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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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상황 대비하는 ‘디자인의 원칙’

눈앞이 캄캄할 때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naver.com

    입력2015-06-22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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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올 상황 대비하는 ‘디자인의 원칙’

    미국 지휘참모대 교재 ‘디자인 방법론’.

    계획(Planning)은 군사작전의 기본, 기초다. ‘평시 한가할 때 계획을 미리 작성해놓았다가 전쟁이 나면 꺼내 쓴다’는 아이디어는 1800년대 말 프러시아(프로이센)에서 처음 나왔는데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전쟁이 그대로 됐는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미국의 경우도 그랬다. 제1, 2차 세계대전에서는 거칠게 말하자면 성공보다 실패 쪽이 컸다. 6·25전쟁에서는 중공군 개입에 대비하지 못했고, 베트남전 패배는 ‘전투에서는 이겼으나 전쟁에서 졌다’는 초라한 교훈을 남겼다.

    전쟁, 작전에서 계획의 적중률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부터인데 원인을 찾지 못해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미군은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진단을 내리기 위해 전쟁 와중에 이론적 탐구와 경험적 교훈의 수집을 동시에 진행했다. 여러 원인이 도출됐으나 계획 측면에만 집중한다면 결론은 ‘계획 수립 이전 단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뭔가 문제가 있는’ 영역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바로 디자인(Design) 개념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부터 해야

    2009년 미국 합동참모대에서 ‘어떻게 작전을 디자인할 것인가(Operational Design)’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수업 서두에 담당 교수로부터 들었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왜 군대에 디자인이 필요한지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이라크전의 군사작전 단계가 마무리되고 민사지원 및 재건을 시작할 무렵이었어요. 어떤 부대는 전투가 아닌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이라크 대도시에 있던 한 대대는 ‘동물원 기능 유지’를 맡았습니다. 그 동물원에는 희귀동물이 많았기 때문에 폐사가 일어나기라도 하면 세계적으로 비난받을 가능성이 높았죠. 하지만 그 대대가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전쟁을 앞두고 기계처럼 움직일 수 있었던 전술적 숙련도는 동물원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물은 안 나오고 전기는 차단됐습니다.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대대는 시간이 멈춘 마을에 있는 주민들처럼 됐습니다. 소용없는 계획을 세우고 다시 고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동물들은 하나 둘씩 죽어갔습니다.”

    동물원에서 미군이 맞닥뜨렸던 것과 같은 상황을 미 지휘참모대 교재인 ‘디자인 방법론(Art of Design)’에서는 ‘얽히고설킨 문제(ill-structured problems)’라고 규정한다. 이전의 군사작전은 문제와 해법이 비교적 명확했기 때문에 해법을 찾아 계획을 잘 세우면 작전 성공률도 높았다. 그런데 오늘날의 군사작전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부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포인트는 ‘문제를 잘 푸는 것(solving the problem right)’ 이전에 ‘제대로 된 문제를 푸는 것(solving the right problem)’이다. 제대로 된 문제를 풀기 위해 디자인은 어떤 원칙을 군사작전에 제시하고 있을까.

    첫째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라는 점이다. 많은 조직과 그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대부분 수동적으로 변화에 끌려가고 있을 뿐이다. 디자인의 원칙은 벌어진 일을 수습할 것이 아니라 변화의 징조가 보이기 전 스스로 변화하라고 주문한다.

    특히 끊임없이 상황을 재평가하고 다가올 문제를 미리 상정해 접근법, 문제해결책 등을 꾸준히 가시화(visualization)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때 이러한 행위가 조직의 궁극적인 목적에 기여하든 안 하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든 못 하든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상황 재평가에서 가시화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구성원들이 공유한 아이디어, 사고방식, 문제 해결 절차 자체가 큰 성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주도권을 유지함으로써 기회를 창출하라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테러와 분쟁에 대한 대응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점조직 단위로 치고 빠지는 테러리스트에 비해 미군은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 방법론’은 주도권을 유지한 가운데 적보다 먼저 움직여야만 기회의 창문이 열린다고 강조한다.

    또한 디자인적 접근방법은 다가올 상황을 미리 상정하고 이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해법을 사용하도록 고무한다. 기존의 모든 가정과 전제를 다 잊고 대면한 새로운 문제에 맞는 새로운 해법을 창안하도록 격려한다.

    세 번째로 리더는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 결정적 순간에 경험적, 직관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전통적인 계획의 절차든, 새롭게 도입된 디자인 방법론이든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체적 방법과 도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탁상공론에 그친다. ‘디자인 방법론’에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마인드맵, 육하원칙, 다이어그램, 브레인스토밍 등으로 시작해 약 30여 종의 다양한 방법과 절차를 제시하고 있다. 리더는 이러한 이론과 실제에 정통해야 한다.

    조직생활에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법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능력에 부치는 일을 맡거나 기한 내 달성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받아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자인의 원칙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첫째로 만고의 진리는 멀리 보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미 정부 및 다국적 기업의 협상을 맡아온 짐 토머스(Jim Thomas)는 ‘협상에서 사전작업을 대체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평소 업무를 미리미리 준비하는 사람은 협상의 사전작업도 미리미리 해놓는다고 했다.

    업무는 대개 서쪽 하늘로 지는 하루와 같은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감당도 못할 일을 대책 없이 시키는 회사는 없다. 중·장기 계획에 포함돼 있고 돌아가는 분위기를 봐도 어느 정도 이 일이 나에게 오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일이 나에게 오면 큰일인데’ 하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한발 물러나는 것이다. 그보다 적극적으로 ‘이 일이 나에게 오면 이렇게 해야겠구나’ 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로 제로베이스 사고방식을 생활화해야 한다. 우리가 ‘주도권을 쥔다’ ‘기회를 잡는다’고 표현할 때 둘 사이의 공통점은 ‘손으로 쥐는(잡는) 행위’를 차용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뭔가를 쥐거나 잡으려면 손안에 이미 들고 있던 것을 놓아야 한다.

    제로베이스 사고방식도 마찬가지다. 전통 있는 회사라도 ‘작년에 보고했던 문서 가져와봐’ ‘전에는 어떻게 했지?’ ‘하던 대로 그냥 해’ 같은 시대착오적 업무 행태를 보이기 쉽다. 기존 방식과 고정관념을 완전히 버릴 때만이 대책 없어 보이는 얽히고설킨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셋째로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이 힘들고 어려워지는 것은 정상이기 때문에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조직은 직급이 높아질수록 업무 내용이 편해지고 시간도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변화에 미리 대처하면서 도전을 받아들이는 조직은 그 반대다. 업무는 더 어려워지고 시간은 줄어든다.

    얽히고설킨 문제에 직면했을 때 새로운 문제의 핵심을 한발 앞서 파악하고 최신의 접근법을 적용하는 데 나서야 하는 것이 바로 리더다. 그렇기 때문에 위로 올라갈수록 더 많이 공부해야만 한다.

    리더일수록 더 많이 일하고 시간을 쪼개서 연구하는 대표적 집단이 바로 미군이다. 걸프전의 신화를 만들었던 ‘공지전(Air-Land Battle)’ 이론을 창안한 것은 당시 교육사령관이던 돈 스태리(Don A. Starry) 대장이다. 미군 대테러전과 대반란전의 두꺼운 교범은 각각 스탠리 매크리스털(Stanley A. McChrystal)과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David Petraeus) 대장이 직접 연구 집필했다. 미군이 강군인 진정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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