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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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왜’… 스릴러 질문의 뒤집기

강우석 감독의 ‘이끼’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10-07-05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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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왜’… 스릴러 질문의 뒤집기

    유목형의 아들 해국(박해일 분)은 마을의 비밀을 찾아내려 한다.

    영화 ‘이끼’는 윤태호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이끼’는 인터넷 연재라는 매체의 변화를 받아들여 스크롤 리듬에 맞춰 새로운 스릴을 창조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가로로 읽는 만화의 스토리 전개를 세로의 리듬에 맞춰 바꾼 데다 색과 톤을 모니터 해상도에 적합하게 해, 말 그대로 인터넷 연재용 만화의 방식을 창조한 작품이다. 중요한 것은 음산한 그림체와 궁벽한 시골을 배경으로 ‘스릴’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이다. 많은 독자가 ‘이끼’의 새로운 방식과 낯선 긴장감에 열광했다. 그리고 2010년 강우석 감독은 이를 원작으로 동명의 영화 ‘이끼’를 만들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은 양가적 효과를 누린다. 장점이라면 이미 유명세를 탄 작품이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에 대한 우려를 덜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이 만만치 않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먼저 읽은 ‘작품’을 원본 삼아 새로운 작품을 사본 취급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끼’는 유명한 원작이 주는 위험에서 시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끼’는 한국 스릴러 영화의 흐름을 한 걸음 더 걷게 한 작품이다. ‘후더닛(whodunit)’에서 ‘하우더닛(howdunit)’으로의 변화의 걸음 말이다. 대개 어떤 사건이 일어난 후 누가 그 사건을 저질렀는지 추적해가는 과정의 스릴러를 ‘후더닛’이라고 부른다. 박찬욱이 그의 작품 ‘올드보이’를 통해 “‘누가’가 아니라 ‘왜’라고 물어야지”라고 말할 때, 이는 후더닛에서 와이더닛(whydunit)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이끼’ 역시 ‘누가’라는 부분을 일찌감치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누가’가 아니라 ‘왜’ 그리고 ‘어떻게’라는 다른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이상세계를 꿈꿨던 유목형과 현실적 정치력을 지닌 이장 천용덕의 미스터리를 주축으로 펼쳐진다. 무릇 속세의 죄 많은 사람들을 존경으로 이끌던 유목형의 카리스마를 천용덕은 정치적 장악력으로 활용한다. 문제는 유목형이 겉으로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철저히 자기희생적이며 이상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유목형은 범죄자들이 종교적 이상과 자기 수련을 통해 새롭게 갱생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유목형의 진심 어린 신실함은 그들을 더욱 초라하고, 죄 많은 인간으로 비춘다. 흰색 옆의 검은색이 더욱 검어 보이듯 그들은 너무 깨끗한 유목형의 그늘을 불편해한다.



    하지만 영화는 유목형과 천용덕의 대결에 일찌감치 승부를 낸다. 정작 문제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천용덕과 그의 ‘마을’에 의구심을 지닌 유목형 아들의 등장이다. 유목형의 유해를 거두러 온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과 마을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관계, 다시 말해 마을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끼’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개성 있는 코믹 연기를 주로 선보였던 김상호와 유해진은 ‘이끼’를 통해 그동안 배제했던 ‘다른 면’을 드러낸다. 이장으로 분해 노인 역을 소화한 정재영 역시 밀도 깊은 연기의 한 수를 보여준다.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해결해가는 과정은 호연과 꽉 짜인 이야기를 거쳐 관객들에게 새로운 긴장을 주는 데 성공한다.

    윤리적 전언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모색한 강우석의 변화도 지켜볼 만하다. ‘이끼’는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닌 원작을 각색한 강우석의 첫 작품이다. ‘이끼’가 한국의 중견 감독 강우석의 제2 출사표로 보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아쉽게도 한국 영화계에서 20년 넘게 현장에 남아 있는 감독은 거의 없다. 꾸준히 작품을 만드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지점이 된다. 현장의 감독, 강우석의 변화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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