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노동 유연화가 이뤄진 이후 실질적 정년은 43세로 앞당겨졌다. 이런 변화는 청소년의 직업 선택을 보수적으로 만들었다. 여러 조사를 종합하면 우리 청소년은 대한민국에 있는 1만 개의 직업 중 교사, 공무원, 대기업 사원, 의사, 연예인 등 극히 소수의 직업을 편중해서 소망한다. 정규직이면서 임금이 다른 직업보다 높은 ‘좋은 일자리’를 추구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관들이 규정한 ‘좋은 일자리’는 한 해 2만 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한 해 56만 명에 이르는 대졸자 중 3%만이 ‘좋은 일자리’에 진입할 수 있다. 가장 선망하는 직업인 교사는 진입 장벽이 하늘 높이로 치솟았다. 2011년 중등교사 임용고시의 경쟁률(장애 제외)은 서울이 50대 1, 경기가 40.7대 1이었다. 그나마 서울에서는 역사, 사회, 도덕·윤리 과목은 한 명도 뽑지 않았으며, 2010년 61명을 선발했던 국어 과목도 고작 9명을 뽑았다. 사립학교는 정교사로 채용해야 할 인원 중 83%를 기간제 교사, 시간제 강사 등 비정규직 교사로 채웠으니, 아예 ‘좋은 일자리’의 기준에서 탈락했다.
그래서일까? 아동, 청소년 출판시장에서 위인전기가 점차 살아나는 움직임이다. 사실 그간 이 시장에서는 성인용으로 인기를 끈 자기계발서의 아동용 버전이 크게 유행했다. 신자유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얄팍한 처세술을 담은 책이 서가를 뒤덮다시피 한 것이다.
하지만 명진출판의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는 반기문, 오프라 윈프리, 버락 오바마, 스티브 잡스, 앤디 워홀, 힐러리 클린턴, 워런 버핏, 후진타오, 미우치아 프라다 등 생존하는 우리 시대 아이콘의 삶을 생생하게 그렸다. 이들은 하나같이 삶의 질곡을 겪어서 삶에 절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제시한다. 이 시리즈 판매량은 200만 부를 넘어섰다.
3800만 부가 팔린 예림당의 ‘Why?’ 시리즈 기록에 도전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다산어린이의 ‘Who?’ 시리즈는 정치인, 과학자, 경제인, 문화예술인, 인권환경 운동가 등 시공간을 초월해 현재적 관심에 부응하는 인물을 다룬 교양만화다. 이 시리즈는 업적을 나열하던 기존의 위인전기와 다르다. 인물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아이들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과정을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영어판을 동시에 출간하는 이 시리즈는 대만, 중국,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나라에도 판권이 수출됐다. 또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출시해 전 세계 동시 출간이라는 꿈마저 실현할 태세다.
취업 전문가들은 하고 싶은 일(적성), 잘할 수 있는 적성(능력), 일을 통한 사회적 기여(가치), 경제 자립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진로지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들 위인전기는 그런 용도에 맞춤한 책이면서 확실한 시장 반응까지 불러오고 있다. 이 책들의 행보가 새로운 위인전기의 부흥에 대한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