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차기 공격형 헬기로 거론되는 아파치. (오른쪽) 육군의 주력 공격헬기 AH-1S 코브라.
보스니아 내전 4년째인 1995년, 발칸반도에서 정찰비행을 하던 미 공군 전투기가 세르비아군이 발사한 지대공 미사일에 명중됐다. 불길에 휩싸인 전투기는 추락하기 시작했고 조종사는 비상탈출 장치를 통해 간신히 튀어나왔다.
스콧 대위의 낙하산이 펴지는 광경을 본 편대장이 동료의 콜사인을 대며 보고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배셔52가 추락했다. 반복한다. 배셔52가 추락했다.”
낙하산을 탄 스콧 대위는 적지에 떨어졌다. 세르비아군은 사살하려 추격했고 그는 목숨을 걸고 도주했다. 전력을 다해 피신을 거듭하던 6일째 밤, 저공비행을 하는 항공기 소리에 무전기를 켜자 호출음이 들려왔다.
“배셔 파이브 투, 배셔 파이브 투. 여긴 배셔 일레븐이다.”
마침내 스콧 대위는 수색 중이던 정찰기와 교신하는 데 성공했다.
“반갑다, 배셔 일레븐. 도와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정찰기 조종사는 적의 기만술책일 수도 있으니 신분부터 확인해야 했다.
“도와주겠다. 배셔 파이브 투,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가?”
스콧 대위가 대답했다.
“그렇다, 오산 에어베이스(OSAN AB)였다.”
정찰기 조종사 헨퍼드 대위가 다시 물었다.
“어느 대대였는지 말해줄 수 있는가?”
“물론이다. 주버츠 대대였다.”
신분이 확인되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좋다. 날이 밝기 전에 구조해주겠다.”
아드리아해(Adriatic Sea)에 떠 있는 미 해군 상륙강습함 ‘키어사지’호에서 며칠째 비상대기를 하던 제24 해병원정대가 구조작전을 시작했다. 이 원정대는 적지에 고립된 아군을 구조하는 임무로 명성이 높은 부대다. 해상의 항공모함이나 상륙강습함에 전진 배치돼 있으며, 미 해병대 조직 중 가장 순발력이 뛰어나 지원이 필요 없는 단기 작전에 신속하게 동원된다.
거대한 CH-53 슈퍼스탤리언 헬리콥터 2대와 이들의 호위를 맡은 공격용 헬리콥터 AH-1 시코브라 2대가 긴급 발진했다. 4대의 헬리콥터는 ‘전 지구 위치 확인 시스템’인 GPS를 이용해 조종사가 있는 곳으로 정확하게 날아갔다. 슈퍼스탤리언이 착륙하자 해병대원들은 거의 탈진한 스콧 대위를 찾아내 태우고 재빨리 이륙했다.
미군이 적지를 빠져나오는 순간 레이더로 그들을 포착한 세르비아군이 공격해왔다. 대공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수없이 날아왔으나 해병대의 공격헬기 시코브라가 수송헬기들을 엄호했다. 그들은 정해진 항로를 전속력으로 비행했고, 얼마 후 아침 햇살에 눈부시도록 반짝이는 아드리아해의 수면을 볼 수 있었다.
무장헬기가 개발된 것은 베트남전쟁 때였다. 전투 현장의 아군을 급히 퇴각시키거나 부상자를 태우기 위해 수송헬기는 적의 시야와 사정거리에 노출된 채 내리고 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헬기 조종사들이 용기를 내면 낼수록 더 많은 생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 대부분의 헬기 조종사는 자신의 안전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용감했다. 따라서 전사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위험이 큰데도 전쟁은 너무나 오래 지속됐고, 헬기 조종사들은 1년이면 끝나는 베트남 근무를 두 번, 세 번씩 해야 할 판이었다. 당연히 죽을 확률이 높아졌고, 허무주의에 사로잡힌 조종사도 늘었다.
작전지역에 투입된 수송헬기가 착륙했다 다시 이륙하는 불과 몇십 초 동안은 적의 대공화기에 가장 주의해야 했다.
따라서 수송헬기가 착륙할 때 공중에서 선회하며 지상의 아군을 ‘근접 지원’할 수 있는 무장헬기가 절실했다. 이 때문에 전쟁 초기엔 병력수송용 ‘UH-1 휴이’를 개조해 작전에 투입했다.
로켓탄 발사기와 M-60 기관총이 장착된 공격용 휴이는 적에게 총탄을 쏟아내며 아군을 지원했는데, 이런 무장헬기를 건십(Gun ship)이라 부른다.
그 후 본격적으로 개발된 첫 공격헬기가 AH-1 코브라다. 코브라는 1967년 실전 배치돼 40mm와 70mm 로켓탄과 7.62mm 기관포로 아군을 근접 지원했다. 코브라 헬기는 개량을 거듭했는데 시코브라와 AH-1W 슈퍼코브라는 미 해병대 버전이다. 헬기 중에서 AH-1, AH-64 등 A가 붙은 기종은 모두 공격용(attack)이다.
육군의 주력 공격헬기 AH-1S 코브라
10월 21일 육군은 경기도 양평 비승사격장에서 언론사 기자단에 공격헬기와 무장헬기의 전력을 공개했다. 육군의 주력 공격헬기는 AH-1S 코브라다.
코브라는 공중에서 기동하며 대전차 미사일 토(TOW)를 발사했고, 20mm 벌컨포탄, 2.75인치 로켓탄과 MPSM탄을 쏘며 전투사격을 했다. MPSM 로켓탄은 9개의 자탄이 들어 있는 ‘분산 탄’이다. 벌컨포로 발사되는 20mm탄은 폭약이 들어 있어 1발마다 수류탄 1발 정도의 살상 능력이 있다.
각 소속부대에서 날아와 대기하던 코브라와 500MD, BO-105 등 육군의 무장헬기들은 실사격을 하며 전투력을 평가받았다.
500MD와 BO-105는 정찰용 헬기다. 전투지역을 비행해야 하는 정찰헬기들은 방어를 위해 로켓탄과 기관포로 무장한다. 500MD는 7.62mm, BO-105는 12.7mm 기관포를 장착하고 있다. 구경 7.62mm탄은 M-60(신형 K-3)용 탄환이며, 12.7mm탄은 K-6에 쓰는 탄이다.
육군은 두 종류의 500MD를 운용한다. 4명이 탑승하는 500MD는 정찰용인 ‘스카우트 디펜더’와 대전차 미사일 토를 장착한 30여 대의 공격용 ‘토 디펜더’가 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 당시, 이스라엘 육군의 토 디펜더는 아랍군과 전투를 벌이며 토 미사일로 적 전차를 상당수 파괴했다.
육군의 각 군단 항공단과 사단에 배속된 700여 대의 헬리콥터는 항공작전사령부(이하 항작사)가 통제한다. 항작사 사령관은 사단장급 2성 장군인 소장이며, 2개 여단 중 제1항공여단은 공격임무, 제2항공여단은 수송임무를 책임진다.
제1항공여단의 100번대 항공대대는 코브라부대, 500번대는 500MD부대다. 제2항공여단의 200번대 항공대대는 UH-1부대, 300번대는 CH-47 치누크부대, 600번대는 UH-60부대다.
무장헬기를 조종하는 전투 조종사들은 1년에 한 번씩 평가를 거쳐야 한다.
“평가 결과에 따라 자격이 유지되거나 강등될 수 있다.”
육군항공단 표준조종교관(SIP)이며 24년째 헬기를 조종하는 최병수 준위의 말이다.
토 미사일 발사 후 15초간 머물러
무장헬기에 장착되는 기관포.
공격헬기의 주력인 코브라는 상당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도입된 지 20년이 넘은 구형이다. 따라서 사격통제장치는 물론 장착된 미사일도 와이어로 유도되는 구식이다.
코브라의 대전차무기는 토 미사일이다. 북한군 전차에 토를 발사한 후, 명중될 때까지 코브라는 미사일과 연결된 와이어를 통해 유도해야 한다. 적 전차가 3000m 거리에 있다면, 토가 초속 200m로 날아가 파괴할 때까지 15초는 한곳에 떠 있어야 한다.
토를 유도하는 동안 코브라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도피 비행을 할 수 없다. 적의 대공미사일과 대공화기가 발사되는 전장에서 15초는 긴 시간이다.
미군의 공격헬기는 와이어 유도 방식의 구형 미사일을 더는 쓰지 않는다. 미군의 슈퍼코브라와 AH-64 아파치는 신형인 파이어 앤드 포겟(Fire and Forget) 타입의 헬파이어(Hellfire) 미사일을 운용한다. 헬파이어를 발사한 후에는 즉각 현장에서 도피해 사라질 수 있다. 능동형인 헬파이어는 스스로 조준된 목표를 향해 날아가 파괴한다. 말 그대로 ‘파이어 앤드 포겟’이다.
그렇다면 육군의 코브라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답은 불가능이다. 육군의 코브라는 구형이라 이륙중량에 한계가 있어 헬파이어를 장착할 수 없다. 코브라만 13년간 조종해온 항작사 105항공연대의 전투조종사 이동훈 소령은 이렇게 말했다.
“코브라에 헬파이어를 장착하고 싶어도 이륙중량 제한 때문에 개조가 어렵다. 따라서 무장전력을 업그레이드하기 힘들다.”
코브라에 최대로 무장했을 때 기체중량은 3900kg이다. 이 정도의 이륙중량으로는 무거운 헬파이어로 무장해 작전비행을 할 수 없다. 코브라가 헬파이어로 무장하려면 이륙중량이 4500kg에서 5400kg 정도 돼야 가능하다.
미군의 슈퍼코브라는 최대 이륙중량이 6700kg이며 2000kg의 무장탑재가 가능하다. 따라서 헬파이어는 물론이고 공중전을 위한 공대공 미사일 사이드와인더(Sidewinder)까지 장착해도 별 문제가 없다.
미군은 강력하게 개량된 슈퍼코브라를 제외한 모든 코브라 기종을 퇴역시켰다. 그들은 코브라보다 월등한 전력의 AH-64 아파치를 운용 중이며, 더 업그레이드된 AH-64D ‘롱보 아파치’로 교체하고 있다.
코브라 헬기는 야간작전에도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육군에 코브라가 도입된 것은 1988년이고, 야간장비는 ‘M-65 나이트 비전 고글’을 썼다. 이 장비로 야간에 로켓탄과 벌컨포 발사는 가능하지만 미사일 공격은 힘들었다.
그 후 ‘시나이트(C-Nite)’란 야간 열상감지장치를 도입, 탑재해 미사일 발사는 가능해졌다. 하지만 시나이트로도 야간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나마 시나이트를 탑재한 코브라도 70여 대 중에서 30%인 24대에 지나지 않는다.
국방부는 공격헬기 전력을 강화하려고 대책을 세웠다. 야간작전이 가능한 강력한 차세대 공격헬기 2개 대대 36대를 2004년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계획이 나온 건 10년 전이었으나 차세대 공격헬기사업(AH-X)은 지금까지 결정이 유보돼 표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기갑부대 킬러인 상당수 공격헬기가 아직도 야간에 미사일 공격이 힘든 ‘주간작전용‘으로 남아 있다.
미 육군의 AH-64 아파치는 주간이든 야간이든 작전에 전혀 제약이 없다. 애초부터 야간작전이 가능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아파치는 걸프전쟁과 이라크전쟁에서 주로 야간작전을 수행했다. 낮에는 잘 보여서 좋긴 하지만 그만큼 적에게 노출될 위험이 크다. 미군 아파치 조종사들은 야간에 가능한 한 멀리서 공격했다.
“야간에, 특히 8km나 떨어진 곳에서 적이 우리를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아파치의 야간작전 능력은 완벽한 수준이다.”
미 공군의 공격기 A-10과 육군의 AH-64 아파치는 모두 대전차공격용 항공기다. 그러나 두 기종의 임무는 다르다. 똑같은 탱크킬러지만 지상군 근접지원 능력은 아파치가 월등하다.
“미 지상군보다 아파치 더 무서워해”
양평 비승사격장에서 훈련중인 육군의 주력 공격헬기 AH-1S 코브라.
주한미군은 3개 대대 72대의 아파치 헬기를 운용해왔다. 아파치 대대는 북한군 기계화부대의 진격과 특수부대의 해상침투를 막는 부대다. 유사시 북한 대규모 기계화전력이 아군 방어선에 집중될 때, 아파치 대대는 적의 전차와 장갑차를 공격해 파괴한다.
주한미군은 아파치 2개 대대를 철수시켰고 현재 1개 대대 24대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마저 철수할 예정이라는 관측이 2009년부터 나오고 있다. 미군은 아파치 부대의 철수로 생긴 전력 공백을 공군의 A-10을 늘려 메우고 있다.
미국 외교정책 저널 ‘포린 어페어스’는 2001년, 공격헬기 부대를 이렇게 평가했다.
“북한군은 미 지상군보다 아파치 공격헬기 부대를 더 두려워한다.”
남은 아파치 1개 대대마저 철수한다면 지상군 근접지원 능력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공격헬기는 안전(생존력)을 위해 야간작전이 중요하다. 그러나 육군의 공격용 500MD 토 디펜더는 야간작전 능력이 없고 코브라의 상당수 40여 대도 미사일 공격을 해야 하는 야간 대전차작전이 힘들다. 한편 AH-1S 코브라는 2018년 도태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애초의 계획을 수정했다. 미국에서 아파치를 도입하거나, 한국형 공격헬기(KAH)를 개발해 전력을 보강한다는 계획이다. 방위사업청은 공격헬기를 도입할지, 국내 기술로 개발할지를 2009년 연말까지 결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0년이 다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최근 천안함 격침에서 연평도 포격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대북관은 크게 바뀌었다. 군의 전력은 북한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며, 이는 평화를 위해서도 전쟁 수행을 위해서도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항작사 공격헬기 부대의 무장전력과 공격력이 업그레이드되면, 한반도의 강력한 전쟁억지력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공격헬기 조종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북한군 기갑부대를 상대하고 있다. 그들이 요구하는 차세대 공격헬기는 이렇다.
“성능 좋고 안전하며, 잔고장이 없는 기종이면 된다. 그렇게 결정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