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1

2017.11.01

인터뷰

“내 인생을 바꾼 독서의 힘”

메밀국숫집으로 대박 난 방송인 고명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10-30 13: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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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를 경북 상주에서 다녔어요. 성적이 반에서 중간 정도였죠. 이런 제가 할 수 있으면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고명환(45사진) 씨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가 ‘당신도 할 수 있다’고 한 건 여러 가지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시간에 끌려 다니지 않는 것,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

    하나씩 짚어보자. MBC 공채 개그맨 출신인 고씨는 2014년 경기 일산에 메밀국수 전문 식당을 냈다. 연매출이 10억 원을 넘을 만큼 성공했다. 틈날 때마다 뮤지컬 제작, 공연 기획, 강연 등도 꾸준히 한다. 그 덕에 “단돈 300만 원 들고 상경했는데 지금은 서울에 집이 네 채 있다”고 할 만큼 부자가 됐다.

    그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려 동동거리며 사는 것도 아니다. 고씨는 최근 자신의 사업 성공 비결 등을 담은 책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를 펴냈다. 이 책을 남들 출근하는 아침 시간, 집 앞 커피숍에서 썼다고 한다. 그의 아침은 보통 독서와 집필로 채워진다. “한적한 커피숍 2층에서 창 아래를 내려다보면 서둘러 일터로 나가는 직장인들이 눈에 띈다. 나도 예전엔 그들처럼 남들이 정해놓은 시간표를 따라 살았다. 지금은 시간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내가 나의 시간을 끌고 간다.” 고씨의 말이다.

    그가 스스로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작가 조지 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인류의 대다수는 그리 격렬할 정도로 이기적이지 않다. 대개 나이 서른쯤을 넘기면 사람들은 개인적 야심을 버리고 대체로 남을 위해 살거나 일상적 일에 짓눌려 살아간다’고 했다. 고씨는 이 뻔한 길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벗어나 있다고 자신한다. 그는 “남이 하라는 일을 하면 노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주인 아닌가. 나는 지금 식당을 운영하면서 뮤지컬을 만들고, 공연을 기획하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강의를 하고, 책을 쓴다. 어느 것 하나 열정에 넘쳐 하지 않는 게 없다”고 했다.



    여기까지 읽고 ‘웬 잘난 척이 이렇게 심해’ 하고 책장을 넘긴다면 그건 전적으로 기자 잘못이다. 고씨는 이 말을 조금도 기분 상하지 않게 표현했다. 오히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같이 들뜨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행복해질 수 있는데요’라고 묻게 만들고는, 씨익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책을 읽으면 됩니다. 어떤 책이든 꾸준히 많이 읽으면 누구나 자기가 꿈꾸는 삶을 살 수 있어요.”

    맥이 풀릴 수도 있다. 그런데 고씨는 진심으로 이렇게 ‘확신’했다. 그는 지금까지 책을 1900권 넘게 읽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했으니 약 7년 동안 1주일에 다섯 권 이상씩 읽은 셈이 된다. 이 과정이 쉽진 않았다. 고씨는 “파스칼의 ‘팡세’는 일주일을 꼬박 붙들고 있었다. 몽테뉴의 ‘수상록’ 같은 책은 펼쳤다 도저히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 ‘다음에 좀 더 준비되면 읽자’고 미뤄두기도 했다. 반면 ‘언어의 온도’나 ‘82년생 김지영’처럼 상대적으로 술술 읽히는 책은 하루에 몇 권씩도 읽었다.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 ‘도요타의 원가’처럼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다시 읽는 책도 많다. 그렇게 끝없이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집이 책으로 가득 차고 내 삶이 변했다”고 했다. 콕 집어 말하자면 ‘돈이 벌렸고, 시간이 생겼고, 내 삶의 주인이 됐다’.

    “책을 읽기 전엔 사업을 네 번이나 말아먹었습니다. 2002년 감자탕집, 2006년 실내포장마차, 2008년 스낵바, 2009년 닭가슴살 사업이 줄줄이 망했죠. 가진 자본을 다 털어넣은 뒤 그걸 지키려고 몸과 마음 다 바쳐 일했는데도 안 됐습니다. 책을 읽으니 내가 그때 뭘 잘못했는지 한눈에 보이더군요. 또 책이 시키는 대로 하니 손님이 늘었습니다. 이 좋은 걸 세상에 알려야겠다 싶어 책을 썼어요. 한마디로 ‘책 읽어 돈 버는 이야기’죠. 솔깃하지 않습니까.”

    그랬다. 책을 읽으면 생각이 깊어지고, 창의력이 생기며, 교양 있는 사람이 된다는 류의 이야기를 그동안 얼마나 많이 들어왔나. 고씨는 이것을 살짝 비튼다. ‘책을 읽으면 당신이 바라는 바로 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의 끝에서 만난 책

    그가 이 깨달음을 처음 얻은 건 2005년 드라마 ‘해신’ 촬영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라고 한다. 당시 의사는 그를 진찰한 뒤 ‘심장에 출혈 기미가 있다. 사흘 안에 심장 파열로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순간 고씨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여행’이라는 단어였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며 침대에 꼼짝 없이 매여 있는 신세가 되니 더욱 간절히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그때 그에게 위안을 준 건 동료 탤런트 송일국 씨가 병문안 길에 한가득 챙겨온 책뿐이었다고 한다. 잡지, 소설, 만화, 에세이 등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렇게 사흘이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마침내 두 달이 돼 병실 문을 제 발로 걸어 나오기까지, 그는 50권 넘는 책을 읽었다. ‘몸은 갇혀 있어도 영혼은 어디든 날아갈 수 있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다시 건강해지고 방송인의 분주한 삶으로 돌아가자 책 읽기의 즐거움이 자연스레 잊힌 것이다. 고씨가 다시 책을 들게 된 건 5년 후 여러 사업에 실패하고 방송 활동도 뜻대로 풀리지 않던 무렵이다. 우연한 기회에 집어든 책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바꾸는 메시지를 접했다.

    ‘물고기들을 나무 타기 실력으로 평가한다면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형편없다고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

    마케팅 전문가 세스 고딘의 저서 ‘이카루스 이야기’에 나오는 한 대목이었다. 문득 ‘나는 물고기인데 나무 타기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왔다. 고딘의 책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우리 모두 날 때부터 아티스트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방법을 따로 배울 필요도 없다. 당신이 타고난 것, 산업사회의 울타리에 갇혀 속으로 숨겨두고 있던 능력을 발휘하기만 하면 된다.’

    이 구절 역시 그의 마음을 때렸다. 고딘은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불렀다. 고씨 역시 자신이 천부적으로 타고난 ‘아티스트의 자질’을 발견하기만 하면 어울리지 않는 ‘나무 타기’를 그만두고 자유로운 ‘물고기’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질문을 품고 곰곰이 생각을 거듭했어요. 그때 문득 요리가 떠올랐죠. 저는 어릴 때부터 웬만한 음식은 한번 먹어보면 거의 똑같이 만들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전에는 음식점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겼지 제가 가진 재능을 발현할 공간으로 생각지 못했던 거예요. 아, 요리가 내 삶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열정이 샘솟았어요.”

    그것을 어떻게 일로 연결할지에 대한 해법은 다시 책에서 찾았다.

    ‘사업을 시작하는 데 반드시 좋은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는 남의 것을 빌릴 수도 있다. 다른 고장, 다른 나라, 다른 업계의 누군가가 하고 있는 일을 찾아내보라.’



    “어려운 일을 하는 게 쉬운 거다”

    역시 고딘의 책, 이번엔 ‘이제는 작은 것이 큰 것이다’ 속 한 대목이다. 고씨는 이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틈만 나면 전국 방방곡곡 맛있다는 식당을 찾아다녔다. 왜 여기가 유명해졌을까, 맛의 비결은 뭘까, 이 식당을 수도권으로 가져가도 성공할 수 있을까를 끝없이 질문하며 사업 아이템을 물색했다. 그러다 경남 마산에서 ‘바로 여기다’ 싶은 메밀국수 가게를 만났다. 다시 고딘의 책을 떠올렸다. ‘지금부터 지시만을 기다리는 긴 줄에서 빠져나와 진정한 아티스트의 삶을 시작하자.’ 그렇게 했다. 당장 다른 일을 접고 마산 식당 근처에 방을 잡았다. 하루 12시간씩 주방을 지키며 일을 배웠다. 그때 고씨의 경험이 사업 성공의 밑바탕이 된 건 물론이다. 

    고씨는 지금도 고딘을 자기 삶의 ‘구루’라고 표현한다. “내 사업 성공의 9할은 고딘 덕분”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짜 그를 변화시킨 건 고딘을 비롯한 수많은 마케팅 고수의 책을 읽고, 그 내용을 흡수하고, 자기 상황에 맞게 개량해 현실화한 고씨의 열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은 책을 책으로 읽고 만다. 고씨는 달랐다.

    ‘나는 항상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훌륭한 경영자가 되려면 반드시 가장 기본적인 일부터 완벽하게 챙길 줄 알아야 한다.’

    왕중추의 저서 ‘디테일의 힘’에서는 이 구절을 ‘자신의 것’으로 빨아들였다. 고씨에 따르면 그는 감자탕집을 운영할 때 감자탕 끓이는 법을 몰랐고, 실내포장마차를 운영할 때도 안주를 만들 줄 몰랐다. 닭가슴살 사업을 할 때는 제품 원가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지금은 다르다. ‘메밀가루 반죽하고 면 뽑고 삶고 육수 끓이고 만두 찌고 김치 담그는’ 전 과정에서 고씨가 모르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 ‘식자재 값 계산, 직원 월급 및 4대 보험 처리, 세금 관련 업무’ 등에도 통달했다. 식당 마케팅과 홍보도 그가 맡아서 한다.

    “창업하려면 그게 뭐가 됐든 주인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거면 절대 창업해선 안 돼요. 책이 제게 가르쳐준 거죠.”

    책이 시키는 대로 하려고 그는 이 모든 분야를 열심히 배웠다. 메밀국수 면발 굵기는 조현준의 ‘왜 팔리는가’를 통독한 뒤 결정했다. 다니엘 핑크의 ‘파는 것이 인간이다’를 읽고는 손님이 주문할 때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게 손님을 즐겁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번에도 ‘그렇구나’ 고개만 끄덕이지 않고 즉시 매장에서 실천했다. 손님이 ‘깍두기랑 김치 좀 더 주세요’ 하면 ‘깍두기랑 김치요, 네 알겠습니다’ 하고, ‘김치랑 깍두기 좀 더 주세요’ 하면 ‘김치랑 깍두기요,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신기하게 식당 분위기가 확 밝아졌다.

    고씨 가게에서는 메밀국수 육수와 돈가스 소스도 직접 만든다. ‘이카루스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기대를 넘어서고 희귀하고 가치 있는, 한마디로 대체할 수 없는 무엇’이라는 대목을 읽고 결심한 일이다. 그는 “시판 제품보다 원가가 비싸고 힘도 많이 든다. 그런데 맛과 정성이 다르니 손님들이 알아본다. 그런 분이 단골이 되고, 입소문을 낸다. 고딘은 광고 효과를 높이려면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른바 ‘스니저’(sneezer·재채기하는 사람)를 잘 활용하라고 했다. 실제로 스니저들이 생겨나면서 우리 식당은 절로 홍보가 됐고, 매출이 궤도에 올랐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출간되는 책들을 보면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건강한 음식을 내는 식당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걸 알게 돼요. 우리나라도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이제 국수나 냉면 같은 업종으로 창업하려는 사람은 무조건 육수를 직접 끓이겠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어렵지 않느냐고요? 어려운 일을 하는 게 쉬운 겁니다. 귀찮고 힘들어서 남들은 하지 않는 일을 해야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요. 이것도 다 책에서 배운 겁니다.”

    그는 이렇게 사업에 성공했다. 그의 책 제목대로 하면 ‘매출의 신’이 됐다. 이 과정을 설명하느라 이어진 두 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 고씨는 정말 수많은 책 제목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고딘의 책들처럼 그의 삶에 근본적 변화를 일으킨 것뿐 아니라 문장 하나, 표현 하나에 깊은 영향을 받은 책도 적잖았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라”

    고씨는 우리가 마음에 어떤 질문을 품고 있든 세상에는 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책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서점에 나가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고 눈에 띄는 책 제목과 목차만 충실히 읽어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 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아직 질문조차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최진석 교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권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이유에서다. 지금 이 순간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에 대한 통찰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이 인상 깊게 읽은 책에서 시작해 점점 관련 분야로 범위를 넓혀가며 책을 읽으면 누구나 머잖아 ‘책이 내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는 고백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게 고씨 생각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으면 책을 읽으세요. 세상에 관심이 생기고 관찰력이 생깁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든 실패하기가 더 어려워질 겁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도 계속 책을 읽을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뭔지 물었다. 그가 메고 다니는 백팩에는 벌써 여러 번 읽어 손때가 타고 여백 곳곳에 까맣게 메모가 적힌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과 이제 막 읽기 시작했다는 사르트르의 ‘구토’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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