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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에이스는 우투좌타일까

우투좌타, 적응만 한다면 어떤 위치보다 유리하다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입력2019-01-21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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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수(왼쪽) 김재환 [동아DB]

    김현수(왼쪽) 김재환 [동아DB]

    바야흐로 우투좌타(右投左打) 전성시대입니다. 

    지난해 개막일 기준으로 프로야구 등록 선수는 총 609명. 이 가운데 100명(16.4%)이 우투좌타였습니다. 우투좌타 선수가 세 자릿수가 된 건 한국 프로야구 37년 역사상 지난해가 처음이었습니다. 

    그저 숫자만 많은 게 아닙니다. 타격 기록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우투좌타 선수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당장 지난해 타격 3관왕(타율, 홈런, 타점)을 나눠 가진 타격왕 김현수(31·LG 트윈스), 홈런·타점왕 김재환(31·두산 베어스) 모두 우투좌타입니다. 토종 선수만 따져보면 타율은 상위 10명 가운데 4명, 홈런은 공동 10위를 포함해 11명 가운데 6명, 타점은 10명 가운데 6명이 우투좌타였습니다.

    왜 왼쪽으로 가는가

    흔히 한국 프로야구에서 꼽는 첫 번째 우투좌타 선수는 1988년 태평양 돌핀스에서 데뷔한 원원근(52)입니다. 단, 그는 오른쪽 타석에도 들어섰기 때문에 스위치 타자(우투양타)로 분류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선수 등록을 기준으로 하면 1989년 신인 김상우(53·롯데 자이언츠)와 성군철(51·빙그레 이글스)이 첫 번째 우투좌타 선수였습니다. 1989년 원원근(257타석), 성군철(58타석), 김상우(50타석)는 총 365타석에 들어섰습니다. 당시 리그 전체 타석이 3만1881타석이었으니까 우투좌타 선수가 전체 타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1% 정도였습니다. 이로부터 29년이 지난 지난해 이 비중은 31.5%로 29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이 비중이 30%를 넘어선 것 역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지난해가 처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우투좌타가 늘어난 제일 큰 이유는 역시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야구에서 왼손으로 공을 던진다는 건 투수를 제외하면 오히려 불리한 조건입니다. 포수 마스크를 쓰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고, 내야수 네 자리 가운데서도 1루수만 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루수와 외야수는 기본적으로 수비보다 타격이 중요한 자리. 방망이 실력이 떨어지면 곧바로 자리를 내놓는 게 일반적입니다. 반면 내야수는 글러브 솜씨가 뛰어나면 타격이 조금 떨어져도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공을 칠 때는 왼쪽 타석에 들어서는 게 확실히 유리합니다. 일단 좌타자 타석은 1루에 1m가량 더 가깝습니다. 야구에서 한 걸음 차이로 아웃과 세이프가 갈리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잖은 어드밴티지입니다. 또 우타자는 공을 치고 나면 3루 쪽으로 몸이 쏠리지만 좌타자는 1루 방향을 향해 자연스럽게 뛰어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한국 프로야구 37년 동안 좌타자 평균 타율(0.278)이 우타자 평균 타율(0.260)보다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스위치 타자 기록 제외). 

    이런 이유로 우투좌타는 늘어도 좌투우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공격과 수비 둘 다 불리한 조건으로 뛰는 셈이니까요. 지난해 KBO 등록 선수에는 좌투우타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유명 선수 중에는 류현진(32·LA 다저스)이 좌투우타입니다. 류현진은 원래 오른손잡이지만 아버지 류재천 씨가 ‘왼손 투수에 대한 로망’이 강해 왼손으로 공을 던지게 된 사례입니다. 류현진은 다저스 입단 후 껄껄 웃으며 “아버지가 왼손으로 안 던지면 죽여버린다고 했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류현진처럼 던지는 손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 관계자는 “공을 던질 때는 한 손만 쓰기 때문에 자주 쓰는 손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두 손을 쓰는 타격은 손을 바꾸는 게 상대적으로 더 쉽다”며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타격 메커니즘을 익히면 오른손잡이도 왼쪽에서 능숙하게 치는 게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들아, 나는 우타였지만 너는…

    이정후(왼쪽), 이종범 [동아DB]

    이정후(왼쪽), 이종범 [동아DB]

    그래서 우투좌타 선수는 원래 오른손잡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원래 왼손잡이인 손아섭(31·롯데 자이언츠)은 특이한 사례입니다. 손아섭은 외야수라 어떤 손으로 공을 던져도 크게 관계가 없는데 오른손으로 공를 던집니다. 손아섭은 “중학생 때 화가 나 벽을 왼손으로 쳐 다쳤다. 그때 임시로 오른손으로 공을 던졌는데 하다 보니 더 편해 계속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강백호(20·kt 위즈)도 원래 왼손잡이지만 포수를 보려고 공만 오른손으로 던지게 됐습니다.   

    ‘바람의 자손(子孫)’은 서로 치는 손을 바꾼 경우입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49·현 LG 코치)은 원래 당구와 고스톱까지 모두 왼손으로 해결하는 전형적인 왼손잡이지만 오른쪽 타석에서 공을 쳤습니다. 반면 ‘바람의 손자’ 이정후(21·키움 히어로즈)는 원래 오른손잡이지만 왼쪽 타석에서 공을 칩니다. 

    왼손잡이 이종범이 오른손으로 야구를 하게 된 건 왼손잡이용 글러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정후가 반(半)왼손잡이가 된 건 아버지의 권유 때문. 일본 프로야구까지 거치면서 누구보다 왼손 타자가 유리하다는 걸 체감한 이종범이었기에 아들이 초등학교(광주 서석초) 야구부에 들어가자마자 “왼쪽 타석에 들어서라”고 조언했습니다. 이정후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우투좌타가 된 것. 

    이정후만이 아닙니다. 유민상(30·KIA 타이거즈·유승안), 이성곤(27·삼성 라이온즈·이순철), 전호영(25·LG·전종화) 등 우투우타 아버지를 뒀던 프로야구 2세 선수 가운데 왼쪽에서 공을 치는 선수가 적잖습니다. 왼손타자로 이름을 떨친 박철우(55·현 두산 코치)의 아들 박세혁(29·두산)은 포수인데도 우투좌타입니다. 

    꼭 자식에게만 ‘왼쪽에서 치라’고 이야기한 것도 아닙니다. 야구계에서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를 맡을 수 있게 된 1997년 이후 우투좌타가 늘었다는 게 정설로 통합니다. 이들 역시 좌타가 유리하다는 사실을 경험했기에 제자들에게 좌타 전향을 권유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김상우, 성군철이 입단한 뒤 1990~99년 10년 동안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 총 926명 중에서는 3.1%(29명)만 우투좌타였습니다. 2000~2009년 10년 동안에는 이 비율이 8.5%로 늘었고, 최근 10년간(2010~2019) 18.8%로 더 늘었습니다(그래프 참조).

    우투좌타는 과학입니다

    그렇다면 성적은 어떨까요. 프로야구가 10개 구단 체제를 갖춘 2015년 이후 지난해까지 우투좌타는 평균 OPS(출루율+장타력) 0.798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우투우타와 좌투좌타 모두 0.780이니까 우투좌타가 평균적으로 더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우투좌타가 유리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 인간운동과학연구소의 다비드 만 교수가 1871년부터 2016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뛴 선수 1만7564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투좌타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확률은 다른 손으로 치고 던지는 선수보다 5.3배 높고, 통산 타율 0.299 이상으로 커리어를 마칠 확률도 18.4배 높았습니다. 

    이에 대해 오연우 한국야구학회 간사(의사)는 “우투좌타가 가능하다는 건 기본적으로 양쪽에서 어느 수준 이상 실력을 보여줄 정도로 운동신경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벌써 새해 결심이 흔들린다면 원래 하던 것과 반대 방향으로 한번 해보세요. 혹 압니까. 우투좌타 선수처럼 그쪽이 오히려 체질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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