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도의 ‘권력지도’ 지형에 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중앙정부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환경부가 갑자기 막강파워 부처로 떠올랐다. 발전소, 제철소, 공항 등 줄잡아 10개 이상의 대형 프로젝트가 삽질을 멈춘 채 자이람 라메시 환경부 장관의 펜 끝만 주시하고 있다. 만모한 싱 총리와 여권 실세 소냐 간디 국민회의당 당수도 환경부 장관의 정책 수행에 정치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연립정부 파트너 정당들에게 ‘나눠주던’ 자리가 환경부 장관이었음을 고려하면 삽시간에 환경부의 위상이 부상한 것이다.
대형 프로젝트 줄줄이 대기
현재 환경부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는 대표적인 대형 프로젝트에는 신(新)뭄바이 공항 건설, 베단타사의 보크사이트 광산 개발과 제련시설, 포스코사의 일관제철소와 항만시설이 있다. 각 주정부와 민간기업이 함께 투자하는 각지의 발전소, 운하, 광산 등도 포함돼 있다. 전문가로 구성된 환경부 조사단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대형 프로젝트의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작성한다. 환경부 장관이 이를 근거로 최종 승인을 내려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과거 ‘조건부 승인(provisional approval)’ 제도 시절에는 향후 개선할 수 있으면 환경부가 제시한 요건을 완비하지 못해도 임시 승인을 받아 공사를 진행한 뒤 승인 절차를 밟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최종 승인이 떨어져야만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이에 조건부 승인을 받고 진달전력(Jindal Power Ltd.)에서 진행하던 차티스가르 주의 2400MW급 발전소 공사도 올스톱 됐다.
삼림권리법(Forest Right Act)도 환경부에 힘을 실어준다. 대형 프로젝트는 대규모 토지수용과 용도변경 과정이 불가피하다. 삼림권리법은 여러 세대에 걸쳐 삼림지대에서 살아왔지만 토지 소유 기록이 없는 부족민의 삼림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자 2007년부터 시행됐다. 부족민의 이주가 필요한 모든 프로젝트가 삼림권리법의 관할 아래에 있다. 포스코의 오리사 프로젝트도 삼림권리법에 가로막혔다. 환경부 장관은 삼림권리법에 따라 포스코가 사용할 지역에서 떠나야 하는 주민들과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면 최종 승인을 내리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인도와 세계의 대기업들을 ‘울리는’ 환경부 장관 자이람 라메시는 어떤 인물일까? 1954년생인 라메시 장관은 인도 중앙정부에서 집권하고 있는 통일진보연합(UPA) 내각 중에서는 젊은 얼굴에 속한다. 그는 인도공과대학과 카네기 멜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엔지니어링과 과학 정책, 경영학을 공부한 전형적인 신세대 엘리트다. 현재 상원의원직을 유지하며 장관 임무도 수행하고 있지만 정치인이기보다 기술 관료에 가깝다. 1970년대 말부터 인도 정부의 과학기술 관련 부서에서 일하기 시작해 1990년대에는 경제개혁의 실무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배경으로 봤을 때, 그가 환경부 장관을 맡아 국내외 자본으로 산업기반시설 등을 세우는 것을 감시하고 있지만 결코 반(反)발전론자이거나 인도의 경제발전 필요성을 간과할 인물은 아니다.
환경부가 상공부나 외국투자진흥청, 총리실에서 이미 결정한 사안에 고개를 끄덕여주던 명목상의 감시기관에서 벗어난 이유는 복잡하다. 각종 환경 규정과 삼림권리법 등 관련 법규의 적용을 강화하고 승인 절차도 명확히 하면서 실질적인 권한과 의무를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장관의 성격이나 몇몇 관료와 투자자본의 이해관계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즉, 환경부 자체의 정책 방향에 따른 변화라기보다 중앙정부 전체가 합의를 도출한 거시적인 정책과 정치적 차원의 전환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부 강화는 인도 국내 정치의 골칫거리를 해결하는 정치적 목적과도 연관해볼 수 있다. UPA 정부의 추진 과제 중 하나는 낙살 공산반군을 소탕해 더는 주민들 사이에서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폭력혁명을 지지하는 낙살 공산반군은 인도 동부의 여러 주에서 활동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대형 프로젝트로 이주 대상이 된 부족민은 공산반군의 집중적인 공략 대상이 됐다. 환경부가 삼림권리법 등의 시행을 강화하면 부족민은 공산반군에 동조하는 것 외에 제도권 내에서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인도 정부가 공산반군 소탕작전을 하는 데 합리적인 시행 근거도 된다. 산업화를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이 정책은 여당의 선거 구호이기도 한 ‘인간의 얼굴을 한 발전(development with human face)’과도 일맥상통한다.
시장과 자본 통제 수단으로 등장
중앙정부가 각 주정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고삐를 잡으면서 각주에서 집권하고 있는 야당도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특히 중앙정부를 장악한 국민회의당과 그 연정 파트너가 아닌 지역 야당들이 집권하고 있는 주가 제약을 받게 됐다. 또 국민회의당이 낙후한 주에서 ‘발전·근대화’ 이슈를 선점하는 기회도 됐다. “중앙을 통제하는 국민회의당이 주정부에 선출되지 않아 지역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는 논리로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이다. 이 밖에 여당이 집권하는 주에서도 중앙이 지방을 더 강력히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지방분권 정치체제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인도에서 중앙의 지방 통제는 의미심장하다.
환경부의 간섭은 국내외 산업자본을 중앙정부에서 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합법적인 수단도 됐다. 인도는 자유경쟁과 시장경제체제로 경제정책을 전환한 지 20년이 되면서 국가가 시장과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도구를 점차 잃어버렸다. 규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과거 계획경제시대처럼 계획에 의해 경제활동을 통제할 근거가 없었다. 환경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 상황에서 거대 산업자본을 중앙정부의 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인도 정부의 또 다른 목적이다.
인도 정부 내에서 환경부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근본적으로는 인도 정부와 정치권의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드러낸다. 이는 시대 변화에 따른 국제정치 무대의 트렌드나 활발한 시민사회운동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 중앙정부는 ‘보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1차적 목표에 머무르지 않고, 환경문제를 거대 자본에 대한 효율적 관리와 국내 정치세력과의 권력관계, 나아가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까지 활용하고 있다. 향후 인도 환경부가 산업자본에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기후변화뿐 아니라 이제는 선거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대형 프로젝트 줄줄이 대기
현재 환경부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는 대표적인 대형 프로젝트에는 신(新)뭄바이 공항 건설, 베단타사의 보크사이트 광산 개발과 제련시설, 포스코사의 일관제철소와 항만시설이 있다. 각 주정부와 민간기업이 함께 투자하는 각지의 발전소, 운하, 광산 등도 포함돼 있다. 전문가로 구성된 환경부 조사단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대형 프로젝트의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작성한다. 환경부 장관이 이를 근거로 최종 승인을 내려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과거 ‘조건부 승인(provisional approval)’ 제도 시절에는 향후 개선할 수 있으면 환경부가 제시한 요건을 완비하지 못해도 임시 승인을 받아 공사를 진행한 뒤 승인 절차를 밟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최종 승인이 떨어져야만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이에 조건부 승인을 받고 진달전력(Jindal Power Ltd.)에서 진행하던 차티스가르 주의 2400MW급 발전소 공사도 올스톱 됐다.
삼림권리법(Forest Right Act)도 환경부에 힘을 실어준다. 대형 프로젝트는 대규모 토지수용과 용도변경 과정이 불가피하다. 삼림권리법은 여러 세대에 걸쳐 삼림지대에서 살아왔지만 토지 소유 기록이 없는 부족민의 삼림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자 2007년부터 시행됐다. 부족민의 이주가 필요한 모든 프로젝트가 삼림권리법의 관할 아래에 있다. 포스코의 오리사 프로젝트도 삼림권리법에 가로막혔다. 환경부 장관은 삼림권리법에 따라 포스코가 사용할 지역에서 떠나야 하는 주민들과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면 최종 승인을 내리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인도와 세계의 대기업들을 ‘울리는’ 환경부 장관 자이람 라메시는 어떤 인물일까? 1954년생인 라메시 장관은 인도 중앙정부에서 집권하고 있는 통일진보연합(UPA) 내각 중에서는 젊은 얼굴에 속한다. 그는 인도공과대학과 카네기 멜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엔지니어링과 과학 정책, 경영학을 공부한 전형적인 신세대 엘리트다. 현재 상원의원직을 유지하며 장관 임무도 수행하고 있지만 정치인이기보다 기술 관료에 가깝다. 1970년대 말부터 인도 정부의 과학기술 관련 부서에서 일하기 시작해 1990년대에는 경제개혁의 실무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배경으로 봤을 때, 그가 환경부 장관을 맡아 국내외 자본으로 산업기반시설 등을 세우는 것을 감시하고 있지만 결코 반(反)발전론자이거나 인도의 경제발전 필요성을 간과할 인물은 아니다.
환경부가 상공부나 외국투자진흥청, 총리실에서 이미 결정한 사안에 고개를 끄덕여주던 명목상의 감시기관에서 벗어난 이유는 복잡하다. 각종 환경 규정과 삼림권리법 등 관련 법규의 적용을 강화하고 승인 절차도 명확히 하면서 실질적인 권한과 의무를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장관의 성격이나 몇몇 관료와 투자자본의 이해관계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즉, 환경부 자체의 정책 방향에 따른 변화라기보다 중앙정부 전체가 합의를 도출한 거시적인 정책과 정치적 차원의 전환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부 강화는 인도 국내 정치의 골칫거리를 해결하는 정치적 목적과도 연관해볼 수 있다. UPA 정부의 추진 과제 중 하나는 낙살 공산반군을 소탕해 더는 주민들 사이에서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폭력혁명을 지지하는 낙살 공산반군은 인도 동부의 여러 주에서 활동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대형 프로젝트로 이주 대상이 된 부족민은 공산반군의 집중적인 공략 대상이 됐다. 환경부가 삼림권리법 등의 시행을 강화하면 부족민은 공산반군에 동조하는 것 외에 제도권 내에서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인도 정부가 공산반군 소탕작전을 하는 데 합리적인 시행 근거도 된다. 산업화를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이 정책은 여당의 선거 구호이기도 한 ‘인간의 얼굴을 한 발전(development with human face)’과도 일맥상통한다.
시장과 자본 통제 수단으로 등장
중앙정부가 각 주정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고삐를 잡으면서 각주에서 집권하고 있는 야당도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특히 중앙정부를 장악한 국민회의당과 그 연정 파트너가 아닌 지역 야당들이 집권하고 있는 주가 제약을 받게 됐다. 또 국민회의당이 낙후한 주에서 ‘발전·근대화’ 이슈를 선점하는 기회도 됐다. “중앙을 통제하는 국민회의당이 주정부에 선출되지 않아 지역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는 논리로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이다. 이 밖에 여당이 집권하는 주에서도 중앙이 지방을 더 강력히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지방분권 정치체제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인도에서 중앙의 지방 통제는 의미심장하다.
환경부의 간섭은 국내외 산업자본을 중앙정부에서 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합법적인 수단도 됐다. 인도는 자유경쟁과 시장경제체제로 경제정책을 전환한 지 20년이 되면서 국가가 시장과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도구를 점차 잃어버렸다. 규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과거 계획경제시대처럼 계획에 의해 경제활동을 통제할 근거가 없었다. 환경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 상황에서 거대 산업자본을 중앙정부의 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인도 정부의 또 다른 목적이다.
인도 정부 내에서 환경부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근본적으로는 인도 정부와 정치권의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드러낸다. 이는 시대 변화에 따른 국제정치 무대의 트렌드나 활발한 시민사회운동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 중앙정부는 ‘보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1차적 목표에 머무르지 않고, 환경문제를 거대 자본에 대한 효율적 관리와 국내 정치세력과의 권력관계, 나아가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까지 활용하고 있다. 향후 인도 환경부가 산업자본에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기후변화뿐 아니라 이제는 선거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