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벤처는 선순환을 한다. 기초과학 분야에 인재가 몰리고, 그들이 우수한 연구 결과물을 내며, 그것을 토대로 벤처 붐이 일고, 벤처 활성화로 이공계 출신자의 일자리가 많아진다. 이 선순환의 출발은 투자다. 아무리 기가 막힌 아이디어라도 투자 없이는 금세 말라버린다. 투자 측면에서 이스라엘 벤처를 지탱하는 양대 기둥인 벤처캐피탈과 인큐베이터 시스템을 들여다봤다.
이스라엘 벤처 물꼬 튼 ‘요즈마 펀드’
요즈마(Yozma) 펀드는 이스라엘 벤처의 전설이다. 1993년 요즈마 펀드가 출범하고 나서야 메마른 이스라엘 땅에 ‘돈줄’이 흐르기 시작했다. 5월 5일 요즈마 펀드 대표 이갈 에를리흐(Yigal Erlich) 씨와 마주 앉았다. 그에게 벤처의 전설이 탄생한 배경을 물었다. 당시 정부기관에서 일하던 과학자 에를리흐 씨는 돈줄을 고민하다 벤처캐피탈을 들여왔다.
“벤처에선 기술만 중요한 게 아니다. 연구 개발에 성공해도 마케팅과 경영에 서툴면 기업은 바로 설 수 없다. 그래서 벤처자본에 더해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멘토링이 필요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 사례를 통해 기술, 자금, 경영의 유기적인 연결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정부 주도로 진행한 이 벤처캐피탈에는 ‘혁신’을 뜻하는 ‘요즈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요즈마 펀드의 핵심은 네트워킹이다. 이 펀드는 이스라엘 벤처투자가와 해외 벤처투자 기업이 함께 출자했다. 정부는 발 벗고 요즈마 펀드의 정착을 도왔다. 요즈마 펀드는 미국계 유대인 부호와의 인맥을 동원해 해외 자금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초기엔 1.5대 1(벤처자본 대 정부) 매칭 방식으로 운영했으나 인기가 높아지자 2대 1로 비율을 바꿨다.
2억 달러 규모로 출범한 요즈마 펀드는 현재 30억 달러의 기금으로 수백 개 신생 벤처기업을 지원한다. 정부는 이스라엘 벤처에 대한 외국 투자회사들의 투자가 잇따르자 1997년 요즈마 펀드를 민영화했다. 요즈마 펀드의 뒤를 이어 200개가 넘는 벤처캐피탈이 생겼지만, 요즈마 펀드는 여전히 건재하다. 벤처시장에 불을 지펴 파이를 키웠으면서도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비결이 뭘까. 그에게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비결이 뭔지를 물었다.
“당장의 기술력보다 사람을 본다. 아이디어, 태도, 능력, 열정 등을 보고 그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시장 규모, 제품의 발전 가능성, 시장 트렌드도 살핀다. 초기 벤처에 투자하되 그들이 무리 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사업 정책에 대해 조언하고 파트너를 소개하는 등 적극적으로 돕는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어떨까. 대한민국 벤처도 한때 잘나갔다. 2000년 정보기술(IT)을 선도하며 벤처 붐이 일었고, 웬만한 기획안을 들이밀면 벤처캐피탈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호시절은 길지 않았다. IT 붐이 사라지자 일부 벤처자본과 벤처기업가의 추악한 ‘머니 게임’이 본색을 드러냈다. 에를리흐 씨는 “과거 한국에도 투자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술이 혁신적이지 못했다. 벤처의 정수는 무엇보다 예전에 없던 것, 혁신적인 기술인데, 그 부분이 약하니 성공률도 낮았던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1990년대부터 24개 벤처 인큐베이터를 통해 200여 개 신생 벤처기업을 지원해왔다. 각 인큐베이터는 신생 벤처 기업이 자리 잡을 때까지 약 2년간 돕는다.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 인큐베이터인 ‘JVP미디어랩’이 한 벤처기업당 지원하는 초기 자금은 최대 150만 달러. 이 중 85%는 정부 예산이고 15%는 각 인큐베이터 몫이다. 이들의 소임은 2년 후 회사가 외부 투자자를 구해 더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JVP미디어랩이 그간 지원한 신생 벤처 기업 중 20여 곳이 정식 법인을 설립해 독립했고, 그중 11곳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인큐베이터 1개당 매년 3~5개 기업을 선정한다. 선정 기준은 기술력, 사람, 그리고 시장의 니즈(needs)다. 신생 인큐베이터인 ‘미즈가브 벤처 액셀레이터’의 에란 펠드해이(Eran Feldhay) 회장은 “이스라엘 경제, 그리고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에 대한 믿음과 정부 지원금 덕분에 초기 단계부터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 24개 인큐베이터가 벤처 성장 도와
JVP미디어랩의 요아브 트주야(Yoav Tzruya) 씨는 “심지어 완전한 팀이 아니어도 좋고 아이템이 확정되지 않아도 좋다. 가능성이 있다면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펠드해이 회장은 “성공한 벤처를 보면 초기 아이템과 다른 경우가 많다. 벤처는 대부분 성장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속한 팀을 지원 대상으로 뽑는다”고 말했다.
‘시장성’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이 기술이 시장에 필요한지, 그리고 아직 출현하지 않은 기술인지 철저히 파악한다는 얘기다. 펠드해이 회장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 기술이거나,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라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미즈가브가 선택하는 벤처기업이 대부분 의학, 생명과학 분야인 것도 이 때문이다. 트주야 씨는 “특히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번 지원을 시작하면 전폭적인 도움을 준다. 트주야 씨는 자신들이 인큐베이팅한 시아노 모바일 실리콘사를 예로 들었다. 이 회사는 모바일 디지털 TV 등의 실리콘 수신 칩을 만드는 회사로 2004년 문을 열었다. 그는 “2~3년 전만 해도 유럽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해 이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지원했고 결국 현재 라틴아메리카, 미국 등에서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며 “태블릿PC가 상용화하고 모바일 TV 시장이 커지면 이 회사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뿌듯해했다.
펠드해이 회장은 “현재까지 미즈가브가 지원한 35개 벤처 중 10개가 각자 사무실을 찾아 독립해 나갔고, 올 4월 그동안 지원한 회사가 상장해 처음으로 투자금을 회수했다. 정부의 도움으로 우리가 발굴한 벤처기업들이 이스라엘 21세기 경제를 이끌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벤처 물꼬 튼 ‘요즈마 펀드’
요즈마(Yozma) 펀드는 이스라엘 벤처의 전설이다. 1993년 요즈마 펀드가 출범하고 나서야 메마른 이스라엘 땅에 ‘돈줄’이 흐르기 시작했다. 5월 5일 요즈마 펀드 대표 이갈 에를리흐(Yigal Erlich) 씨와 마주 앉았다. 그에게 벤처의 전설이 탄생한 배경을 물었다. 당시 정부기관에서 일하던 과학자 에를리흐 씨는 돈줄을 고민하다 벤처캐피탈을 들여왔다.
“벤처에선 기술만 중요한 게 아니다. 연구 개발에 성공해도 마케팅과 경영에 서툴면 기업은 바로 설 수 없다. 그래서 벤처자본에 더해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멘토링이 필요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 사례를 통해 기술, 자금, 경영의 유기적인 연결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정부 주도로 진행한 이 벤처캐피탈에는 ‘혁신’을 뜻하는 ‘요즈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요즈마 펀드의 핵심은 네트워킹이다. 이 펀드는 이스라엘 벤처투자가와 해외 벤처투자 기업이 함께 출자했다. 정부는 발 벗고 요즈마 펀드의 정착을 도왔다. 요즈마 펀드는 미국계 유대인 부호와의 인맥을 동원해 해외 자금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초기엔 1.5대 1(벤처자본 대 정부) 매칭 방식으로 운영했으나 인기가 높아지자 2대 1로 비율을 바꿨다.
2억 달러 규모로 출범한 요즈마 펀드는 현재 30억 달러의 기금으로 수백 개 신생 벤처기업을 지원한다. 정부는 이스라엘 벤처에 대한 외국 투자회사들의 투자가 잇따르자 1997년 요즈마 펀드를 민영화했다. 요즈마 펀드의 뒤를 이어 200개가 넘는 벤처캐피탈이 생겼지만, 요즈마 펀드는 여전히 건재하다. 벤처시장에 불을 지펴 파이를 키웠으면서도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비결이 뭘까. 그에게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비결이 뭔지를 물었다.
“당장의 기술력보다 사람을 본다. 아이디어, 태도, 능력, 열정 등을 보고 그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시장 규모, 제품의 발전 가능성, 시장 트렌드도 살핀다. 초기 벤처에 투자하되 그들이 무리 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사업 정책에 대해 조언하고 파트너를 소개하는 등 적극적으로 돕는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어떨까. 대한민국 벤처도 한때 잘나갔다. 2000년 정보기술(IT)을 선도하며 벤처 붐이 일었고, 웬만한 기획안을 들이밀면 벤처캐피탈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호시절은 길지 않았다. IT 붐이 사라지자 일부 벤처자본과 벤처기업가의 추악한 ‘머니 게임’이 본색을 드러냈다. 에를리흐 씨는 “과거 한국에도 투자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술이 혁신적이지 못했다. 벤처의 정수는 무엇보다 예전에 없던 것, 혁신적인 기술인데, 그 부분이 약하니 성공률도 낮았던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1990년대부터 24개 벤처 인큐베이터를 통해 200여 개 신생 벤처기업을 지원해왔다. 각 인큐베이터는 신생 벤처 기업이 자리 잡을 때까지 약 2년간 돕는다.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 인큐베이터인 ‘JVP미디어랩’이 한 벤처기업당 지원하는 초기 자금은 최대 150만 달러. 이 중 85%는 정부 예산이고 15%는 각 인큐베이터 몫이다. 이들의 소임은 2년 후 회사가 외부 투자자를 구해 더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JVP미디어랩이 그간 지원한 신생 벤처 기업 중 20여 곳이 정식 법인을 설립해 독립했고, 그중 11곳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인큐베이터 1개당 매년 3~5개 기업을 선정한다. 선정 기준은 기술력, 사람, 그리고 시장의 니즈(needs)다. 신생 인큐베이터인 ‘미즈가브 벤처 액셀레이터’의 에란 펠드해이(Eran Feldhay) 회장은 “이스라엘 경제, 그리고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에 대한 믿음과 정부 지원금 덕분에 초기 단계부터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 24개 인큐베이터가 벤처 성장 도와
JVP미디어랩의 요아브 트주야(Yoav Tzruya) 씨는 “심지어 완전한 팀이 아니어도 좋고 아이템이 확정되지 않아도 좋다. 가능성이 있다면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펠드해이 회장은 “성공한 벤처를 보면 초기 아이템과 다른 경우가 많다. 벤처는 대부분 성장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속한 팀을 지원 대상으로 뽑는다”고 말했다.
‘시장성’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이 기술이 시장에 필요한지, 그리고 아직 출현하지 않은 기술인지 철저히 파악한다는 얘기다. 펠드해이 회장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 기술이거나,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라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미즈가브가 선택하는 벤처기업이 대부분 의학, 생명과학 분야인 것도 이 때문이다. 트주야 씨는 “특히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번 지원을 시작하면 전폭적인 도움을 준다. 트주야 씨는 자신들이 인큐베이팅한 시아노 모바일 실리콘사를 예로 들었다. 이 회사는 모바일 디지털 TV 등의 실리콘 수신 칩을 만드는 회사로 2004년 문을 열었다. 그는 “2~3년 전만 해도 유럽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해 이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지원했고 결국 현재 라틴아메리카, 미국 등에서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며 “태블릿PC가 상용화하고 모바일 TV 시장이 커지면 이 회사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뿌듯해했다.
펠드해이 회장은 “현재까지 미즈가브가 지원한 35개 벤처 중 10개가 각자 사무실을 찾아 독립해 나갔고, 올 4월 그동안 지원한 회사가 상장해 처음으로 투자금을 회수했다. 정부의 도움으로 우리가 발굴한 벤처기업들이 이스라엘 21세기 경제를 이끌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