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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올리브, 오일에 가려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열매

올리브, 오일에 가려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열매

아워올리브의 ‘안초비’로 만든 오일 파스타(왼쪽). 매콤한 풍미가 좋은 ‘스파이스’ 올리브 절임으로 맛을 낸 샐러드. [사진 제공·김민경]

아워올리브의 ‘안초비’로 만든 오일 파스타(왼쪽). 매콤한 풍미가 좋은 ‘스파이스’ 올리브 절임으로 맛을 낸 샐러드. [사진 제공·김민경]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다. 이 말만 들으면 아무렇지 않던 입이 얼얼해지고, 배 속에서 사르르 파도가 이는 것 같다.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살던 시절이 있었다. 식습관이 불규칙했고, 잠도 제때 들지 않았으며, 여럿이 한 방을 쓰다 보니 배변 생활에도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기괴하리만치 화장실을 안 가는 나를 지켜보던 룸메이트가 담임교사에게 이야기를 전했고, 그날부터 입에 쓴 약을 며칠 동안 먹어야 했다. 그 약은 바로 올리브 오일이었다. 

처음에는 식사 때 무난한 올리브 오일을 먹었는데, 2~3일이 지나도 내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요리사였던 담임교사는 집에서 이런저런 오일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자꾸자꾸 먹어도 묵묵부답이던 내 몸의 반응보다 더 놀라웠던 점은 올리브 오일의 맛과 향이 이토록 가지가지였나 하는 것이었다. 산뜻한 것, 풋풋한 것, 혀가 축 처질 만큼 느글느글한 것, 볶은 듯 구수한 것, 코를 톡 쏘는 것, 꽤나 매운 것 등 다양했다. 하나같이 올리브 과육에서 짜낸 첫 기름이며, 가미를 일절 하지 않은 엑스트라 버진이었다.


태초의 쓴맛, 큐어링으로 조절

올리브의 베이식한 맛을 보기 좋은 ‘클래식’ 절임. [사진 제공·김민경]

올리브의 베이식한 맛을 보기 좋은 ‘클래식’ 절임. [사진 제공·김민경]

올리브는 분명 과일이다. 나무 생김새가 독특한데, 빈센트 반 고흐의 ‘올리브 숲’이라는 그림이 올리브 나무의 독특한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나무는 마치 상상 속에서 튀어나온 듯 구불구불하다. 그 끝에는 초록색의 단단한 잎사귀가 빽빽이 자라고, 잎 사이사이로 올리브 열매가 올망졸망 열린다. 다른 과일과 마찬가지로 올리브 역시 대체로 초록색 열매가 맺히고 익을수록 색이 진해진다. 올리브와 비슷한 계열로 살구, 매실, 복숭아 등을 꼽지만 씨와 껍질의 질감이 비슷할 뿐 맛은 극과 극이다. 싱싱한 올리브는 먹자마자 평생 잊지 못할 쓴맛을 선사한다. 즉 싱싱한 올리브는 도저히 사람이 먹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전 세계에서 올리브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스페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그 뒤를 잇는다. 지중해 지방의 전통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는 다양한 올리브 절임을 판매한다. 우리나라 시장에 가면 손맛 좋은 상인들이 장아찌와 젓갈 등을 저마다의 양념으로 버무려 판매하는 것과 비슷하다. 

절임 매대에 있는 올리브는 알의 크기와 모양, 색깔이 다양하며, 종류에 따라 절일 때 곁들이는 재료도 달라진다. 하나같이 선명한 색감에 윤기가 흐르고, 탱탱한 올리브 절임은 그 맛을 본 적이 없다고 해도 충분히 먹음직스럽다. 절임을 만들 때도 특유의 쓴맛 때문에 생과를 사용할 수 없다. 

올리브의 쓴맛을 우려내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소금에 절인다. 올리브를 소금에 버무려 한 달 정도 두는데, 쓴맛은 빠지지만 짠맛이 너무 강하고 과육에 주름이 생긴다. 우메보시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물에 담가두기도 하지만 쓴맛을 제대로 빼내기가 쉽지 않다.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소금물에 절이는 것과 알칼리 용액에 절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큐어링(curing)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올리브의 쓴맛은 줄어들고 제 몸에 가진 과육의 향이 깨어난다. 큐어링을 마친 올리브는 연한 소금물이나 젖산 용액에 담겨 세계 여기저기로 이동하게 된다. 우리가 맛보는 올리브는 모두 큐어링 과정을 거친 보존 식품이다. 저장 용기에서 건져 바로 먹으면 껍질에서 뻣뻣한 질감이 느껴지거나 맛이 떫을 수 있으며, 짠맛이 과할 때도 있다. 보존 상태의 올리브를 물에 가볍게 헹구기만 해도 올리브가 지닌 깔끔한 맛이 많이 되살아난다.




다양한 수입 올리브

1 씨를 빼지 않은 블랙 올리브부터 속을 채운 스페인산 그린 올리브, 그리스산 칼라마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카스텔베트라노, 씨 뺀 스페인산 블랙 올리브, 씨 뺀 캘리포니아 블랙 올리브(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와 속을 채운 그린 올리브(가운데). 2 올리브 안초비 절임에 들어갈 재료들. 손수 말린 토마토와 민트의 독특한 조화가 눈에 띈다. [사진 제공·김민경]

1 씨를 빼지 않은 블랙 올리브부터 속을 채운 스페인산 그린 올리브, 그리스산 칼라마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카스텔베트라노, 씨 뺀 스페인산 블랙 올리브, 씨 뺀 캘리포니아 블랙 올리브(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와 속을 채운 그린 올리브(가운데). 2 올리브 안초비 절임에 들어갈 재료들. 손수 말린 토마토와 민트의 독특한 조화가 눈에 띈다. [사진 제공·김민경]

한국에서 수월하게 구할 수 있는 올리브 종류는 5~7가지다. 색깔로 구분되는 그린과 블랙, 그리고 독특한 색과 남다른 맛을 지닌 칼라마타(kalamata)가 있다. 그리스에서 주로 나는 칼라마타는 올리브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색깔도 붉은 밤색으로 독특하고, 끝이 뾰족해 럭비공처럼 생겼다. 씨를 품은 열매의 기름진 맛, 부드럽지만 완고한 식감, 새콤한 첫맛과 구수한 끝 맛이 일품이다. 그린 올리브의 대표주자는 카스텔베트라노(castelvetrano)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트라파니 지역에서 주로 생산된다. 큐어링 과정과 보존 도중에도 생기발랄한 초록색을 그대로 띠고 있어 마치 아주 작은 아오리사과 같아 보인다. 그 맛도 싱그러운 색과 닮았다. 아삭거리고 견과류 같은 고소한 맛이 나며 과육이 촉촉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체리뇰라(cerignola)다. 이탈리아 지도의 발굽, 즉 풀리아 지역에서 생산된다. 올리브치고는 꽤 큼직해 과육이 풍성한 편이다. 배꼽처럼 올리브의 양 끄트머리가 톡 튀어나와 있고, 금빛이 도는 올리브 그린 컬러다. 과육의 식감이 살아 있으며, 쌉싸래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난다. 카스텔베트라노의 생김새와 체리뇰라의 색을 띤 스페인산 만사니야(manzanilla)도 구하기 어렵지 않다. 여러 가지 견과류 모둠을 먹듯 고소한 맛이 아주 좋은 올리브다.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올리브라면 씨를 뺀 블랙 올리브가 있다. 블랙 올리브는 워낙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는 재료라 손질한 뒤 판매하는 비중이 높다. 씨를 뺀 블랙 올리브도 가만히 살펴보면 알이 굵은 것, 잔 것으로 나뉜다. 아무래도 큼직한 것이 기름지고 고소하며 씹는 맛도 좋다. 씨가 있는 블랙 올리브는 씨를 뺀 것보다 향이 훨씬 진하고, 탱탱하면서 쫀득하게 씹는 과육의 맛도 좋다. 이외에도 가에타(gaeta), 리구리아(liguria), 세빌라노(sevillano), 피콜린(picholine) 등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올리브는 많고 많다.


맛의 조화를 찾아

아워올리브의 올리브 절임은 240g씩 판매한다. [사진 제공·김민경]

아워올리브의 올리브 절임은 240g씩 판매한다. [사진 제공·김민경]

우리가 맛볼 수 있는 올리브의 종류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먹는 방법은 여전히 단조롭다. 나는 별다른 가공 없이 올리브를 한 알씩 들고 과육만 발라 먹는다. 곁들이는 것도 치즈, 마른 과일, 햄, 포도주, 맥주, 견과류 등으로 너무나 뻔하다. 좋은 지방질과 영양, 맛과 향을 가진 올리브의 제맛을 이끌어줄 방법이 있다면 역시 지중해에서 봤던 수많은 절임이 제격이다. 

‘아워올리브’는 올리브 절임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종류의 올리브로 그것에 꼭 맞는 맛과 향의 궁합을 찾아내 절임을 한다. 가장 기본적인 ‘클래식’은 카스텔베트라노와 블랙 올리브에 페퍼잭 치즈, 로즈메리를 넣고 올리브 오일을 부은 것으로 맛이 둥글둥글 무난하다. 구운 통마늘과 쫄깃하게 말린 토마토까지 곁들여 있다. ‘시트러스’는 오렌지, 라임, 레몬 제스트와 즙을 넣고 올리브를 절인 것이다. 뚜껑을 여는 순간 시트러스향이 ‘퐁’ 하고 피어오른다. 올리브에도 상큼한 향이 깃들어 있어 과육의 기름지고 고소한 맛이 배가되는 기분이다. 게다가 펜넬, 시나몬, 바질, 오레가노의 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시트러스’의 오일은 소금간만 잘하면 샐러드드레싱으로 활용하기에 그만이다. 술안주나 간식으로 꼽자면 ‘살라미’와 ‘안초비’가 ‘딱’이다. 짭짤하고 기름진 살라미, 맛이 부드러운 고다 치즈, 직화로 구워 촉촉한 파프리카를 올리브와 함께 절였다. 새콤한 발사믹 비니거와 매콤한 페페론치노까지 넣어 맛에 악센트를 맞췄다. 안초비는 그 자체로 농후한 맛을 지녔다. 호불호가 갈리는 재료다. 잘게 썰어 올리브, 케이퍼, 레몬, 말린 토마토, 마늘, 올리브와 섞어 절이면 뾰족하던 안초비의 맛이 한결 무난해진다. 또한 톡 쏘는 화이트 와인 비니거의 산뜻함이 안초비와 썩 잘 어울린다. 

올리브 절임 중 가장 독특한 메뉴는 ‘스파이스’. 청양고추, 페페론치노, 크러시드 레드 페퍼, 카이엔 페퍼를 골고루 넣어 매운 풍미를 냈다. 다른 올리브 절임은 모두 재료를 섞어 만들지만 ‘스파이스’는 올리브 오일에 매운 재료를 넣고 살짝 끓여 맛을 부드럽게 우려냈다. 은은하게 감도는 매운맛 뒤로 올리브의 구수하고 기름진 풍미가 살살 배어나온다. 

‘아워올리브’의 올리브 절임은 종류가 5가지고, 올리브로 만든 스프레드도 1가지 있다. 이것저것 재료를 섞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절임 같지만 조화로운 맛을 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재료라도 요리 맛이 천차만별인데 이토록 여러 재료로 안정된 맛을 찾아내기까지 고민이 얼마나 깊었을까 싶다.


절임 장인 안정아 ‘아워올리브’ 대표
[사진 제공·김민경]

[사진 제공·김민경]

올리브 절임 하면 아직도 낯선데 어떻게 먹으면 좋을까. 

“올리브가 아직 낯설다면 올리브와 굵직한 건더기를 건져 그냥 맛을 보는 것이 제일 좋다. 남은 오일에 빵을 찍어 먹고, 드레싱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파스타 소스에 섞거나 여러 요리의 마지막 시즈닝으로 둘러도 맛있다.” 

올리브 절임은 얼마나 두고 먹을 수 있나. 

“각 제품에는 모두 제조일자가 표시된다. 그날로부터 20일 안에 먹어야 맛있다. 무엇보다 올리브 절임은 반드시 냉장 보관해야 한다. 오일은 냉장실에 두면 뿌연 색으로 굳는데, 먹기 20~30분 전 실온에 꺼내두면 다시 투명한 오일 상태가 된다.” 

△아워올리브 제품은 네이버 스토어팜에서 구매할 수 있다.






주간동아 2019.07.12 1197호 (p78~80)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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