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창 서울강북경찰서장이 6월 28일 오후 서울 번동 강북경찰서에서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동반사퇴를 요구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현재 채 서장의 기자회견 배경을 두고 여러 설이 나돌고 있다. 채 서장의 출신, 고향, 성격, 실적 등을 따져본 다양한 추측이다. 채 서장과 조 청장의 경찰 입문 배경을 고려한 경찰대 vs 고려대-영남 설, 조 청장 아래에서 승진길이 막히자 돌출행동을 했다는 설, 정치에 대한 욕심이 있어 기자회견을 택했다는 설 등 설이 넘치지만 일선 경찰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경찰 내부에서도 “왜 그랬을까”
추측 중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설은 채 서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조 청장식 실적주의에 대한 반기’다. 강남지역 한 경찰대 출신 경찰은 “조 청장은 성과주의라고 하지만, 성과주의는 개인이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조 청장의 성과주의는 일선 서(署)의 사정을 무시한 단순한 실적 집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대 출신의 A경정도 “실적만 따진 뒤 경찰조직이 많이 망가졌다. 채 서장이 조직에 대한 애정 때문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도 실적주의 평가를 보완하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조 청장식 실적주의’라고 말하지만 우선 ‘실적주의’는 어제오늘에 생겨난 게 아니다. 형사활동평가는 1996년에 시작됐고, 2006년 노무현 정권 때는 정부업무평가 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 행정부처에 성과주의가 도입됐다. 경찰청 경무과 관계자는 “조 청장은 광범위한 평가 항목을 선택과 집중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조 청장식’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조 청장의 ‘불도저식’ ‘독일 병정식’ 지휘 스타일은 경기지방경찰청장 당시 붙은 닉네임. 당시 조 청장은 경기도 경찰관을 강하게 밀어붙여 민생침해사범 검거율을 155%나 올리는 등 높은 실적을 냈지만, 눈에 보이는 실적에만 집착한다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지방청 소속 경찰은 조 청장이 서울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경기청 시절만큼 아니었다고 말한다.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은 “4개월 연속 꼴찌하는 게 문제다”며 채 서장의 요구에 반박했다.
개인적인 반발감에 따른 돌출행동으로 보는 설도 있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경찰대 1기생은 선배가 없어 좌충우돌하는 경향이 있다. 실적 평가에서 연달아 꼴찌를 했고, 조 청장 체제 아래서는 승진길이 사실상 막힌 상태라 돌출행동을 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채 서장은 기자회견에서 감찰 인력을 동원, 실적을 압박하는 조 청장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피력했다. 이와 관련해 채 서장 비위설도 제기됐다. 채 서장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비위를 경찰 내부에서 감찰했고, 채 서장이 마지막 카드로 기자회견을 선택했다는 설이다. 하지만 확인 결과, 경찰의 채 서장에 대한 감찰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감찰계통 관계자는 “들은 바 없다. 예전에 이런저런 감찰을 한 적은 있지만, 채 서장이 감찰을 받았다는 건 전혀 생소한 얘기”라고 전했다.
경찰대 출신들은 부인하지만 경찰대 조직을 위해 채 서장이 ‘총대를 멨다’는 시각도 있다. 고문 의혹으로 자리를 비운 양천서 서장이 경찰대 1기인 점, 서울경찰청장 자리를 두고 경정 특채 출신인 조 청장과 경찰대 1기 윤재옥 경기지방경찰청장이 경쟁했던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경찰대 출신 경찰들도 “왜 하필 채 서장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 해 120명이 배출되는 경찰대 출신들은 동문으로서의 동질감도 있지만 치열한 승진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는 상호 견제도 심해 ‘희생정신’을 발휘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개인적 반발에 경찰조직 흔들
온갖 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치 진출에 포석을 둔 게 아니냐는 추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경찰을 그만둔 경찰대 1기 출신은 “기자회견은 사회적 파장을 노린 정치적인 방식이다. 채 서장이 경찰조직 문제에 갑갑함을 느꼈다면 직접 정치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청장의 실적주의에 대한 비판이 현 정권의 성과주의, 실적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채 서장의 고향이 전북 군산으로 야당세가 강하고, 고향 바로 옆 김제경찰서에서 복무할 때 인맥관리를 잘했으며, 민주당 조배숙 의원과 친인척 관계라는 이유 등으로 이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기 졸업생은 “채 서장은 영등포경찰서 정보2계장으로도 근무했다. 업무와 관련된 일이겠지만 여의도 관계자들과 술자리도 했다. 국회의원들과 접촉하는 만큼 정치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채 서장은 7월 1일 항명과 관련해 경찰청 감찰조사를 받았다. 채 서장의 선택 배경이 무엇이든 뿌리가 흔들린 경찰조직은 갈림길에 섰다. 한 경찰은 “스폰서 검사 사태 때 검찰을 견제해 수사권 독립 등 경찰조직을 위해 힘을 모아야 했는데 양천서 고문 의혹이 터지는 등 구설로 경찰조직의 힘이 빠져버렸다”고 말했다. 채 서장의 선택이 갈등만 남길지, 환골탈태의 계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