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6

2004.10.21

영혼의 무게, 그리고 생과 사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10-14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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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의 무게, 그리고 생과 사
    20세기 초, 미국 매사추세츠의 하버힐이란 동네에 덩컨 맥두걸이라는 의사가 살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맥두걸은 영혼의 존재를 믿었다. 그는 과학자이기도 했으므로 영혼이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상식에 따르면 모든 물질은 무게가 있다. 당연히 맥두걸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만약 인간이 죽어 영혼이 떠나간다면 시체의 무게는 살아 있을 때의 무게보다 가벼워지지 않을까?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그는 죽어가는 사람들과 개의 무게를 저울로 쟀다.

    맥두걸의 주장에 따르면 개의 경우엔 무게 변화가 없었지만 사람들에게는 있었단다. 그는 만족했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그런 것처럼 그는 사람에게만 영혼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 영혼의 무게는? 맥두걸이 늘 정확한 답을 얻은 건 아니지만 21g이라는 수치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맥두걸의 실험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영혼의 무게가 21g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반쯤 신비주의적이고 반쯤은 유물론적인 이 표현을 인간 영혼의 가치를 묻는 영화 제목으로 쓴다면 죽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영화 ‘아모레스 페레스’로 멕시코를 대표하는 젊은 감독으로 떠오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면 각본을 쓴 기에르모 아리아가가 그렇게 생각했거나.

    ‘21그램’은 교통사고와 이식수술로 맺어진 세 사람의 이야기다. 수학 교수인 폴은 심장병과 불행한 결혼 생활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행복한 가정주부였던 크리스티나는 사고로 남편과 딸들을 잃는다. 개심한 전과자인 잭은 경건한 신자가 되어 모범적으로 살아가려 하지만 운명이 길을 막는다.



    될 수 있는 한 모호하게 설정을 설명하려 했지만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이 세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하지만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이 단순한 이야기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는 연대기 순으로 일어난 일들을 조각조각 쪼개어 뒤섞은 뒤 재배열한다. 그 결과 비교적 평범한 도덕극인 이야기는 흥미로운 퍼즐 게임으로 변신한다.

    이런 시도가 얼마나 가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분명 이런 난도질은 영화를 더 재미있게 만든다. 영화의 어두운 운명론이 이 때문에 더 강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이 영리한 터치가 이 심각하고 진중한 영화에 어울리는 걸까. 이건 지나친 잔재주가 아닐까?

    여기에 대한 의견이 어떻건, ‘21그램’은 여전히 묵직한 울림을 주는 영화다. 그러나 여기엔 감독이나 각본가보다 그 울림을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 세 주연배우의 역할이 더 큰 듯하다.

    Tips

    세 주연배우 이 영화에 무게감을 부여하는 것은 숀펜, 나오미 와츠, 베네치오 델 토로의 뛰어난 연기다. 최선의 삶 혹은 안식을 위해 갈등하는 인물들의 내면은 이들 세 배우의 섬세한 연기가 없었다면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숀펜은 ‘데드맨 워킹’, 나오미 와츠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베네치오 델 토로는 ‘트래픽’ 등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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