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의료기관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직장인들.
직장인 A씨는 2005년 건강검진을 받고 ‘갑상선 결절’이라는 의사 소견서를 받았다. 소견서 내용은 6개월 뒤 ‘추적 검사’, 즉 경과를 알아보는 차원에서 추가 검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A씨는 별다른 증상이 없자 추가 검사를 받지 않았고, 결국 3년이 지난 2008년 갑상선암을 진단받아 보험금을 청구했다. 이에 보험사는 보험금을 줄 수 없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보험 가입자가 의사에게 진찰받아 입원하거나 수술한 기록을 보험사에 고지해야 하는 의무를 어겼다는 것이다.
A씨는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패소했다. 하지만 2심과 대법원은 보험사에 보험금을 모두 지급하라고 판결, A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건강검진 결과 통보만으로는 어떤 질병을 확정적으로 진단받았다고 인식하기 어렵고, 검진 이후 별다른 증상이 없어 치료받지 않았던 점으로 미뤄 보험 가입자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중요한 병력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과거 진단 결과나 병력을 알면서도 일부러 보험사에 알리지 않은 경우는 현행법상 명백한 계약 해지 사유라고 덧붙여 명시했다.
생명보험이나 상해보험 등 인(人)보험에 가입하는 경우, 보험사는 계약 내용을 설명하는 ‘설명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보험 가입자도 ‘중요한 사항’을 알려야 하는 ‘고지의무’를 지켜야 한다. 또 보험기간 중 사고 발생 위험이 현저히 변경 또는 증가한 사실을 안 때는 이를 통지해야 하는 ‘통지의무’도 다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보험 가입자의 고지의무 위반 여부가 쟁점이었다. A씨가 갑상선 결절로 추가 검사를 받으라는 의사 소견서를 받고도 이를 보험사에 알리지 않은 것이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해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은 행위로 인정될 수 있는지의 문제였던 것. 대법원이 A씨의 과실이나 고의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의사 소견서를 받은 것만으로 A씨가 갑상선에 관한 중요한 질병을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과 검진 이후 별다른 증상이 없어 치료를 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이다.
인보험의 고지의무와 관련해 최근 논란이 된 또 다른 사안은 여러 개의 다른 보험에 가입한 경우도 고지의무에 해당하는지다. 판례는 “생명보험 계약 체결 후 다른 생명보험에 다수 가입했다는 사정만으로 사고 발생 위험이 현저히 변경 또는 증가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보험 가입자가 상해보험 계약을 체결하면서 보험자에게 다수의 다른 보험 계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만, 그러한 미고지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등 고지의무 사항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보험 청약서에 다른 보험 계약의 존재를 기재하도록 한 별도의 질문표가 있는 경우는 다르다. 이 경우는 보험사가 다른 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서면으로 질문한 것으로 인정받아 보험 계약상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지의무의 대상이 될 소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