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X파일’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왼쪽)가 변호사와 검찰에 출두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X파일에 담긴 내용이 “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공익적 사항과 직결돼 그 정보에 대한 공공의 관심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언론에 부여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므로 이를 보도하는 것이 부득이했다”면서 이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불법 도청을 응징하고 사생활의 자유와 통신비밀을 보호하려는 특별법의 정신에 비추어 보도에 담긴 기사 내용이 국가의 안전보장, 사회질서 수호 등을 위해 부득이하게 보도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다고 평가하기엔 부족하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다.
결국 이 사건의 쟁점은 보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8대 5로 유죄를 선고하면서 언론기관이 불법 감청·녹음된 대화를 보도해 공개하는 것이 정당행위가 되려면 네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먼저 “보도 목적이 불법 감청·녹음 등의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 자체를 고발하기 위한 것으로 불가피하게 대화 내용을 공개할 수밖에 없는 경우이거나 이를 공개하지 않으면 공중의 생명·신체·재산·기타 공익에 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 등과 같이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라야 한다”고 한정했다. 또 “언론기관이 불법 감청·녹음 등의 결과물을 취득하면서 위법한 방법을 사용하거나 적극적·주도적으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통신비밀의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하고, 언론이 그 내용을 보도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 및 가치가 통신비밀 보호에 의해 달성되는 이익 및 가치를 초과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이 기자는 도청 자료를 취득하는 과정에 적극적·주도적으로 관여했고, 보도에 의해 얻어지는 이익이 통신비밀이 유지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없어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다수 의견의 요지다.
이에 소수 의견은 “불법 감청·녹음 등에 관여하지 않은 언론기관이 이를 보도해 공개하는 경우에도 그 내용이 공공의 이익과 관련돼 공중의 정당한 관심과 여론의 형성을 요구할 만한 중요성을 갖고 있다면 이는 처벌 대상으로 삼을 수 없고, 이 사건 보도에 의해 얻어지는 이익과 통신비밀이 유지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을 비교해볼 때 전자의 이익이 후자보다 우월하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본래 범죄가 성립하려면 형법이 정한 원칙에 들어맞아야 한다. 그것은 행위가 법에 정한 ‘구성요건’에 해당해야 하고, ‘위법성’이 있어야 하며, ‘책임성’ 즉 행위자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 법은 정당방위, 긴급피난, 자구행위, 정당행위, 피해자의 승낙 등의 경우는 위법성이 사라지는 것으로 본다.
예컨대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공무원이 사형을 집행하는 행위처럼 법령에 의한 행위는 위법성이 조각(阻却)돼 범죄로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대법원에서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이 갈린 것은 결국 안기부의 도청 기록물에 담긴 대화가 여러 측면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는지에 대해 대법관들이 철학과 양심, 세계관을 투영한 종합적 판단에 따라 서로 다른 의견을 가졌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한 인생사를 모두 법으로 엄밀하게 자를 수는 없는 것. 재판관 역시 사람이므로 자신의 주관과 경험이 배제된 기계적 판결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법관의 구성과 사법부의 독립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이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