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및 5대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PF대출, 금융권 전산망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아래는 산업은행 본점.
5월 17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우리금융지주(이하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을 5개월 만에 재개하고, 산은금융지주(이하 산은금융)가 기다렸다는 듯 우리금융 인수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자 한 금융권 인사가 한 말이다. 민영화 대상인 산은금융이 우리금융 인수를 통해 초대형 국영 은행으로 재탄생한다면, 지지부진한 민영화 논의에서 벗어나 단숨에 영업 경쟁력을 확보하며 명실상부 한국의 리딩 금융지주사로 발돋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금융지주사는 2차 금융 빅뱅의 서막이 올랐다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메가뱅크 탄생 가시화하나
‘우리+산은’이 현실화하면 자산 규모 500조 원대에 이르는 메가뱅크가 탄생한다. 2010년 말 현재 자산 규모 326조 원으로 1위인 KB금융지주(이하 KB금융)보다 무려 200조 원가량 많다. 산은금융이 우리금융 인수 단독 후보로 나설 것이 유력해 보였으나 ‘관치경영’ ‘민영화 역주행’등의 비판이 일자 잠시 주춤한 상태다. KB금융까지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예측되면서 우리금융 민영화는 하반기 금융권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1차 금융 빅뱅을 촉발했던 하나금융지주(이하 하나금융)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1차 금융 빅뱅은 지난해 11월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를 선언하면서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2008년 금융위기 여파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시점이어서 메가뱅크 논의는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태였다. 하나금융(196조 원)이 외환은행(115조 원) 인수를 마무리하면 KB금융(326조 원), 우리금융(326조 원), 신한금융(308조 원) 등 몸집이 비슷한 금융지주사 4곳이 시장을 지배하는 빅4 체제가 될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연기하면서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는 고착상태에 빠졌다. 금융권에선 법원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본다. 그러자 하나금융이 다급해졌다.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와의 계약이 5월 23일로 만료되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은 김승유 회장이 직접 나서서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 계약 시한을 3~6개월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큰 틀에서 계약 연장에 합의했지만 매각 가격 조율 같은 세부 사항에선 양측이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작성한 계약서엔 외환은행 매매 가격이 주당 1만4250원으로 나와 있었다. 당시 외환은행 주가는 1만2000~1만3000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현재 9000원 밑으로 떨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금융 측은 “당연히 시장가치 하락분을 반영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반면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본질가치가 떨어진 게 아닌 만큼 매매단가를 낮출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현대건설 매각 대금이 유입된 것을 감안해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에 주춤하는 가운데 농협중앙회(이하 농협)가 새로운 금융시장의 변수로 부상했다. 3월 11일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분리하는 농업협동조합법(이하 농협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매머드급 금융사가 탄생하게 된 것. 자산 규모만 220조 원대에 이르러 단숨에 업계 4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신용사업을 담당하는 농협금융지주사는 NH투자증권, NH CA자산운용, NH캐피탈, NH선물 등 기존 금융계열사 외에 NH은행, NH생명보험, NH손해보험 등 3개의 신설 법인을 자회사로 두게 된다.
금융권은 농협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농협이 금융그룹 시너지 극대화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대형 인수합병(M·A)이 있을 수 있으며, 시장에서도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은행권은 담담한 반응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사실 농협과 일반 4대 시중은행의 영업 기반에는 차이가 있다. 농협이 농어촌 및 중소도시에서 경쟁력을 갖췄다면 4대 은행은 대도시권이 주요 영업 기반”이라며 “지주사로 전환해도 특별히 달라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보험업계는 농협법 개정안에 농협보험을 위한 특혜 조항이 담겨 있다며 거세게 반발한다. 자산이 33조 원에 이르는 NH생명·손해보험은 ‘빅3’ 생명보험사(삼성생명, 대한생명, 교보생명)와 경쟁할 만한 규모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더군다나 농협법 개정안에 따르면, 농협공제가 농협보험으로 전환할 경우 방카슈랑스 규제(은행창구를 통해 보험사의 보험상품을 판매할 때 한 보험사의 상품 비중이 25%를 넘지 못하는 것)를 5년 동안 받지 않는다. 신한생명 관계자는 “생명보험업계든 손해보험업계든 농협이 해당 업계에서 ‘빅5’에 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은퇴 시장에서도 진검 승부
금융지주사의 짝짓기와 금융권 새판 짜기가 한창인 가운데 물밑에선 각 금융지주사의 자회사가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자칫 경쟁에서 밀렸다가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미 금융지주사의 주력사인 은행들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강도 높은 영업대전을 예고한 상태다. 특히 소매금융에 강세를 보여왔던 KB국민은행은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받던 도매금융(기업금융) 강화를 천명하고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서 은행업계를 바짝 긴장시켰다. 어윤대 회장이 직접 중소기업이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기업고객 유치에 나선 상황이다.
카드업계는 ‘제2의 신용카드 대란’을 우려할 만큼 과당경쟁에 불이 붙었다. 3월에 분사한 KB카드가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들면서, 카드업계는 금융지주사 계열 카드사와 대기업 계열 전업계 카드사 중심으로 경쟁구도가 재편됐다. 향후 모바일 카드 같은 금융과 통신의 융합을 강조한 통신 캡티브(Captive)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정희수 수석연구원은 “금융지주계열 카드사 비중이 확대된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이 심해진다는 의미”라며 “통상적으로 전업계 카드사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면서 시장을 선도하기 때문에 과열 경쟁이 나타날 우려가 크다”고 진단했다.
2위권 카드사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이자 업계 1위인 신한카드는 최근 신용카드가 없는 체크카드 보유 고객도 카드사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체크카드론’을 내놓으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신용도가 낮은 체크카드 고객을 상대로 영업하는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체크카드는 신용카드 사용을 절제하려고 만든 상품인데 이를 론과 연결시키면 그만큼 고객의 신용 리스크가 커진다”고 지적했다.
한편 보험 및 증권업계에선 은퇴 시장을 선점하려는 진검승부가 벌어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퇴직연금시장이 2010년 29조 원으로 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50조 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광범위한 지점 영업망을 활용한 은행권의 우세 속에 증권, 보험사가 도전하는 형국이다. 은행에 밀리는 대기업 계열의 증권, 보험사가 그룹사의 퇴직연금 가입자 ‘몰아주기’같은 불공정 경쟁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경쟁이 혼탁해지는 양상마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