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 작가를 꿈꾸지만 꿈을 실현한 이는 드물다. 해가 바뀔 때마다 ‘먹고사니즘’에 물들어 꿈은 점점 희미해진다. 하지만 끝내 ‘글’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무용을 하다가, 가르치는 틈틈이, 판결을 하는 동시에 글을 써내려간 무용학도, 교사, 판사 등이 그들이다. 최근 부쩍 눈에 띄는 이색 경력 작가들을 만났다.
“2개의 인격으로 삽니다” >>> 도덕 교사 로맨스 소설가 이지환
“헉, ‘화홍’ 작가가 도덕 선생님이라고?”
이지환은 로맨스 소설계 블루칩이다. 지난 10년간 작품 20여 편을 냈고 ‘화퐁’ ‘폭염’ ‘아바타르’ 등 히트작이 수두룩하다. 그중 ‘19금’ 딱지가 붙은 작품도 상당수다. 작가 ‘이지환’의 또 다른 이름은 23년 차 교사 ‘이명주’. 이지환은 아들(지)과 남편(환)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온 필명이다.
“한동안 작가의 신분을 숨겼어요. 지금도 ‘이지환이냐’는 학생과 동료교사의 질문에 웃음으로 답하죠.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인격과 책상머리에서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작가로서의 인격은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김치만두 다섯 개’가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교장·교감에게 책을 선물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죠.”
그의 작품에는 성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 유교적 정서나 도덕관념과 배치된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는 성적인 장치를 쓰는 데 망설임이 없다. 글을 쓸 때는 교사상을 넘어서는 작가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가져야 할 사회적 책무와 별개로 스스로 생각하는 교사상이 있어요. 한데 작가는 교사상을 넘어서는 범주를 수용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성적인 장치를 도입하죠.”
그는 어려서부터 이야기에 ‘미쳐’ 있었다. 대학 때는 노트를 끼고 살며 습작에 몰두했고, 출산 후 몸조리하면서도 펜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습작을 올렸고, 그의 작품을 읽은 애독자가 출판사에 출판을 의뢰하면서 등단하게 됐다. 2002년 출판한 ‘그대가 손을 내밀 때’가 첫 작품이다. 퇴근 후에는 습작과 고3 아들의 뒷바라지로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일상. 1인3역이 버겁지 않을까.
“전업 작가는 글이 업이지만 저한테는 놀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부담도 적고 그저 즐거워요. 교사 생활 30년쯤 하고 나면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희곡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글 쓰는 사람의 최종 목표는 자신의 글이 실체화되는 게 아닐까 해서요.”
“국문과 친구 수업 대신 들었죠.” >>> 간호사 출신 작가 정유정
“외삼촌이 글을 쓰셨어요.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제가 전문직을 가지길 원하셨어요. 결국 간호대에 가기는 했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도 국문과 친구 수업을 대신 들으며 방황했죠.”
정유정 작가는 전직 간호사다. 광주 기독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간호사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원으로 일했다. 2007년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과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간호사가 된 건 순전히 어머니의 뜻이었다. 나는 늘 글을 갈망했다”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도 소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야간대학 국문과에 가고 싶었다. 한데 취직하자마자 어머니가 간암으로 입원했다. 어머니를 돌보며 3년간 병원에서 먹고 자는 와중에 꾸준히 습작을 했다. 병실 바닥을 기어다니는 바퀴벌레를 보고 갖은 상상력을 덧입혀 치밀하게 묘사하는 식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는 미련 없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즈음 동생 셋 모두 대학을 졸업해 생존투쟁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남편에게 ‘집 사면 직장 그만두겠다’라고 엄포를 놨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원고를 썼죠. 혼자 쓴 글을 아무 출판사에 보내기를 수십 차례. 한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고, 그렇게 등단을 했어요. 하지만 책 3권을 내도 무명을 벗을 수 없더군요. 그때서야 정식 ‘등단’의 의미를 깨쳤고, 세계청소년문학상과 세계문학상을 수상했죠.”
현실에 치이면서도 이상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은 누군가의 격려 덕분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 교양국어 과목을 가르치던 은사를 잊지 못한다. ‘얼굴’을 주제로 한 자유시험. 그가 써낸 에세이를 받아 든 노교수는 대뜸 “습작노트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국문과 전과를 권했다.
“전과를 권하는 말씀을 듣자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사정을 짐작하셨는지 교수님이 나지막이 그러시더군요. ‘꿈을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 이뤄진다’고. 절망적일 때마다 그 말을 기억하며 힘을 얻었습니다.”
“법과 문학, 쌍둥이처럼 닮았어요.” >>> 소설 쓰는 판사 정재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정재민 판사는 모두 3권의 소설을 썼다. ‘사법연수생의 짜장면 비비는 법’ ‘독도 인 더 헤이그’ ‘소설 이사부’가 그것이다. 그의 작품은 모두 생활에서 출발한다. 사법연수원생 시절에는 연수원생의 치열한 일상을 소설에 담았고, 국방부 국제정책팀에서 일하면서 한일 간 독도 국제소송을 작품 속에 녹였으며, 독도와 동해에 대한 관심은 차기 작품(소설 이사부)으로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소설 이사부’로 포항국제동해문학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된 걸까.
“원래 인문학과 문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법조인인 존 그리샴의 소설이 인기를 얻는 것을 보고 소설가의 꿈을 키웠지요. 한데 막상 글을 쓰려니 재능이 딸리고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내 장기를 살릴 수 있는 장르를 고민했습니다. 일하면서 관심 갖게 된 분야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작품으로 구현한 것이지요. ‘독도 인 더 헤이그’와 ‘소설 이사부’는 그 결과물입니다.”
그는 소설 쓰는 일과 판사의 업무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법관이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듯, 소설가는 허구를 통해 진실을 말한다는 것. 그는 “두 가지 모두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해야 하기에, 소설가는 현실을 이해하고 법관은 문학을 가까이 해야 한다”라며 의욕적인 작품 활동을 다짐했다.
“‘블랙스완’ 보고 펑펑 울었죠.” >>> 무용을 전공한 하재영
“처음에는 마뜩잖았어요. 발레를 전공했지만 발레리나를 직업으로 가진 적은 없거든요. 특이함에 빚지는 게 싫었죠. 지금은 오히려 언젠가 발레에 대한 애증을 작품화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2006년 계간 ‘아시아’로 등단, 최근 첫 단편소설집 ‘달팽이들’을 낸 하재영 작가 앞에는 항상 ‘발레리나’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10세 때 무용을 시작해 예고를 거쳐 대학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하지만 발레는 늘 애증의 대상이었다. 작은 키에서 오는 열등감과 그로 인한 절박함이 그를 지치게 했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중 그의 머릿속을 꽉 채운 것은 ‘작가’라는 단어였다.
“저는 춤보다 글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책 읽고 글 쓰는 게 유일한 취미였거든요. 대학을 졸업한 뒤 중앙대 창작 관련 전문가 과정을 1년 다니면서 습작을 했어요. 혼자 쓰던 중얼거림이 소설의 옷을 입게 된 거죠.”
영화 ‘블랙스완’을 보고 그는 펑펑 울었다.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발레를 하면서 겪은 스트레스나 상처가 다시 도진 탓이었다. “발레와 소설 중 어느 쪽이 힘드냐”는 질문에 그는 “둘 다 힘들지만 그 성격이 다르다”라고 답했다. 발레는 타고난 체격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큰 반면, 글은 열심히 써야 한다는 압박이 크다는 것이다.
“‘발레리나 ‘작가’라는 것은 외적인 잣대 같아요. 사람들은 그렇게 분류하지만, 사실 저는 작가는 모두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발레를 했다는 게 어떤 식으로든 작품에 영향을 주리라 생각해요. 한 선배 소설가는 ‘몸으로 체득한 리듬감이 문장이나 서사의 감각을 유연하게 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되길 소망합니다.”
순문학 위상 변화도 한몫
과거 작가는 인문·사회계열 전공자 출신이 다수였다. 그러다 10년 전부터 문예창작학과(이하 문창과) 출신 작가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인문·사회계열 외의 다양한 전공 출신자도 생겨났다. 최근에는 독특한 흐름이 추가됐다. 대학에서 다양한 전공 공부를 마친 후 문창과에 다시 들어가 작가 수업을 받은 사람이 꾸준히 등장하는 것. 정이현, 천운영, 최제훈 작가는 각각 정치외교, 신문방송, 경영을 전공한 뒤 다시 문창과에 입학했다. 작가의 전공과 경력이 다변화한 이유가 뭘까.
“인터넷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전문 분야 종사자가 많아졌다. 전공이 문학이 아니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된 것 같다.”(문예출판사 관계자)
“예전에는 문학이 대표적 예술 분야였다. 하지만 지금 문학은 여러 예술 분야 중 하나로 축소됐다. 심하게 말하면 ‘마니아화’ 경향이 생겨났고, ‘좋아하니 한번 해볼까’ 하는 이가 늘어난 것이다.”(문학평론가 신형철)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순문학이 강세라 하지만 최근 가독성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순문학도 재미를 추구하는 추세다. 등단을 중시하는 분위기도 덜하고, 1인 출판도 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재야의 고수가 속속 등장하는 게 아닐까.”(작가 이지환)
‘의뢰인’을 쓴 존 그리샴은 전직 변호사다. 의학 미스터리 거장 가이도 다케루는 현직 의사고, 130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교고쿠 나쓰,히코는 디자이너다. 최근 한국 문학계에 등장한 특이 경력 작가들은 작품 소재와 영역을 넓힐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생업에 바빠 작가의 꿈을 접어둔 독자에게도 자극을 준다. 신형철 씨는 “문학은 인간과 세계를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느냐가 중요하다. 이력, 경력과 관계없이 작가의 역량은 작품으로 판단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2개의 인격으로 삽니다” >>> 도덕 교사 로맨스 소설가 이지환
“헉, ‘화홍’ 작가가 도덕 선생님이라고?”
이지환은 로맨스 소설계 블루칩이다. 지난 10년간 작품 20여 편을 냈고 ‘화퐁’ ‘폭염’ ‘아바타르’ 등 히트작이 수두룩하다. 그중 ‘19금’ 딱지가 붙은 작품도 상당수다. 작가 ‘이지환’의 또 다른 이름은 23년 차 교사 ‘이명주’. 이지환은 아들(지)과 남편(환)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온 필명이다.
“한동안 작가의 신분을 숨겼어요. 지금도 ‘이지환이냐’는 학생과 동료교사의 질문에 웃음으로 답하죠.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인격과 책상머리에서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작가로서의 인격은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김치만두 다섯 개’가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교장·교감에게 책을 선물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죠.”
그의 작품에는 성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 유교적 정서나 도덕관념과 배치된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는 성적인 장치를 쓰는 데 망설임이 없다. 글을 쓸 때는 교사상을 넘어서는 작가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가져야 할 사회적 책무와 별개로 스스로 생각하는 교사상이 있어요. 한데 작가는 교사상을 넘어서는 범주를 수용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성적인 장치를 도입하죠.”
그는 어려서부터 이야기에 ‘미쳐’ 있었다. 대학 때는 노트를 끼고 살며 습작에 몰두했고, 출산 후 몸조리하면서도 펜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습작을 올렸고, 그의 작품을 읽은 애독자가 출판사에 출판을 의뢰하면서 등단하게 됐다. 2002년 출판한 ‘그대가 손을 내밀 때’가 첫 작품이다. 퇴근 후에는 습작과 고3 아들의 뒷바라지로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일상. 1인3역이 버겁지 않을까.
“전업 작가는 글이 업이지만 저한테는 놀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부담도 적고 그저 즐거워요. 교사 생활 30년쯤 하고 나면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희곡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글 쓰는 사람의 최종 목표는 자신의 글이 실체화되는 게 아닐까 해서요.”
“국문과 친구 수업 대신 들었죠.” >>> 간호사 출신 작가 정유정
“외삼촌이 글을 쓰셨어요.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제가 전문직을 가지길 원하셨어요. 결국 간호대에 가기는 했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도 국문과 친구 수업을 대신 들으며 방황했죠.”
정유정 작가는 전직 간호사다. 광주 기독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간호사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원으로 일했다. 2007년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과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간호사가 된 건 순전히 어머니의 뜻이었다. 나는 늘 글을 갈망했다”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도 소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야간대학 국문과에 가고 싶었다. 한데 취직하자마자 어머니가 간암으로 입원했다. 어머니를 돌보며 3년간 병원에서 먹고 자는 와중에 꾸준히 습작을 했다. 병실 바닥을 기어다니는 바퀴벌레를 보고 갖은 상상력을 덧입혀 치밀하게 묘사하는 식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는 미련 없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즈음 동생 셋 모두 대학을 졸업해 생존투쟁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남편에게 ‘집 사면 직장 그만두겠다’라고 엄포를 놨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원고를 썼죠. 혼자 쓴 글을 아무 출판사에 보내기를 수십 차례. 한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고, 그렇게 등단을 했어요. 하지만 책 3권을 내도 무명을 벗을 수 없더군요. 그때서야 정식 ‘등단’의 의미를 깨쳤고, 세계청소년문학상과 세계문학상을 수상했죠.”
현실에 치이면서도 이상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은 누군가의 격려 덕분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 교양국어 과목을 가르치던 은사를 잊지 못한다. ‘얼굴’을 주제로 한 자유시험. 그가 써낸 에세이를 받아 든 노교수는 대뜸 “습작노트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국문과 전과를 권했다.
“전과를 권하는 말씀을 듣자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사정을 짐작하셨는지 교수님이 나지막이 그러시더군요. ‘꿈을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 이뤄진다’고. 절망적일 때마다 그 말을 기억하며 힘을 얻었습니다.”
“법과 문학, 쌍둥이처럼 닮았어요.” >>> 소설 쓰는 판사 정재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정재민 판사는 모두 3권의 소설을 썼다. ‘사법연수생의 짜장면 비비는 법’ ‘독도 인 더 헤이그’ ‘소설 이사부’가 그것이다. 그의 작품은 모두 생활에서 출발한다. 사법연수원생 시절에는 연수원생의 치열한 일상을 소설에 담았고, 국방부 국제정책팀에서 일하면서 한일 간 독도 국제소송을 작품 속에 녹였으며, 독도와 동해에 대한 관심은 차기 작품(소설 이사부)으로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소설 이사부’로 포항국제동해문학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된 걸까.
“원래 인문학과 문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법조인인 존 그리샴의 소설이 인기를 얻는 것을 보고 소설가의 꿈을 키웠지요. 한데 막상 글을 쓰려니 재능이 딸리고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내 장기를 살릴 수 있는 장르를 고민했습니다. 일하면서 관심 갖게 된 분야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작품으로 구현한 것이지요. ‘독도 인 더 헤이그’와 ‘소설 이사부’는 그 결과물입니다.”
그는 소설 쓰는 일과 판사의 업무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법관이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듯, 소설가는 허구를 통해 진실을 말한다는 것. 그는 “두 가지 모두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해야 하기에, 소설가는 현실을 이해하고 법관은 문학을 가까이 해야 한다”라며 의욕적인 작품 활동을 다짐했다.
“‘블랙스완’ 보고 펑펑 울었죠.” >>> 무용을 전공한 하재영
“처음에는 마뜩잖았어요. 발레를 전공했지만 발레리나를 직업으로 가진 적은 없거든요. 특이함에 빚지는 게 싫었죠. 지금은 오히려 언젠가 발레에 대한 애증을 작품화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2006년 계간 ‘아시아’로 등단, 최근 첫 단편소설집 ‘달팽이들’을 낸 하재영 작가 앞에는 항상 ‘발레리나’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10세 때 무용을 시작해 예고를 거쳐 대학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하지만 발레는 늘 애증의 대상이었다. 작은 키에서 오는 열등감과 그로 인한 절박함이 그를 지치게 했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중 그의 머릿속을 꽉 채운 것은 ‘작가’라는 단어였다.
“저는 춤보다 글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책 읽고 글 쓰는 게 유일한 취미였거든요. 대학을 졸업한 뒤 중앙대 창작 관련 전문가 과정을 1년 다니면서 습작을 했어요. 혼자 쓰던 중얼거림이 소설의 옷을 입게 된 거죠.”
영화 ‘블랙스완’을 보고 그는 펑펑 울었다.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발레를 하면서 겪은 스트레스나 상처가 다시 도진 탓이었다. “발레와 소설 중 어느 쪽이 힘드냐”는 질문에 그는 “둘 다 힘들지만 그 성격이 다르다”라고 답했다. 발레는 타고난 체격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큰 반면, 글은 열심히 써야 한다는 압박이 크다는 것이다.
“‘발레리나 ‘작가’라는 것은 외적인 잣대 같아요. 사람들은 그렇게 분류하지만, 사실 저는 작가는 모두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발레를 했다는 게 어떤 식으로든 작품에 영향을 주리라 생각해요. 한 선배 소설가는 ‘몸으로 체득한 리듬감이 문장이나 서사의 감각을 유연하게 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되길 소망합니다.”
순문학 위상 변화도 한몫
과거 작가는 인문·사회계열 전공자 출신이 다수였다. 그러다 10년 전부터 문예창작학과(이하 문창과) 출신 작가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인문·사회계열 외의 다양한 전공 출신자도 생겨났다. 최근에는 독특한 흐름이 추가됐다. 대학에서 다양한 전공 공부를 마친 후 문창과에 다시 들어가 작가 수업을 받은 사람이 꾸준히 등장하는 것. 정이현, 천운영, 최제훈 작가는 각각 정치외교, 신문방송, 경영을 전공한 뒤 다시 문창과에 입학했다. 작가의 전공과 경력이 다변화한 이유가 뭘까.
“인터넷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전문 분야 종사자가 많아졌다. 전공이 문학이 아니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된 것 같다.”(문예출판사 관계자)
“예전에는 문학이 대표적 예술 분야였다. 하지만 지금 문학은 여러 예술 분야 중 하나로 축소됐다. 심하게 말하면 ‘마니아화’ 경향이 생겨났고, ‘좋아하니 한번 해볼까’ 하는 이가 늘어난 것이다.”(문학평론가 신형철)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순문학이 강세라 하지만 최근 가독성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순문학도 재미를 추구하는 추세다. 등단을 중시하는 분위기도 덜하고, 1인 출판도 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재야의 고수가 속속 등장하는 게 아닐까.”(작가 이지환)
‘의뢰인’을 쓴 존 그리샴은 전직 변호사다. 의학 미스터리 거장 가이도 다케루는 현직 의사고, 130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교고쿠 나쓰,히코는 디자이너다. 최근 한국 문학계에 등장한 특이 경력 작가들은 작품 소재와 영역을 넓힐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생업에 바빠 작가의 꿈을 접어둔 독자에게도 자극을 준다. 신형철 씨는 “문학은 인간과 세계를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느냐가 중요하다. 이력, 경력과 관계없이 작가의 역량은 작품으로 판단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