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위기의 핵심은 불건전한 국가 재정에 있다. 2년 전 미국발(發) 세계 경제위기는 금융기관의 신용 문제에서 비롯됐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에 충격받은 유수의 금융기관이 웬만해선 돈을 풀려 하지 않자 세계 경제는 꽁꽁 얼어붙었다. 민간 기업들과 가계의 파산을 막고자 각국 정부는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풀었고 그 결과 사상 유례가 없는 재정 적자, 즉 빚더미에 앉게 됐다.
독일 역시 마찬가지다. 2010년 3월 연방의회의 승인을 통과한 외채 규모는 802억 유로(약 120조 원)에 달해 독일 역사상 최고 액수를 기록했다. 연방정부 1년 예산인 3200억 유로(약 500조 원)의 4분의 1 수준. 미국발 경제위기가 유럽을 강타했던 2008년 겨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한두 기업이 망하더라도 국고를 풀지 않고 위기에 의연히 대처하자”는 자세였다. 하지만 독일 경제의 근간인 자동차산업마저 흔들렸고, 특히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몰린 오펠(미국 GM의 자회사)은 연방정부의 금융권 신용대출 보증을 애원했다. 2009년 들어 메르켈 총리가 입장을 완전히 바꿔 경기 부양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결과, 독일 경제는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였다.
독일도 재정건전성 위기 우려
그나마 남유럽 국가들보다 사정이 나았던 것은 독일이 수출 강국이라, 외채 규모가 무역수지 흑자로 어느 정도 완화됐기 때문.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그리스가 파산을 면하기 위해 유로존 국가들에게 손을 벌렸고, 그리스 지원금의 가장 큰 몫인 84억 유로(약 13조 원)가 독일에 넘겨졌다. 이로 인해 독일 정부의 재정도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독일이 2012년까지 지불해야 하는 채무는 240억 유로(약 36조 원)다. 아직 위기가 닥친 건 아니지만, 뭔가 전환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독일 기본법(헌법)의 외채 규모를 규제하는 조항이 2011년부터 발효된다는 사실. 이에 따르면 연방정부는 향후 5년간 구조조정으로 670억 유로(약 100조 원)의 예산 손실을 줄여야 한다. 2016년부터는 연방정부의 채무 규모가 100억 유로를 넘기면 안 된다. 이에 재무부 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는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메르켈 총리는 2010년 4월부터 ‘비상 긴축재정’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기민련 의원총회에서 메르켈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슈바벤 주부들에게 문제해결 방안을 물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짧지만 정답인 삶의 지혜가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가 주도인 독일 서남부 슈바벤 사람들은 ‘분수에 넘치는 삶을 오래 살 수 없다’는 말처럼 예부터 악착같이 일하고, 돈 안 쓰는 구두쇠로 소문났다. 즉, 이들처럼 전 독일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이야기다.
두 달여가 지난 6월 7일 정부는 비상 긴축재정 정책안을 발표했다. 2014년까지 800억 유로(약 120조 원)의 예산 집행을 줄이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 이는 독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긴축안이다. 이 결정으로 가장 타격을 받게 된 것은 사회복지 분야다. 지난 30년간 이 분야 예산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것이 그 이유. 1980년에는 전체 예산 중 사회복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16%에 그쳤는데, 2010년에는 54%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연금 800억 유로(약 130조 원)와 장기실업자 수당 400억 유로(약 65조 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긴축안에 따르면, 연금은 지급액을 줄이지 않지만 향후 금액 인상 속도를 늦추는 식으로 정부 부담을 줄이겠다고 한다. 실업수당은 비교적 큰 액수를 받는 ‘실업수당 I(실직 이후 3년)’에서 적은 액수를 받는 ‘실업수당 II(3년 이후)’로 이행할 때, 지금까지 2년간 유예기간을 줬던 것을 전면 폐지했다. 즉 실업수당 I에서 II로의 이동이 실직 후 3년이 아닌 5년이었는데(2년 유예기간 포함) 정확히 3년으로 하겠다는 것. 이를 통해 매년 2억 유로(3000억 원)를 절감할 계획이다. 또 실업수당 수령자가 연금을 이중으로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연간 18억 유로(2조7000억 원)를 줄일 것이며, 에너지 비용 상승을 고려해서 2009년 도입한 난방비 지원 분야를 폐지해 수억 유로의 지출을 줄일 예정이다. 이 밖에도 실업수당 수령자가 부모보조금까지 이중으로 받는 것을 금지해 1인당 최대 연간 4억 유로(6000억 원), 부모보조금 액수 산정을 기존 월급의 67%에서 65%로 낮춰 연간 2억 유로(3000억 원)를 절감할 계획이다.
핵 발전을 이용한 에너지 공급사는 지금까지 누렸던 감세 혜택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됐다. 이로써 연간 23억 유로(3조 6000억 원)의 세수가 예상되고, 항공이나 철도 여행에 대해 특별소비세가 신설될 예정. 또 증권과 금융 거래에 대한 특별세를 신설해, 현재도 진행 중인 경제위기에 대한 연대책임을 지울 계획이다. 연방정부의 살림도 매년 40억 유로(6조 원)씩 줄이기로 했다. 2014년까지 1만5000개의 관청 및 공공부문 일자리를 줄이는 것은 물론 공무원의 성탄절 보너스 동결 등이 계획돼 있다. 연방군의 규모도 현재 25만 명에서 21만 명으로 감축할 예정이며, 당초 계획했던 베를린 궁전 보수와 같은 문화사업도 동결 또는 몇 년 뒤로 미뤘다.
“상류층 위한 소득 재분배” 대규모 시위
하지만 소득세와 부가가치세의 인상은 배제됐고, 미래를 위한 교육 및 연구 분야에 대해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이번 긴축안이 독일의 장래를 위해서라는 것. 메르켈 총리는 긴축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미래를 설계하려면,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지금 다 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동석한 베스터벨레 부총리도 “모두 허리띠를 동여매야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분수에 넘게 살았다. (국가를) 견고히 하고, 개혁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긴축안의) 삼박자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긴축안은 곧바로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먼저 야당과 노조 측은 발표 당일 사회복지 축소를 문제 삼았다. 좌파당 원내대표인 그레고어 귀지는 “사회적 평화를 깨뜨리는 일격”이라며 ‘거대한 저항’을 예고했다. 사민당은 이 긴축안을 ‘상류층을 위한 소득 재분배’로 규정했다. 사민당 당수인 지그마어 가브리엘은 “기민련, 자민당이 자신들의 고객은 보호하면서 실업자와 그 가족의 고혈을 짜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민당 원내대표인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도 연초 자민당이 주도해 통과시켰던 호텔 특별소비세 및 사업세 인하를 거론하며 “그 돈만 있어도 지금 긴축안을 거론 안 해도 됐을 것”이라고 공격했다. 녹색당 당수인 폴커 벡은 “흑-황 연정이 서명한 것은 약자에 대한 긴축”이며 “여당은 부자들에게 더 큰 부담 지우는 것을 마치 악마가 성수를 꺼리는 것만큼 꺼린다”고 주장했다. 베르디(독일 공공서비스노조) 위원장인 브시르스케는 “연방정부가 튼튼한 어깨들에게 그 힘에 걸맞게 공동체를 재정 지원하도록 시키지는 않고, 사회 약자들에게만 부담을 지우려 한다”고 비판했다. 비판하는 측의 의견을 요약하면 ‘긴축안이 부담을 지워야 할 대상을 착각했다’ ‘은행가들처럼 위기를 초래한 이들, 즉 고소득자들에게 세금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회복지 비용을 축소하면 빈부차만 더 심각해진다’ 등.
“오히려 세금 감면 경제 활성화돼야”
반론은 여당 안에서도 제기됐다. 기민련 소속이면서 연방의회(하원) 의장인 노르베르트 람머트는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최상위 소득을 올리는 이들은 특별기부금을 내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소득이 적은 사람이 누릴 사회보장 혜택이 줄어든다면, 이는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 감소를 의미하므로 경기 회복에 악영향이 있겠지만, 고소득층의 특별기부금은 경기 부양에 지장이 없을 것”이 그의 주장에 대한 논거였다. 더 쉽게 정부 부채를 절감할 수 있는 세금 인상안을 자민당의 반대로 배제한 것에 대해서는 기민련과 자민당 사이에 논란이 계속됐다. 주말엔 대대적인 반대 시위도 있었다. 특히 베를린에서는 수만 명이 모인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돌과 병이 난무했을 뿐 아니라 사제 폭탄마저 등장해 경찰 등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대외적으로도 비판의 소리가 있다. 지난 6월 초 부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미국의 티머시 가이트너 장관은 “독일이나 중국처럼 무역수지 흑자를 보는 나라는 내수를 강화해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 주머니가 넉넉해져야 외국 물건도 사고, 수입도 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 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번 긴축안을 통해 그 제안을 깨끗이 거절했다. 얀수스 르완도우스키 유럽연합(EU) 예산담당 커미셔너는 “세계 경제는 위기의 바다에 있지만, 독일 경제는 안전한 섬”이라며 “독일이 그렇게 긴축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도 “독일은 유로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오히려 세금을 감면해야 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처럼 기민련-자민당 연정이 고심 끝에 발표한 긴축재정안은 국내외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했다. 과연 메르켈 정부는 이 법안을 예정대로 8월 중에 국회를 통과시킬 수 있을까? 현재 메르켈 정부는 무척이나 힘들고 지친 상태다. 호르스트 쾰러 같은 대중적 인기가 있었던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사퇴한 것도 무척이나 아쉬운 대목. 자칫 이 정책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정권 자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임이 일어나 5년 전 슈뢰더 총리 시절처럼 조기 총선을 해야 할지 모른다. 기민련-자민당 연정이 출범한 지 1년도 안 돼서 말이다. 독일의 미래를 위해 사회복지를 축소해가며 제시한 비상 긴축재정안의 성공 여부에 메르켈 정부의 운명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 역시 마찬가지다. 2010년 3월 연방의회의 승인을 통과한 외채 규모는 802억 유로(약 120조 원)에 달해 독일 역사상 최고 액수를 기록했다. 연방정부 1년 예산인 3200억 유로(약 500조 원)의 4분의 1 수준. 미국발 경제위기가 유럽을 강타했던 2008년 겨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한두 기업이 망하더라도 국고를 풀지 않고 위기에 의연히 대처하자”는 자세였다. 하지만 독일 경제의 근간인 자동차산업마저 흔들렸고, 특히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몰린 오펠(미국 GM의 자회사)은 연방정부의 금융권 신용대출 보증을 애원했다. 2009년 들어 메르켈 총리가 입장을 완전히 바꿔 경기 부양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결과, 독일 경제는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였다.
독일도 재정건전성 위기 우려
그나마 남유럽 국가들보다 사정이 나았던 것은 독일이 수출 강국이라, 외채 규모가 무역수지 흑자로 어느 정도 완화됐기 때문.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그리스가 파산을 면하기 위해 유로존 국가들에게 손을 벌렸고, 그리스 지원금의 가장 큰 몫인 84억 유로(약 13조 원)가 독일에 넘겨졌다. 이로 인해 독일 정부의 재정도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독일이 2012년까지 지불해야 하는 채무는 240억 유로(약 36조 원)다. 아직 위기가 닥친 건 아니지만, 뭔가 전환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독일 기본법(헌법)의 외채 규모를 규제하는 조항이 2011년부터 발효된다는 사실. 이에 따르면 연방정부는 향후 5년간 구조조정으로 670억 유로(약 100조 원)의 예산 손실을 줄여야 한다. 2016년부터는 연방정부의 채무 규모가 100억 유로를 넘기면 안 된다. 이에 재무부 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는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메르켈 총리는 2010년 4월부터 ‘비상 긴축재정’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기민련 의원총회에서 메르켈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슈바벤 주부들에게 문제해결 방안을 물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짧지만 정답인 삶의 지혜가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가 주도인 독일 서남부 슈바벤 사람들은 ‘분수에 넘치는 삶을 오래 살 수 없다’는 말처럼 예부터 악착같이 일하고, 돈 안 쓰는 구두쇠로 소문났다. 즉, 이들처럼 전 독일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이야기다.
두 달여가 지난 6월 7일 정부는 비상 긴축재정 정책안을 발표했다. 2014년까지 800억 유로(약 120조 원)의 예산 집행을 줄이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 이는 독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긴축안이다. 이 결정으로 가장 타격을 받게 된 것은 사회복지 분야다. 지난 30년간 이 분야 예산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것이 그 이유. 1980년에는 전체 예산 중 사회복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16%에 그쳤는데, 2010년에는 54%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연금 800억 유로(약 130조 원)와 장기실업자 수당 400억 유로(약 65조 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긴축안에 따르면, 연금은 지급액을 줄이지 않지만 향후 금액 인상 속도를 늦추는 식으로 정부 부담을 줄이겠다고 한다. 실업수당은 비교적 큰 액수를 받는 ‘실업수당 I(실직 이후 3년)’에서 적은 액수를 받는 ‘실업수당 II(3년 이후)’로 이행할 때, 지금까지 2년간 유예기간을 줬던 것을 전면 폐지했다. 즉 실업수당 I에서 II로의 이동이 실직 후 3년이 아닌 5년이었는데(2년 유예기간 포함) 정확히 3년으로 하겠다는 것. 이를 통해 매년 2억 유로(3000억 원)를 절감할 계획이다. 또 실업수당 수령자가 연금을 이중으로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연간 18억 유로(2조7000억 원)를 줄일 것이며, 에너지 비용 상승을 고려해서 2009년 도입한 난방비 지원 분야를 폐지해 수억 유로의 지출을 줄일 예정이다. 이 밖에도 실업수당 수령자가 부모보조금까지 이중으로 받는 것을 금지해 1인당 최대 연간 4억 유로(6000억 원), 부모보조금 액수 산정을 기존 월급의 67%에서 65%로 낮춰 연간 2억 유로(3000억 원)를 절감할 계획이다.
핵 발전을 이용한 에너지 공급사는 지금까지 누렸던 감세 혜택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됐다. 이로써 연간 23억 유로(3조 6000억 원)의 세수가 예상되고, 항공이나 철도 여행에 대해 특별소비세가 신설될 예정. 또 증권과 금융 거래에 대한 특별세를 신설해, 현재도 진행 중인 경제위기에 대한 연대책임을 지울 계획이다. 연방정부의 살림도 매년 40억 유로(6조 원)씩 줄이기로 했다. 2014년까지 1만5000개의 관청 및 공공부문 일자리를 줄이는 것은 물론 공무원의 성탄절 보너스 동결 등이 계획돼 있다. 연방군의 규모도 현재 25만 명에서 21만 명으로 감축할 예정이며, 당초 계획했던 베를린 궁전 보수와 같은 문화사업도 동결 또는 몇 년 뒤로 미뤘다.
“상류층 위한 소득 재분배” 대규모 시위
하지만 소득세와 부가가치세의 인상은 배제됐고, 미래를 위한 교육 및 연구 분야에 대해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이번 긴축안이 독일의 장래를 위해서라는 것. 메르켈 총리는 긴축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미래를 설계하려면,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지금 다 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동석한 베스터벨레 부총리도 “모두 허리띠를 동여매야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분수에 넘게 살았다. (국가를) 견고히 하고, 개혁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긴축안의) 삼박자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긴축안은 곧바로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먼저 야당과 노조 측은 발표 당일 사회복지 축소를 문제 삼았다. 좌파당 원내대표인 그레고어 귀지는 “사회적 평화를 깨뜨리는 일격”이라며 ‘거대한 저항’을 예고했다. 사민당은 이 긴축안을 ‘상류층을 위한 소득 재분배’로 규정했다. 사민당 당수인 지그마어 가브리엘은 “기민련, 자민당이 자신들의 고객은 보호하면서 실업자와 그 가족의 고혈을 짜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민당 원내대표인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도 연초 자민당이 주도해 통과시켰던 호텔 특별소비세 및 사업세 인하를 거론하며 “그 돈만 있어도 지금 긴축안을 거론 안 해도 됐을 것”이라고 공격했다. 녹색당 당수인 폴커 벡은 “흑-황 연정이 서명한 것은 약자에 대한 긴축”이며 “여당은 부자들에게 더 큰 부담 지우는 것을 마치 악마가 성수를 꺼리는 것만큼 꺼린다”고 주장했다. 베르디(독일 공공서비스노조) 위원장인 브시르스케는 “연방정부가 튼튼한 어깨들에게 그 힘에 걸맞게 공동체를 재정 지원하도록 시키지는 않고, 사회 약자들에게만 부담을 지우려 한다”고 비판했다. 비판하는 측의 의견을 요약하면 ‘긴축안이 부담을 지워야 할 대상을 착각했다’ ‘은행가들처럼 위기를 초래한 이들, 즉 고소득자들에게 세금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회복지 비용을 축소하면 빈부차만 더 심각해진다’ 등.
“오히려 세금 감면 경제 활성화돼야”
반론은 여당 안에서도 제기됐다. 기민련 소속이면서 연방의회(하원) 의장인 노르베르트 람머트는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최상위 소득을 올리는 이들은 특별기부금을 내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소득이 적은 사람이 누릴 사회보장 혜택이 줄어든다면, 이는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 감소를 의미하므로 경기 회복에 악영향이 있겠지만, 고소득층의 특별기부금은 경기 부양에 지장이 없을 것”이 그의 주장에 대한 논거였다. 더 쉽게 정부 부채를 절감할 수 있는 세금 인상안을 자민당의 반대로 배제한 것에 대해서는 기민련과 자민당 사이에 논란이 계속됐다. 주말엔 대대적인 반대 시위도 있었다. 특히 베를린에서는 수만 명이 모인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돌과 병이 난무했을 뿐 아니라 사제 폭탄마저 등장해 경찰 등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대외적으로도 비판의 소리가 있다. 지난 6월 초 부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미국의 티머시 가이트너 장관은 “독일이나 중국처럼 무역수지 흑자를 보는 나라는 내수를 강화해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 주머니가 넉넉해져야 외국 물건도 사고, 수입도 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 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번 긴축안을 통해 그 제안을 깨끗이 거절했다. 얀수스 르완도우스키 유럽연합(EU) 예산담당 커미셔너는 “세계 경제는 위기의 바다에 있지만, 독일 경제는 안전한 섬”이라며 “독일이 그렇게 긴축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도 “독일은 유로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오히려 세금을 감면해야 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처럼 기민련-자민당 연정이 고심 끝에 발표한 긴축재정안은 국내외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했다. 과연 메르켈 정부는 이 법안을 예정대로 8월 중에 국회를 통과시킬 수 있을까? 현재 메르켈 정부는 무척이나 힘들고 지친 상태다. 호르스트 쾰러 같은 대중적 인기가 있었던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사퇴한 것도 무척이나 아쉬운 대목. 자칫 이 정책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정권 자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임이 일어나 5년 전 슈뢰더 총리 시절처럼 조기 총선을 해야 할지 모른다. 기민련-자민당 연정이 출범한 지 1년도 안 돼서 말이다. 독일의 미래를 위해 사회복지를 축소해가며 제시한 비상 긴축재정안의 성공 여부에 메르켈 정부의 운명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