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이 영국 집권당을 쥐고 흔든다.’
영국 정가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루퍼트 머독과 보수당의 유착 의혹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를 조짐이다. 위성채널인 ‘비스카이비(BSkyB)’의 지분 100% 인수를 놓고, 최근 정부 승인을 받은 뉴스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 이하 뉴스코프)의 고위 관계자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지난해 말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중도 좌파 성향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 직전 캐머런 총리가 루퍼트 머독의 아들로 사실상 머독 그룹을 지배하는 제임스 머독과 옥스퍼드 근처 한 사저에서 비밀 회동을 가졌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이 저녁 비밀 회동의 시기와 장소 때문에 의혹이 커지고 있다. 비밀 회동이 이뤄질 무렵 영국 정가는 루퍼트 머독과 관련한 스캔들로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러웠다. 보수당과 긴장 관계를 유지해온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 소속 빈스 케이블 산업부 장관이 비공개 석상에서 “머독과의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케이블 장관은 당시만 해도 뉴스코프의 BSkyB 지분 인수에 대한 심사권을 가진 주무장관이었다.
캐머런 총리와 저녁 비밀 회동
캐머런 총리는 주무장관의 편파적 발언이 물의를 빚자 BSkyB 지분 인수 협상에 대한 주무부처를 산업부에서 문화부로 바꿨다. 제러미 헌트 문화부 장관은 총리와 같은 보수당 소속이다. 최근 BSkyB 지분 인수 협상에 대한 반독점 심사를 면제해줘 머독 측의 손을 들어준 것도 헌트 장관이다.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없는 장관을 의사결정 라인에서 배제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총리가 뉴스코프 측 핵심 관계자와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사실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총리와 머독 측의 회동이 있었던 장소 또한 의심스럽다. 회동 장소는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신문 ‘더 뉴스 오브 더 월드’의 핵심 임원을 지낸 레베카 브룩스의 집이었다. 그는 영국 미디어업계에서 루퍼트 머독의 대리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브룩스는 얼마 전 영국 전역을 발칵 뒤집어놓은 ‘뉴스 오브 더 월드’의 유명 인사 도청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편집 책임자로 있었다. 캐머런 총리는 내각을 조각할 때 이 신문 출신의 다른 언론인을 홍보 책임자로 기용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이런 일련의 의혹에 대해 캐머런 총리는 “레베카 브룩스의 남편과 오랜 친구 관계를 유지한 인연으로 저녁을 함께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친보수당 매체뿐 아니라 반보수 매체의 고위 관계자와도 종종 식사모임을 갖는 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캐머런 총리의 해명에도 의혹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영국에서 루퍼트 머독 소유의 미디어가 급성장한 과정을 보면 보수당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보수당 정부는 이미 2개의 신문(‘더 선’ ‘뉴스 오브 더 월드’)을 소유한 루퍼트 머독이 ‘더 타임스’와 ‘선데이 타임스’를 추가 인수하는 것을 허용했다. 반독점위원회의 심사는 생략했다.
그러나 훗날 비밀 해제된 영국 정부의 내부문서에 따르면, 당시 주무부처였던 통상부 장관이 당초 반독점위원회가 인수 과정과 미디어산업 독점 가능성을 실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루퍼트 머독과 회동한 이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통상부 장관은 기존 정책을 바꿔 반독점 조사를 거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의회와 언론계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그러나 루퍼트 머독이 이 ‘1차 합병’을 통해 영국 신문 시장의 맹주로 떠오른 뒤였다.
루퍼트 머독은 10년 후 ‘2차 합병’ 때도 정부의 규제 칼날을 솜씨 좋게 피해 나갔다. 1990년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스카이(Sky) TV와 영국 위성방송(BSB)을 통합해 다시 한 번 몸집을 불린 것이다. 천문학적 적자 탓에 합병이라는 수단을 선택하지 않고서는 파산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정부를 설득했고, 정부는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탄생한 BSkyB는 그 후 다시 10년을 거치면서 세전 이익으로만 10억 파운드(약 1조8000억 원)를 벌어들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탈바꿈했다.
루퍼트 머독은 지난해 영국의 방송 산업과 정치권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1, 2차 합병을 통해 거대 미디어제국으로 성장한 뉴스코프가 이미 39%의 지분을 소유한 BSkyB의 나머지 지분 61%를 모두 인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인수 협상이 정부의 승인 절차를 통과해 머독 측은 BSkyB의 순이익을 독점할 수 있게 됐다. 노무라 은행의 추산에 따르면, BskyB의 2015년 연간 순이익은 14억 파운드(약 2조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문화부 장관 “유착? 몰상식한 얘기”
국내 연매출액(59억 파운드)만으로 이미 공영방송 BBC가 전 세계 시장에서 한 해 동안 벌어들이는 매출액(38억 파운드)을 훨씬 뛰어넘는 돈벌이를 해온 뉴스코프로서는 BSkyB 경영권 독점을 통해 다시 한 번 도약의 기회를 거머쥐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작용도 만만치 않다. 경쟁업체를 비롯한 기존 미디어들의 반발 기류 역시 크게 확산됐기 때문이다. 머독이 BSkyB의 경영권 100% 확보 의사를 밝히자 BBC를 포함한 방송사와 ‘가디언’을 포함한 영국 주요 신문사 대표는 당시 주무장관이던 케이블 산업부 장관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공개서한에 서명한 주요 언론사 대표는 “뉴스코프의 인수합병이 영국의 미디어 다원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버진이나 BT 같은 일부 미디어그룹은 이미 정부와 뉴스코프, 정부 산하 규제위원회를 상대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루퍼트 머독 소유의 ‘더 타임스’가 사설을 통해 BBC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설은 70여 개에 이르는 BBC의 텔레비전 및 라디오 채널과 온라인 서비스를 열거하며 BBC가 뉴스코프에 맞서면서 상업적인 반사 이익을 취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논란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 보수당과 머독 그룹의 유착 의혹에 대해 헌트 문화부 장관은 “몰상식한 얘기”라고 반박한다. 이미 39%의 지분을 가진 뉴스코프가 사실상 BSkyB를 지배해왔기 때문에 100% 지분을 확보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 측의 이런 분위기에 맞춰 뉴스코프 측도 정보 독점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BSkyB에서 뉴스 채널을 분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도 이에 화답하듯 당초 반독점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바꿔 이 문제를 공정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캐머런 총리가 머독 측과 만찬 회동을 가진 지 두 달 만의 일이다. 루퍼트 머독이 BSkyB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 상황에서 보수당과의 유착설이 잠잠해질지, 아니면 더욱 기승을 부릴지 예측하긴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처 정부 시절에 그러했듯, 정부 일각에서 언젠가는 비밀 해제 운명을 맞을 모종의 내부문서가 작성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영국 정가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루퍼트 머독과 보수당의 유착 의혹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를 조짐이다. 위성채널인 ‘비스카이비(BSkyB)’의 지분 100% 인수를 놓고, 최근 정부 승인을 받은 뉴스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 이하 뉴스코프)의 고위 관계자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지난해 말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중도 좌파 성향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 직전 캐머런 총리가 루퍼트 머독의 아들로 사실상 머독 그룹을 지배하는 제임스 머독과 옥스퍼드 근처 한 사저에서 비밀 회동을 가졌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이 저녁 비밀 회동의 시기와 장소 때문에 의혹이 커지고 있다. 비밀 회동이 이뤄질 무렵 영국 정가는 루퍼트 머독과 관련한 스캔들로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러웠다. 보수당과 긴장 관계를 유지해온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 소속 빈스 케이블 산업부 장관이 비공개 석상에서 “머독과의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케이블 장관은 당시만 해도 뉴스코프의 BSkyB 지분 인수에 대한 심사권을 가진 주무장관이었다.
캐머런 총리와 저녁 비밀 회동
캐머런 총리는 주무장관의 편파적 발언이 물의를 빚자 BSkyB 지분 인수 협상에 대한 주무부처를 산업부에서 문화부로 바꿨다. 제러미 헌트 문화부 장관은 총리와 같은 보수당 소속이다. 최근 BSkyB 지분 인수 협상에 대한 반독점 심사를 면제해줘 머독 측의 손을 들어준 것도 헌트 장관이다.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없는 장관을 의사결정 라인에서 배제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총리가 뉴스코프 측 핵심 관계자와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사실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총리와 머독 측의 회동이 있었던 장소 또한 의심스럽다. 회동 장소는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신문 ‘더 뉴스 오브 더 월드’의 핵심 임원을 지낸 레베카 브룩스의 집이었다. 그는 영국 미디어업계에서 루퍼트 머독의 대리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브룩스는 얼마 전 영국 전역을 발칵 뒤집어놓은 ‘뉴스 오브 더 월드’의 유명 인사 도청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편집 책임자로 있었다. 캐머런 총리는 내각을 조각할 때 이 신문 출신의 다른 언론인을 홍보 책임자로 기용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이런 일련의 의혹에 대해 캐머런 총리는 “레베카 브룩스의 남편과 오랜 친구 관계를 유지한 인연으로 저녁을 함께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친보수당 매체뿐 아니라 반보수 매체의 고위 관계자와도 종종 식사모임을 갖는 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캐머런 총리의 해명에도 의혹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영국에서 루퍼트 머독 소유의 미디어가 급성장한 과정을 보면 보수당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보수당 정부는 이미 2개의 신문(‘더 선’ ‘뉴스 오브 더 월드’)을 소유한 루퍼트 머독이 ‘더 타임스’와 ‘선데이 타임스’를 추가 인수하는 것을 허용했다. 반독점위원회의 심사는 생략했다.
그러나 훗날 비밀 해제된 영국 정부의 내부문서에 따르면, 당시 주무부처였던 통상부 장관이 당초 반독점위원회가 인수 과정과 미디어산업 독점 가능성을 실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루퍼트 머독과 회동한 이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통상부 장관은 기존 정책을 바꿔 반독점 조사를 거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의회와 언론계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그러나 루퍼트 머독이 이 ‘1차 합병’을 통해 영국 신문 시장의 맹주로 떠오른 뒤였다.
루퍼트 머독은 10년 후 ‘2차 합병’ 때도 정부의 규제 칼날을 솜씨 좋게 피해 나갔다. 1990년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스카이(Sky) TV와 영국 위성방송(BSB)을 통합해 다시 한 번 몸집을 불린 것이다. 천문학적 적자 탓에 합병이라는 수단을 선택하지 않고서는 파산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정부를 설득했고, 정부는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탄생한 BSkyB는 그 후 다시 10년을 거치면서 세전 이익으로만 10억 파운드(약 1조8000억 원)를 벌어들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탈바꿈했다.
루퍼트 머독은 지난해 영국의 방송 산업과 정치권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1, 2차 합병을 통해 거대 미디어제국으로 성장한 뉴스코프가 이미 39%의 지분을 소유한 BSkyB의 나머지 지분 61%를 모두 인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인수 협상이 정부의 승인 절차를 통과해 머독 측은 BSkyB의 순이익을 독점할 수 있게 됐다. 노무라 은행의 추산에 따르면, BskyB의 2015년 연간 순이익은 14억 파운드(약 2조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문화부 장관 “유착? 몰상식한 얘기”
국내 연매출액(59억 파운드)만으로 이미 공영방송 BBC가 전 세계 시장에서 한 해 동안 벌어들이는 매출액(38억 파운드)을 훨씬 뛰어넘는 돈벌이를 해온 뉴스코프로서는 BSkyB 경영권 독점을 통해 다시 한 번 도약의 기회를 거머쥐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작용도 만만치 않다. 경쟁업체를 비롯한 기존 미디어들의 반발 기류 역시 크게 확산됐기 때문이다. 머독이 BSkyB의 경영권 100% 확보 의사를 밝히자 BBC를 포함한 방송사와 ‘가디언’을 포함한 영국 주요 신문사 대표는 당시 주무장관이던 케이블 산업부 장관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공개서한에 서명한 주요 언론사 대표는 “뉴스코프의 인수합병이 영국의 미디어 다원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버진이나 BT 같은 일부 미디어그룹은 이미 정부와 뉴스코프, 정부 산하 규제위원회를 상대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루퍼트 머독 소유의 ‘더 타임스’가 사설을 통해 BBC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설은 70여 개에 이르는 BBC의 텔레비전 및 라디오 채널과 온라인 서비스를 열거하며 BBC가 뉴스코프에 맞서면서 상업적인 반사 이익을 취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논란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 보수당과 머독 그룹의 유착 의혹에 대해 헌트 문화부 장관은 “몰상식한 얘기”라고 반박한다. 이미 39%의 지분을 가진 뉴스코프가 사실상 BSkyB를 지배해왔기 때문에 100% 지분을 확보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 측의 이런 분위기에 맞춰 뉴스코프 측도 정보 독점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BSkyB에서 뉴스 채널을 분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도 이에 화답하듯 당초 반독점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바꿔 이 문제를 공정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캐머런 총리가 머독 측과 만찬 회동을 가진 지 두 달 만의 일이다. 루퍼트 머독이 BSkyB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 상황에서 보수당과의 유착설이 잠잠해질지, 아니면 더욱 기승을 부릴지 예측하긴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처 정부 시절에 그러했듯, 정부 일각에서 언젠가는 비밀 해제 운명을 맞을 모종의 내부문서가 작성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