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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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소재, 평범한 로맨스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3-11-20 16: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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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다른 소재, 평범한 로맨스
    ‘영어완전정복’의 소재와 주제는 정말이지 근사하다. 생각해보라. 바다 건너온 이 낯선 언어를 정복하기 위해 우리가 벌이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소동이 얼마나 허망하고 희극적인지. 그 밀고 밀리는 전쟁 속에서 우리가 쌓아온 유구한 ‘콩글리시’의 전통은 또 어떠한가.

    영어공부라는 소재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릴 정도로 절실할 뿐만 아니라 굉장히 희극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김성수 감독의 ‘영어완전정복’은 동사무소 직원인 영주가 잘못 배달된 세금고지서를 들고 찾아온 외국인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쩔쩔매다가 결국 동사무소 대표로 영어학원에 등록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엉터리 영어와 엉터리 한국어, 콩글리시와 비틀린 번역이 뒤섞인 언어의 난장판이 된다. 물론 영주가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문수에게 반해 일방적으로 쫓아다닌다는 이야기가 곧 영화 줄거리의 기둥이 되지만.

    소재만 따지면 ‘영어완전정복’은 일급이고 영화 역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언어 게임과 문화적 충돌은 생각 외로 빈약하고(오히려 TV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가 이 소재를 훨씬 효과적으로 다루었다), 영주와 문주의 로맨스는 평범하다.

    자극적인 코미디와 신파의 결합은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삐걱거리며, 그럭저럭 영화를 끌고 가던 리듬감 역시 어느 순간 위태로워진다. 그리고 이때부터 코미디를 위해 동원된 ‘만화적 상상력’도 슬슬 힘을 잃기 시작한다. 결국 ‘영어완전정복’은 ‘엽기적인 그녀’ 이후 거의 장르화된 엽기 로맨틱 코미디의 한 예로 남게 된다. 유행을 따라가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생산성 있는 장르가 될 만큼 폭이 넓은 터는 아니다.



    김성수 감독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조금은 자아도취적인 남성 액션물을 생각하면, ‘영어완전정복’은 상당히 뜻밖인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려든 안정된 유행의 모방 속에는 어색함도 없지만, 도전정신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이나영과 장혁은 모범적으로 캐스팅된 배우들이고 좋은 희극 연기를 보여준다. 이나영이 평범한 게 불만인 여자치고는 지나치게 예쁘다 싶을 수 있겠지만 이 배우는 화려한 역보다는 자신 없고 기죽은 캐릭터에 더 잘 어울리니까. 외모와 캐릭터의 성격이 꼭 일치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색다른 소재, 평범한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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