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04

2021.08.27

“4년 뒤 5조 시장” 유통업계 ‘퀵커머스’ 전쟁

배달 앱 · 편의점 · 백화점 30분 퀵배송 참전… “출혈 경쟁 불가피”

  • 윤혜진 객원기자

    imyunhj@gmail.com

    입력2021-08-3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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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S리테일은 6월 자체 배달 앱 ‘우리동네 딜리버리’를 시작했다(왼쪽). 배달의민족 ‘B마트’ 서비스. [사진 제공 · GS리테일, 사진 제공 · 배달의민족]

    GS리테일은 6월 자체 배달 앱 ‘우리동네 딜리버리’를 시작했다(왼쪽). 배달의민족 ‘B마트’ 서비스. [사진 제공 · GS리테일, 사진 제공 · 배달의민족]

    유통업계 새 키워드로 ‘퀵커머스(quick commerce)’가 주목받고 있다. ‘퀵커머스’란 고객이 상품을 주문하면 15분~1시간 내 상품을 배송해주는 즉시 배송 서비스. 인공지능(AI)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선별한 신선식품과 생필품 등을 도심 곳곳에 있는 마이크로풀필먼트센터(MFC)에 보관하다 주문이 들어오면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물류센터에서 배달기사가 픽업해 즉시 배달한다.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까지 배달해주는 새벽 배송이나 당일 배송보다 빠르고 편리해 인기다.

    ‘요기요’ 인수한 GS리테일, 배민 넘을까

    퀵커머스 시장 개척자는 단연 배달 플랫폼업체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점유율 1위인 배달의민족이 2019년 처음으로 ‘B마트’ 서비스를 론칭했다. B마트의 강점은 디테일이다. 7000여 가지 상품을 판매 중이며 각각의 리뷰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주문 후 어디서 출발해 얼마큼 오고 있는지 지도를 통해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 현재 B마트 최소 주문 금액은 1만 원. 3만 원 미만 주문 시 배달료 3000원이 부과된다.

    배달의민족 모회사인 딜리버리히어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B마트는 지난해 연간 1억700만 유로(약 1467억 원) 매출을 기록하고, 주문 건수도 1000만 건을 넘었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30여 곳에 MFC를 둔 B마트는 SSM(기업형 슈퍼마켓)과 입점 제휴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사업 확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8월에는 B마트 대전 중구점도 열었다.

    쿠팡은 7월부터 서울 송파구에서 ‘쿠팡이츠 마트’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쿠팡이츠 마트는 배달료 2000원에 최소 주문 금액이 따로 없고, 15분 내 배송을 완료해 화제다. MFC에 계약직 직고용 라이더 ‘이츠 친구’를 상주시켜 배달원 연결 시간을 단축했다. 이미 특허청에 퀵커머스와 관련한 다수의 상표권 출원 신청을 해놓는 등 테스트를 거쳐 순차적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쿠팡은 올해 상반기에만 3억5000만 달러(약 4073억 원)를 들여 물류센터에 추가적으로 투자했다.

    배달 앱 퀵커머스와 판매 상품군이 겹치는 편의점업계도 속도 싸움에 뛰어들었다. 편의점 업계 최초로 2019년 요기요와 제휴를 맺은 CU는 바로고·생각대로·메쉬코리아 등 배달대행업체와 협력을 강화하고 네이버·카카오톡 등 가장 많은 배달 플랫폼을 확보했다. 그럼에도 속도전에서 밀리자, 8월부터는 모바일 멤버십 앱 ‘포켓CU’ 예약 구매를 통해 대용량 생필품을 판매하고, 모든 상품을 무료로 배송하는 강수를 뒀다. 요기요, 카카오톡, 위메프오와 손잡은 세븐일레븐도 연말까지 배달 서비스가 가능한 점포를 6000점까지 확장하고 배달 서비스 채널도 최대 9개로 늘릴 계획이다.



    SSM, 백화점 등 오프라인 중심의 유통업체들도 ‘스피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3월부터 ‘1시간 즉시 배송’을 시작해 7월 매출이 3월 대비 275% 신장하는 효과를 봤다. 롯데슈퍼 역시 지난해 11월 서울 잠실점에서 ‘퇴근길 1시간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뒤 올해 초 서비스 지역을 서울 강북과 경기·인천 일부 지역으로 확대했다.

    롯데슈퍼는 ‘퇴근길 1시간 배송’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 롯데슈퍼]

    롯데슈퍼는 ‘퇴근길 1시간 배송’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 롯데슈퍼]

    “유통혁명이 일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아예 콜드체인 시스템을 갖춘 전기트럭을 활용해 신선식품을 30분 내 배송하는 서비스를 7월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반경 3km 내 지역을 대상으로 하며, 10월까지 시험해본 뒤 다른 점포에도 퀵커머스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특히 GS25와 GS더프레시, 랄라블라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의 공격적인 행보가 눈에 띈다. 앞서 물류 브랜드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 지분 19.53%를 인수한 GS리테일은 8월 13일 재무적 투자자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퍼미라와 공동으로 구성한 컨소시엄(이하 컨소시엄)을 통해 배달 앱 요기요를 운영하는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컨소시엄의 최종 인수 금액은 8000억 원이며 GS리테일은 이 중 30% 지분에 해당하는 2400억 원을 투자한다. 단, 이번 인수에는 요기요의 퀵커머스 서비스 ‘요마트’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GS리테일은 이미 상품과 물류센터를 확보한 상태라 퀵커머스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평가다. 6월 자체 배달 앱 ‘우리동네 딜리버리’를 시작한 GS리테일은 “퀵커머스 시장 규모가 2025년까지 최소 5조 원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며 “1만6000여 소매점과 60여 물류센터망이 결합된 도심형 마이크로풀필먼트센터를 통해 퀵커머스 시장에서 압도적인 상품 구색을 갖추고 오프라인과의 시너지 효과 창출을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최근 배달대행업체 바로고가 10분 내 단건 배달 서비스를 하는 배달 앱 ‘텐고’를 출시하고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시험 운영 중이다. 메쉬코리아와 신선식품 새벽 배송 기업 오아시스마켓도 합작법인을 세워 곧 퀵커머스 플랫폼 ‘브이마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너나없이 속도 전쟁에 뛰어드는 분위기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외환위기 때 월마트, 까르푸 같은 대형마트가 들어온 이후로 가장 큰 격변기라고 한다. 유통혁명이 일고 있다”며 “새벽 배송이 자리 잡은 것처럼 속도에 적응한 소비자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퀵커머스 서비스를 계속 이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똥콜’ 돌리는 AI 배정, 피하면 페널티

    비대면·모바일 쇼핑 흐름에 맞춰 유통업계가 꺼낸 ‘속도’라는 차별화 카드는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다. 하지만 기업 간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낳는다. 퀵커머스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물류창고 유지·관리비, 피킹·패킹(picking&packing) 직원 인건비까지 감당해야 한다. 이 때문에 6월 편의점업계 최초로 자체 앱을 통한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던 이마트24는 오픈한 지 한 달여 만에 서비스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현재 이마트는 ‘이마트 에브리데이’를 퀵커머스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달의민족도 B마트 부산 해운대점과 대구 동부점을 냈다 한 달 만에 철수한 바 있다.

    그렇다면 유통업체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 속도전에 왜 뛰어드는 것일까. 한국유통학회 회장인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을 자기 플랫폼에 붙잡아두는 게 중요하니까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퀵커머스 서비스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은 빅데이터와 AI, 상품 소싱, 배송 최적화 시스템에 계속 투자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유통업체들이 유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정 교수는 “당분간 GS리테일과 부릉, 요기요의 만남처럼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전문 기업과의 합종연횡 제휴가 계속될 것”이라며 “e커머스 시장은 워낙 빨리 변하기 때문에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퀵커머스 시장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배달노동자들과 상생이 수반돼야 한다. 현재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AI 알고리즘 배정 방식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배달 플랫폼 라이더들은 일반 배정과 AI 배정 중 콜 잡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데, 업체가 퀵커머스 주문을 AI 배정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 라이더가 ‘생수 폭탄’ ‘똥콜’(배달이 쉽지 않거나 단가가 낮은 콜), 음식점보다 긴 픽업 대기 시간 등의 이유로 퀵커머스 배달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AI 배정 모드에서 들어오는 콜을 연거푸 거부하거나 취소할 경우 배차 수락률 및 완료율이 낮아지고 페널티가 부과되기도 한다. 콜 수에 따라 소득이 달라지는 전업 라이더들은 이를 만회하고자 더 빨리 움직일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교통신호를 지키는 라이더들이 손해 보는 시스템”이라는 불만이 제기되는 이유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 라이더들이 건당으로 지급받는 긱(gig·임시계약) 노동자다 보니 더 많이 배달하려다 시간에 쫓겨 사고가 난다”며 “이 상황에서 투잡, 스리잡으로 배달하는 사람까지 늘면서 보험, 콜 잡기 경쟁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업체 간 경쟁이 심해 배달비 인상에 민감하지만 원래는 편리함을 누리는 소비자가 그만큼의 대가를 더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인상분이 플랫폼이 아닌 라이더에게 실제로 지급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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