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급 절벽에 ‘분양가 상한제 완화’ 카드 꺼낸 尹 정부

건설비 급등에 재건축 공사 중단과 마찰 속출… 서울 주택 공급량 1만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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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2-05-2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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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시공사업단과 재건축조합 간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뉴스1]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시공사업단과 재건축조합 간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뉴스1]

    “최근 건설비용 부담이 20% 가까이 올랐다. 분양가가 제한된 상황에서 원청 건설사가 하청, 재하청업체를 쥐어짜는 경우도 허다하다. 원활한 공사 진행이 어려운 실정이다.”(건설업계 관계자)

    “원자재 가격, 인건비 인상으로 재건축 사업을 진행해도 결국 손실을 보게 될 것이 뻔하다. 문제는 이 손실을 누가 떠안을지인데, 결국 건설업체와 재건축조합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재건축 사업 관계자)

    국제 원자재 가격 인상 등에 따른 건설비용 증가로 주요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분양가 산정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건설비용 증가로 신규 아파트 공급 물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새 정부가 분양가 규제를 풀어 주택 ‘공급 절벽’ 현상을 완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분양가 상한제, 한 번에 폐지하기엔 부작용 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5월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분양가 상한제 완화 방침을 밝혔다. [뉴시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5월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분양가 상한제 완화 방침을 밝혔다. [뉴시스]

    원희룡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은 5월 23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분양가 상한제는 주택 공급을 촉진하기 위해 가장 먼저 손봐야 할 첫 번째 제도”라면서 “6월 이내로 개선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분양가 상한제 도입 취지를 두고 원 장관은 “분양 아파트 가격을 관리해 수분양자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시공사가 분양가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평가하면서 “분양가 상한제를 한 번에 폐지하기엔 부작용이 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토부 개선안은 분양가 상한제를 전면 폐지하거나 당장 큰 폭의 변동보다 분양가를 현실화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조합원 이주비가 반영이 안 되고, 원자재 가격 인상도 반영되지 않아 누가 봐도 시공할 수 없는 가격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분양가 상승을) 인위적으로 누르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원 장관의 발언 취지를 감안할 때 향후 개선안은 가산비에 조합원 이주비, 사업비 금융이자, 명도소송비용 등을 포함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을 분양가 산정 기준에 반영해 정비 사업 추진을 촉진하자는 것이다. 주택 가격 등의 조건을 고려해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분양가 상한제는 주택법 제57조에 따라 주택 분양 가격을 택지비와 건축비, 가산비를 합한 금액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7월 민간택지에도 확대 적용됐다. 공공택지는 물론 민간택지 중 국토부 장관이 지정하는 지역에 짓는 공동주택이 적용 대상이다. 투기과열지구에서 최근 1년간 평균 분양 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넘거나 청약 경쟁률이 5 대 1을 초과(최근 2개월)한 지역, 주택 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한(최근 3개월) 지역이 대상이다. 현재 서울 18개 구와 경기 과천·광명·하남시 등 총 322개 동이 분양가 상한제 규제를 받고 있다(지도 참조).

    건설 공사비 두 자릿수 상승세

    그간 분양가 상한제는 부동산시장 상황과 역대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분양가 관련 규제는 박정희 정부 때인 1977년 처음 도입됐다. 토지비용이나 건축비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3.3㎡당 분양가 상한을 정하는 방식이었다. 1980년대 일부 민영개발 아파트의 분양가를 자율화했으나 투기과열로 1983년 본래 규제로 회귀했다. 경직된 분양가 규제로 폭증하는 주택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자 1989년 노태우 정부는 ‘원가연동제’를 도입했다. 택지비와 표준건축비(현행 기본형 건축비)를 합쳐 분양가를 정하는 방식으로, 오늘날 분양가 상한제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위기로 건설 경기가 직격탄을 맞자 김대중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아파트 분양가 산정의 시장 자율성을 높였다. 노무현 정부는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에서 공공택지 분양가 세부 내역을 공개하고 민간택지로 적용 대상을 확대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아파트 매매가가 10% 상승하거나 청약 경쟁률이 20 대 1 이상을 기록하는 곳으로 적용 기준을 완화하는 등 정권과 시장 상황에 따라 관련 정책이 수시로 변경됐다.

    윤석열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완화 방침을 밝힌 것은 최근 건설비용 증가로 아파트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 20일까지 서울에서 신규 분양된 주택 수는 3390채로 당초 계획 물량(1만4447채)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건설 재료·장비·노무비용 등을 나타내는 지수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설공사비지수는 3월 기준 143.06으로 지난해 동기(126.14) 대비 13%가량 올랐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4~5월 철근(8.4%), 시멘트(15.2%), 레미콘(13%) 등 주요 자재의 가격이 모두 상승세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위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물가상승이 주원인으로 분석된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자재비, 인건비 상승에 따라 당초 계약한 것보다 공사비가 상상 이상으로 상승해 재건축·재개발 현장을 중심으로 아파트 공급량이 크게 줄었다”면서 “건설업계는 대개 연말에 분양 계획을 세우고 새해 들어 준비해 3~5월 본격 분양해왔는데, 최근 대선이 3월로 앞당겨졌고 올해는 지방선거도 있어 부동산정책 향배를 지켜보자는 관망세도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과거 분양가 상한제에 대한 건설업계의 불만은 볼멘소리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진짜 위기라고 할 수 있다”며 “건설 자재 가격은 물론, 인건비까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크게 뛰고 있는 만큼 이제 분양가 상한제를 손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특히 직격탄을 맞은 것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이다. 최근 서울 등 수도권의 주요 재건축 현장에서는 건설사와 재건축 조합의 갈등으로 사업 진행이 차질을 빚고 있다. 1만2032채 규모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분양가 산정을 놓고 시공사업단과 재건축조합 간 갈등으로 최근 공사가 중단됐다. 분양가 산정 갈등은 서초구 신반포15차 재건축, 동대문구 이문1구역 재개발, 경기 광명시 광명2구역 재개발 현장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경기 성남시 수진1구역 재개발, 부산 해운대구 우동3구역 재개발 등 정비 사업은 최근 시공사 입찰 공고를 냈으나 공사비가 낮게 책정됐다는 이유로 건설사 참여가 미진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서울에선 아파트 3.3㎡당 공사비가 530만 원가량 소요되는데, 분양가 산정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는 재건축 단지는 인근의 ‘대장 입지’인 경우가 많아 (3.3㎡ 당 공사비가) 550만 원 정도는 돼야 사업성을 겨우 충족한다”고 말했다. 당초 건설사가 제시한 분양가가 공사비 인상으로 변동되자 정비 사업 조합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지도부가 물러나고 새 조합이 결성되는 등 사업 진행에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분양가 산정은 서울의 경우 구(區)별로 이뤄지는데 같은 구라고 해도 지역별로 아파트 가격에 큰 차이가 있어 ‘평균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면서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가 위치한 곳으로부터 반경 일정 거리 내 기존 아파트 가격을 기준으로 분양가 산정을 하는 등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수요자 부담 줄일 조치 병행해야”

    부동산시장 전문가들은 분양가 상한제 존치를 두고 의견 차를 보였지만 “산정 기준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한목소리를 냈다. 김인만 소장은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할 필요는 없지만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높아진 건축비를 반영해야 한다”며 “주변 아파트 시세의 90% 수준으로 분양가 상한 규제를 완화하면 집값 상승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분양받는 사람도 10%가량 저렴한 가격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규제 완화 시그널이 자칫 분양가 폭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디테일한 조정이 필요하다”면서 “실수요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별도의 조치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과거에는 고급 아파트를 짓는다는 명목으로 외국산 자재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건축비를 높게 인정해달라는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분양가 ‘뻥튀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건설사가 무리하게 분양가를 올려놓아도 미분양이 속출하면 결국 시세에 맞게 할인 분양할 수밖에 없는 만큼 실제 건설비와 분양가가 연동될 수 있도록 산정 기능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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