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의원 글로벌 매너 낙제점?
글로벌 리더십 아카데미 안경환 원장은 “특히 대통령이나 총리, 재벌 그룹 총수 등이 글로벌 비즈니스 자리에서 매너를 지키지 못하면, 그 피해가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황식 총리,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등 정재계 거물이 글로벌 비즈니스 자리에서 행한 각종 실수담을 ‘증거 사진’과 함께 자신의 블로그(mrahn.kr)에 빼곡히 정리했다. 1970~80년대 수출입은행에서 일하며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를 배우고 익혔다는 안 원장은 관련 강연만 20여 년 해온 전문가.
안 원장은 “정상회담을 할 때 이명박 대통령의 자세는 글로벌 매너 관점에서 논란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통 정상회담 때 양국 정상은 양쪽에 팔걸이가 있는 1인용 소파에 앉는다. 이때 상대방 쪽으로 몸을 돌려 한쪽 팔걸이에 기대 앉은 채 손은 앞으로 모아 경청하는 태도를 취하는 게 글로벌 매너인데, 이 대통령은 양쪽 팔걸이에 두 손을 올리고 ‘당당하게’ 앉았다는 것. 이 경우 상대방은 무의식적으로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 “백령도 천안함 사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 이 대통령의 의상 선택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검은색 가죽재킷에 옅은 색 바지를 입었다. 단호한 리더십을 보여주려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기지를 방문했을 때의 오바마 미국 대통령처럼 상하의 모두 짙은 의상을 입었어야 했다는 것.
대통령실 김창범 의전비서관은 이런 지적에 대해 일일이 해명했다. 먼저 건배할 때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사진을 찍는 각도에 따라 시선 위치가 다르게 보일 수 있고, 특히 건배 후 잔을 본인 앞으로 가지고 올 때 눈이 잔으로 가는 건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 대통령이 양쪽 팔걸이에 두 손을 얹고 당당히 앉은 자세는 단호함이나 결연함을 보여준다. 반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거나 경의를 표할 때는 손을 모으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등 다른 자세를 취한다”고 했다.
또 이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은 빈번한 만남을 통해 격의 없는 친구가 됐기 때문에 두 정상이 손을 잡고 파안대소한 것은 ‘서구사회의 터부’를 넘어선 끈끈한 우정과 우의의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김 비서관은 “사진 한 장으로 대통령의 전체적인 움직임이나 자세 등을 평가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1 글로벌 리더십 아카데미 안경환 원장은 “정상회담 때 이명박 대통령의 자세는 글로벌 매너 관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2 위아래 다른 색 옷을 입은 이 대통령과 비슷한 계열의 짙은 색 상하의를 입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반면 유엔 차석대사를 지낸 국가브랜드위원회 서대원 국제협력분과위원장(‘글로벌 파워 매너’저자)은 “대통령이나 총리, 재계 총수 등은 자국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인’인 만큼 사진에 찍힌 자신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면, 이를 고치려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며 “사진은 평소 태도와 행동 등 매너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2010년 5월에 있었던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회담 이후 당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중국의 양제츠 외교부장과 일본의 오카다 가쓰야 외무대신을 ‘호국의 상징’인 불국사로 ‘모신’ 것도 아쉬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안 원장의 말이다.
“그때 우리는 천안함 폭침 사태에 대한 양국, 특히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을’의 위치에 있었다. 그렇다면 불국사가 아닌 양산 통도사에 갔어야 했다. 그곳에는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이 직접 쓴 현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중국 측 인사들의 마음이 흔들렸을 테고, 원하는 바를 더 많이 얻어냈을 것이다.”
3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유럽 순방 중 공식 모임에 참석하면서 단 한 번도 귀고리를 하지 않았다. 매너 전문가들은 “여성에게 귀고리는 남성의 넥타이 같은 구실을 한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의 이춘상 보좌관은 “박 의원은 원래 귀고리를 안 한다”며 “평소 안 하는데 서구의 누구를 만나려고 귀고리를 하는 것은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오랫동안 외교를 해온 만큼 박 전 대표는 스스로 자신의 옷차림을 코디한다”며 “항상 예의에 맞춰 정장을 입고, 옷 모양새에 따라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매너는 정계 인사만 지켜야 하는 게 아니다. 안 원장은 “2009년 포스코가 베트남 호치민 시 인근에 지은 냉연강판 공장 준공식 자리에서 정준양 회장이 ‘한자’로 사인한 것도 상대국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주장했다. 베트남과 중국은 역사상 사이가 좋지 않은 데다 1979년엔 국경에서 전쟁을 벌인 적도 있기 때문.
이런 매너에 맞지 않는 행동이 경제적 관점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2007년 프랑스 거대 기업과 서명 직전까지 갔던 합작 프로젝트가 한국적 기준으로 볼 때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 예도 있다. 프랑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연 저녁 모임에서 한국 기업 측 인사가 CEO의 부인이 정성을 다해 준비한 스테이크 소스의 맛은 보지 않고 “혹시 A1 소스 있나요”라고 묻고, 다른 이들도 “저도요” “저도요” 한 게 화근이었다.
서양음식은 소스가 요리의 정수다. 식사 초대를 한 호스티스가 음식 솜씨를 가장 뽐낼 수 있는 것도 바로 소스. 그런데 ‘사모님표’ 요리의 정수를 ‘무시’한 채 공장에서 다량으로 ‘찍어낸’ 미국산 소스를 찾다니…. 한국 측 인사들의 ‘무매너’에 프랑스 ‘사모님’이 노발대발했고, 그것으로 프로젝트의 운명은 정해졌다.
지금 비즈니스 전쟁터는 전 세계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매너를 갖추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인도에서는 ‘글로벌 매너’를 가르쳐주는 이른바 ‘교양 학교’가 성업 중이다. 국내 대기업도 임직원을 대상으로 테이블 매너, 와인 교육, 만찬장에서의 화술 등을 교육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 전문가들은 “매너는 단순히 사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돈과 직접 연결된 비즈니스의 필수적 요소”라고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글로벌 비즈니스 자리에서 매너를 지키지 못하면 주요 계약을 따내지 못하거나, 제대로 된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해 가격 협상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등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성문화된 법 또는 에티켓이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이라면, 매너는 그러한 규범을 드러내는 방법에 가깝다. 상황이나 상대방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게 매너다. 이에 매너는 ‘있다’ 또는 ‘없다’라고 하지 않고, ‘좋다’ 또는 ‘나쁘다’라고 표현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관련 책이나 선배들은 ‘외국인에게 나이나 결혼 여부 등 사생활을 묻는 건 실례’라고 조언했고, 나는 이를 철칙으로 여겼다. 그런데 몇 차례 만난 외국인 바이어가 가벼운 잡담을 나누다가 ‘최근 전처와 다시 데이트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서 조심스레 ‘언제 이혼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마치 물어봐주길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결혼 및 이혼 과정, 전처와 다시 만나게 된 이유 등을 시시콜콜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내 연애 여부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후로 급속히 가까워졌다. 도저히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외국인 비즈니스 파트너를 대하는 일이다.”(무역회사 근무 김모 사원)
이처럼 매너에 ‘철칙’이란 없다. 격식을 차리는 게 좋은 매너지만, 때론 격식을 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또 통상 ‘유럽이나 북미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기준을 글로벌 스탠더드라 하며 이를 따르라’고 하지만, 실제로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로컬 스탠더드’를 따라야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글로벌 비즈니스에 적합한 매너를 갖추는 건 중요하다. 매너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요상한 녀석이라지만, ABC는 있다. 좋은 매너를 갖추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