란 폭탄발언이었다. 벅스 조정관 발언이 나온 30일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실업률이 32.1%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약 47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1929년 대공황 때보다 더 심각한 사태를 낳을 수 있다는 발언이 백악관과 미국 정부기관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戰時대통령 트럼프?

기자회견 중인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AP=뉴시스]

기자회견 중인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AP=뉴시스]

이런 상황전개를 토대로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낙마를 기정사실화하는 사람이 많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대공황의 여파로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집권이 이뤄졌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공황이나 전쟁 같은 극한상황은 독재자(스토롱맨)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트럼프 역시 3월 18일 “전시(戰時) 대통령”을 자임하며 현 상황을 “중국 바이러스에 대항한 우리의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2차 세계대전 상황을 언급하며 “이건 보이지 않는 적, 가장 힘든 적과의 전쟁”이기에 “함께 희생해야 한다”고도 했다. 전시 상황에 준하는 위급한 상황이므로 최고사령관인 자신을 중심으로 국론을 모아야한다는 이야기다. 스트롱맨들이 위기상황 때마다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꺼내드는 전형적 수사다.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집요하게 부르는 것 역시 내부의 불만을 외부(중국)로 돌리려는 꼼수다. 

국가적 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선별적으로 적용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위험신호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27일 연방정부의 의료물자 부족 사태에 대한 늑장 대응을 비판한 주지사 두 명을 거명하며 연방정부의 지원에 차별을 두겠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제이 인슬리 워싱턴 주지사와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는 야당인 민주당 소속으로 트럼프의 코로나19 대응조치에 불만을 토로했던 인물.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짜르에 임명된)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내게 감사하지 않는 주지사와 얘기하는 건 시간낭비니 전화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3월 29일 트럼프는 코로나19 최다 감염지역인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3개 주에 대한 2주 정도의 강제격리 필요성을 언급했다. 트럼프의 사랑을 담뿍 받는 플로리다주의 론 디샌티스 주지사(공화당)의 우려를 받아들여서다. 뉴욕 등 3개주의 주지사는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그러자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가 위헌적 조치라며 강력 반발하자 국내여행 자제권고로 꼬리를 내렸다. 쿠오모 주지사는 “지금 상황에서 공화당 지역, 민주당 지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바이러스는 (정치 성향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생명정치’ 뒤에 숨은 인종주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왼쪽).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조르조 아감벤. [미국 Totally history 홈페이지, GettyImages]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왼쪽).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조르조 아감벤. [미국 Totally history 홈페이지, GettyImages]

트럼프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그가 지금 강한 유혹을 느끼고 있는 것이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제창하고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조르조 아감벤이 발전시킨 ‘생명정치(bio-politics)’임을. 

생명정치란 국가가 보호하고 돌봐야할 국민을 선별하는 생명 권력에 기초한 정치를 말한다. 고대와 중세의 주권자(왕)의 권력을 ‘죽게 만들거나 살게 놔두는 권력’이란 점에서 생사여탈권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근대적 생명 권력은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권한’이다. 다시 말해 과거 권력이 생명 단축의 위협을 통해 성립했다면 오늘날의 권력은 생명 연장의 기회 보장을 수단으로 성립한다는 의미다. 

푸코는 근대의 권력이 규율권력과 생명권력의 양 갈래로 작동한다고 봤다. 규율권력이 감옥과 병영, 병원, 공장, 학교를 통해 규율 잡힌 노동자를 생산하는 미시권력이다. 생명권력은 전체 인구의 출생·사망률 조절과 의료 및 복지 서비스의 선택적 적용을 통해 국가적 차원의 생산력을 관리하는 거시권력이다.
 
아감벤은 이런 생명권력에 기초한 생명정치가 근대 뿐 아니라 고대에서부터 작동했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인은 삶을 두 종류로 이해했다. 하나는 조에(zoe)고 다른 하나는 비오스(bios)다. 조에는 생명을 유지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벌거벗은 삶’을 말한다. 비오스는 ‘정치적 동물’로서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치 있는 삶’을 뜻한다. 과거엔 확연히 구별된 이 둘이 근대 이후 뒤섞이면서 조에가 비오스의 철저한 감시·통제 아래 놓이게 됐다는 것이 아감벤의 통찰이다. 

코로나19 시대 세계 각국에서 벌이지고 있는 현상을 이런 생명정치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이해의 지평이 열린다. 푸코는 그 생명정치의 본질적 속성에 정상인(살 만한 가치가 있는 자)과 비정상인(살 만한 가치가 없는 자)을 구별하는 ‘인종주의’가 작용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에게 감사하는 자’와 ‘나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자’를 선별하는 것이나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로 호명하는 현상 뒤에 숨은 무의식적 진실이다.






주간동아 2020.04.03 1233호 (p22~24)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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