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201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았다.
철학자 니체는 일갈했다. “죽음, 그리고 죽음의 정숙함이야말로 우리 미래에서 유일하고도 확실하며 모두에게 평등하다! 이 유일하고 확실하며 평등한 사실이 인간에게 아무런 힘도 미치지 못하다니, 또 인간은 자신이 죽음의 형제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다니 이 얼마나 괴이한 일인가!”
호스피스운동의 선구자로 꼽히는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인생 수업’이라는 책에서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들은 그 순간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거장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는 5월 열린 칸영화제 초반부터 평론가들에게 격찬을 받았고, 결국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제목 ‘아무르’는 프랑스어로 ‘사랑’을 뜻하지만, 제목을 ‘삶’ 또는 ‘죽음’이라고 바꿔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작품이다. 그만큼 삶과 사랑, 죽음의 본질에 대한 통절한 성찰을 담고 있다. ‘죽음’이라는 예정된 시간표를 받아든 노부부의 마지막 사랑과 삶의 마지막 순간들을 아름답고 비극적이며 통렬하게 그리면서 인생과 존재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주인공 조르주(장루이 트랭티냥 분)와 안(에마뉘엘 리바 분)은 80대 노부부다.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던 두 사람은 평생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 배려, 존경으로 살아왔다. 첫 장면은 부부가 제자의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다. 그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교양과 지식, 그리고 사랑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아하고 정갈하며 여유롭고 기품 있게 배치된 주거 공간 역시 부부 사이에 흐르는 온화하며 성숙한 공기를 느끼게 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둘만의 아침식사 자리. 갑자기 아내 안이 잠깐 동안 목석이 된다. 말도 없고 반응도 없이 의자에 멍하게 앉아 있다가 잠시후 깨어난 안. 병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죽음의 그림자는 예고 없이 부부를 찾아온다. 이후 영화는 죽음이 안의 삶을 조금씩 잠식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수술을 받고 휠체어에 앉은 채 퇴원한 안은 이제 한 팔과 다리를 못 쓴다. 하지만 휠체어에서나마 거동했던 안은 이내 남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온몸이 마비된다. 말도 점점 무뎌지고, 발음은 갈수록 어눌해진다.
남편 조르주는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무너져가는 아내의 육신과 정신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처지다. 간간이 찾아오는 중년의 딸 에바(이자벨 위페르 분)는 아버지를 만나 걱정과 슬픔을 나누기도 하고 한탄과 질타를 쏟아내기도 한다. 수술 후 병세가 악화하는 어머니를 침대에만 눕혀놓는 아버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방문할 때마다 격정에 휩싸이는 딸에게 아버지는 한결같이 담담한 목소리로 “네가 도울 일은 없다. 우리끼리 잘할 수 있다” “(다른 치료법이 있다면) 네가 알아봐라. 너만큼 나도 네 엄마를 사랑한다” “이젠 간호사가 일주일에 세 번씩 올 거다. 다른 이야길 하자”고 대꾸할 뿐이다.
삶을 예찬하는 마지막 방법
아내의 병과 소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 조르주. 안은 수술 후 절대로 병원에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당부했고, 병세가 악화하자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남편에게 털어놓는다. 조르주는 물을 떠넣어주는데도 아내가 입술을 굳게 닫은 채 거부하자 마침내 마음속 깊숙이 꼭꼭 눌러 놓았던 슬픔을 폭발시킨다. 이 영화에서 가장 격렬한 순간이다. 남편의 오열은 이제 부부가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이 목전에 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마지막까지 삶의 존엄을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노부부의 치열한 싸움을 담았다. 화면과 음악, 대사는 엄격하면서도 아름답게 조율됐다. 절제된 영상과 이야기는 죽음이 삶을 잠식하듯 객석을 서서히 침윤해 들어가다 극적인 결말로 강렬한 여운을 만들어낸다. 올드팬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남과 여’의 남자주인공 장루이 트랭티냥의 연기가 빼어나다. 온몸을 죽음에 내주면서도 남편의 사랑과 삶의 아름다움을 지켜내려는 안 역의 에마뉘엘 리바와 딸 에바 역의 이자벨 위페르 역시 품격 있는 호연을 보여준다.
미하엘 하네케 감독은 올해로 70세가 됐다. 2009년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하얀 리본’을 비롯해 ‘히든’ ‘퍼니 게임’ 등에선 폭력과 권력, 죄책감, 금욕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영상화하며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스크린에 불어넣었다. ‘아무르’는 그동안 인간과 권력의 폭력적인 본성에 초점을 맞춰온 거장 감독이 눈을 돌려 인생에 대한 혜안을 담아낸 작품이다.
허망하지 않고 애끓는 안타까움이 없는 죽음이 있을까. 지인과 유명인의 죽음을 접할 때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죽음의 무게를 다시 한 번 달아본다. 최근 출판가에서는 ‘웰다잉(well-dying)’, 즉 잘 죽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인기라고 한다. 이들 저서들은 하나같이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 더 자주 이야기할 것”을 권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더 잘 살기 위해 우리는 더욱 잘 죽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의학적 의미가 아니라 본질적 의미에서 존엄한 죽음은 스스로 살아온 삶에 대한 예의이자, 삶을 예찬하는 가장 마지막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니체는 일갈했다. “죽음, 그리고 죽음의 정숙함이야말로 우리 미래에서 유일하고도 확실하며 모두에게 평등하다! 이 유일하고 확실하며 평등한 사실이 인간에게 아무런 힘도 미치지 못하다니, 또 인간은 자신이 죽음의 형제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다니 이 얼마나 괴이한 일인가!”
호스피스운동의 선구자로 꼽히는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인생 수업’이라는 책에서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들은 그 순간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거장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는 5월 열린 칸영화제 초반부터 평론가들에게 격찬을 받았고, 결국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제목 ‘아무르’는 프랑스어로 ‘사랑’을 뜻하지만, 제목을 ‘삶’ 또는 ‘죽음’이라고 바꿔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작품이다. 그만큼 삶과 사랑, 죽음의 본질에 대한 통절한 성찰을 담고 있다. ‘죽음’이라는 예정된 시간표를 받아든 노부부의 마지막 사랑과 삶의 마지막 순간들을 아름답고 비극적이며 통렬하게 그리면서 인생과 존재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주인공 조르주(장루이 트랭티냥 분)와 안(에마뉘엘 리바 분)은 80대 노부부다.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던 두 사람은 평생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 배려, 존경으로 살아왔다. 첫 장면은 부부가 제자의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다. 그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교양과 지식, 그리고 사랑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아하고 정갈하며 여유롭고 기품 있게 배치된 주거 공간 역시 부부 사이에 흐르는 온화하며 성숙한 공기를 느끼게 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둘만의 아침식사 자리. 갑자기 아내 안이 잠깐 동안 목석이 된다. 말도 없고 반응도 없이 의자에 멍하게 앉아 있다가 잠시후 깨어난 안. 병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죽음의 그림자는 예고 없이 부부를 찾아온다. 이후 영화는 죽음이 안의 삶을 조금씩 잠식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수술을 받고 휠체어에 앉은 채 퇴원한 안은 이제 한 팔과 다리를 못 쓴다. 하지만 휠체어에서나마 거동했던 안은 이내 남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온몸이 마비된다. 말도 점점 무뎌지고, 발음은 갈수록 어눌해진다.
남편 조르주는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무너져가는 아내의 육신과 정신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처지다. 간간이 찾아오는 중년의 딸 에바(이자벨 위페르 분)는 아버지를 만나 걱정과 슬픔을 나누기도 하고 한탄과 질타를 쏟아내기도 한다. 수술 후 병세가 악화하는 어머니를 침대에만 눕혀놓는 아버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방문할 때마다 격정에 휩싸이는 딸에게 아버지는 한결같이 담담한 목소리로 “네가 도울 일은 없다. 우리끼리 잘할 수 있다” “(다른 치료법이 있다면) 네가 알아봐라. 너만큼 나도 네 엄마를 사랑한다” “이젠 간호사가 일주일에 세 번씩 올 거다. 다른 이야길 하자”고 대꾸할 뿐이다.
삶을 예찬하는 마지막 방법
아내의 병과 소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 조르주. 안은 수술 후 절대로 병원에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당부했고, 병세가 악화하자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남편에게 털어놓는다. 조르주는 물을 떠넣어주는데도 아내가 입술을 굳게 닫은 채 거부하자 마침내 마음속 깊숙이 꼭꼭 눌러 놓았던 슬픔을 폭발시킨다. 이 영화에서 가장 격렬한 순간이다. 남편의 오열은 이제 부부가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이 목전에 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마지막까지 삶의 존엄을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노부부의 치열한 싸움을 담았다. 화면과 음악, 대사는 엄격하면서도 아름답게 조율됐다. 절제된 영상과 이야기는 죽음이 삶을 잠식하듯 객석을 서서히 침윤해 들어가다 극적인 결말로 강렬한 여운을 만들어낸다. 올드팬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남과 여’의 남자주인공 장루이 트랭티냥의 연기가 빼어나다. 온몸을 죽음에 내주면서도 남편의 사랑과 삶의 아름다움을 지켜내려는 안 역의 에마뉘엘 리바와 딸 에바 역의 이자벨 위페르 역시 품격 있는 호연을 보여준다.
미하엘 하네케 감독은 올해로 70세가 됐다. 2009년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하얀 리본’을 비롯해 ‘히든’ ‘퍼니 게임’ 등에선 폭력과 권력, 죄책감, 금욕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영상화하며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스크린에 불어넣었다. ‘아무르’는 그동안 인간과 권력의 폭력적인 본성에 초점을 맞춰온 거장 감독이 눈을 돌려 인생에 대한 혜안을 담아낸 작품이다.
허망하지 않고 애끓는 안타까움이 없는 죽음이 있을까. 지인과 유명인의 죽음을 접할 때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죽음의 무게를 다시 한 번 달아본다. 최근 출판가에서는 ‘웰다잉(well-dying)’, 즉 잘 죽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인기라고 한다. 이들 저서들은 하나같이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 더 자주 이야기할 것”을 권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더 잘 살기 위해 우리는 더욱 잘 죽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의학적 의미가 아니라 본질적 의미에서 존엄한 죽음은 스스로 살아온 삶에 대한 예의이자, 삶을 예찬하는 가장 마지막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