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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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금메달 효도

  • 입력2005-06-22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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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은 금메달 효도
    애틀랜타 올림픽이 한창이던 4년 전 이맘때. 스포츠지 기자경력 1년이 채 안 되던 필자는 “유력한 금메달 후보인 한 양궁선수의 결승경기가 며칠 남지 않았으니 그의 수원 고향집에 찾아가 부모님을 인터뷰하고 오라”는 취재지시를 받았다.

    거리도 거리인데다, 몸도 편치 않다는 선수 부모를 만나 ‘휴먼스토리’를 억지로 짜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미루고 미루다 오후 늦게 서울에서 출발하다보니 밤 늦어서야 수원에 도착했다. 어렵게 찾아간 그 선수의 집은 수원성 담벼락 밑 허름한 동네에 있었다. 그나마 단독주택 지하의 방 두 개 짜리 전세였다.

    선수의 아버지는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간경화 말기로 거동을 못한 지 오래됐다고 한다. 입구에서 필자를 맞이한 선수의 어머니도 중풍에다 관절염 합병증까지 겹쳐 한쪽 다리를 끌다시피 하며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한 시간 정도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아들이 이런 환경에서 운동하며 올림픽 결승전에 오르기까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말해 주었다. 부모를 돌보며 운동으로 꿋꿋하게 가난을 이겨온 그 선수의 이야기 하나 하나에 저절로 공감이 됐다. 그가 꼭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수가 바로 오교문(28)이다. 그날 이후 필자는 언젠가 오교문을 직접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러나 오교문을 비롯해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한국 남자 양궁선수들은 애틀랜타 올림픽 개인전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데 이어 단체전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실수 끝에 은메달에 그쳤다. 수원에서의 인터뷰 역시 그저 발품만 판 일이 됐다.



    4년이 지난 호주 시드니. 올림픽취재차 온 필자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오교문과 만났다. 한국 남자 양궁선수들이 단체전에서 감격의 금메달을 따낸 다음날인 23일 평소 친하게 지내던 육상선수가 경기가 끝났으니 점심식사나 같이하자고 해 나갔더니 그 자리에 오교문도 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주변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4년 전 그해 12월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도 올 1월 아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눈을 감았다. 그는 결혼했는데 그의 부인은 지금 임신 중이었다. 내년 1월 첫아이를 낳을 예정이라고 한다.

    오교문은 자신의 집에서 생전의 부모와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눴다는 필자를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 그는 부모에게 자신이 금메달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할 일이 금메달을 들고 부모님을 찾아뵙는 겁니다. 얼마나 염원하시던 금메달이었는데….” 그는 말끝을 흐렸다. 오교문은 필자에게 함께 가자고 제의했다. 필자는 그의 어머니와 인터뷰하면서 “오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한 번 더 오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어서 그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오선수의 가족사엔 올림픽 금메달을 12년 동안 기다려온 한국 남자 양궁의 감격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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