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B> 처마 아래 메주. 메주를 엮어 다는 방법은 지역마다 사람마다 특색이 있으나 모두 나름 정성을 다한다.
다행히 지금은 인터넷이 되니 문화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다. 한데 문화생활도 한발 물러나 생각해보면 남들이 만들어놓은 걸 즐기는 수준일 뿐, 여기서 더 나아가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문화를 조금 넓게 정의한다면 가능하리라. 문화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그냥 ‘삶에서 우러난 자기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만의 표현방식을 다양하게 개발하면서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누린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겠나.
시시각각 새로운 ‘자족의 문화’
우리는 집 안에 살림살이가 거의 없다. 도시 살 때 쓰던 장롱은 작은 시골집에 맞지 않아 버렸다. 대신에 새로 집을 지으면서 붙박이장을 손수 짰다. 그나마 시골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TV마저 이사하면서 미련 없이 버렸다. 그랬더니 집이 한결 넓어 보이고 정신적인 여유도 생긴다.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까.
우선 거실 한쪽에 단골로 자리한 게 달력이다. 그런데 이 달력을 문화라고 주장하는 데는 나름 사연이 있다. 큰아이 탱이가 그린 그림으로 달력을 채워가기 때문이다. 탱이는 이웃한테 영감을 받았는지, 올 초부터 달력을 자급하겠다고 달마다 그림을 그린다. 이 그림을 넣는 액자는 내가 목공교실에서 배워 서툴게 짠 것. 딸 그림만 해도 좋은데 내가 짠 액자에 넣었으니 이거야말로 스스로 만족하는 ‘삶의 문화’다.
그리고 이 달력은 미리 열두 달로 정해진 게 아니다. 그 달이 끝나갈 무렵, 다음 달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면 그때 그린다. 때문에 그리는 사람조차 다음 달력이 어찌 나올지 모른다. 9월 달력은 사진에서 보듯 파란 가을하늘에 구름과 잠자리가 떠 있고, 그 한가운데 날짜가 적혀 있다. 마치 9월이라는 달이 하늘에 떠 있는 것 같다. 날마다 이 달력을 보아서인지 9월에는 하늘을 더 자주 보는 느낌이다.
이쯤에서 ‘삶의 문화’를 좀 거창하게 해석해본다. 그건 생명의 문화요 생산의 문화이며, 나아가 문화를 자급자족하는 거라고. 문화를 돈 주고 소비할 때는 감동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반면에 스스로 생산하는 문화는 비록 소박하더라도 기쁨만은 잔잔하게 오래간다. 그림달력 말고 ‘작품’을 하나 더 들자면 키 재기 표시다.
이것은 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 집은 거실에 나무 기둥이 있다. 기둥에는 집을 지을 때 목수가 쳐놓은 먹줄이 있는데 이게 바로 키를 재는 기준선이다. 아이들은 자기 성장을 궁금해한다. 정신적인 성장이야 자로 잴 수 없지만 키는 가능하다. 몸무게는 몸 상태에 따라 들쑥날쑥하기도 하지만 키는 조금씩 자란다. 아이들은 자기 성장이 궁금할 때면 키를 잰다. 그런 뒤 기쁨에 겨워 이를 기둥에 표시한다.
<B>2</B> 노란 땡감이 붉게 홍시로 바뀌어가니 집 안 분위기도 날마다 달라진다. <B>3</B> 거실 한쪽에 걸어둔 씨앗용 옥수수. 검은 건 찰옥수수, 노란 건 팝콘옥수수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집을 밝게 하는 인테리어다. <B>4</B> 탱이가 그린 9월 달력. 문화를 자급자족한다는 건 자기 표현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B>5</B> 여러 아이의 성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키 재기 표시.
단순한 연필선과 숫자, 글자 몇 개에 불과하지만 이 기둥은 삶의 교육이자 살아 숨 쉬는 문화가 된다. 어쩌면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자식을 낳아 그 자식들이 이 기둥을 본다면 다시 키 재기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키 재기 표시는 집집마다 재미있는 유산이 되지 않을까.
생활 속 변화와 기다림을 즐겨라!
이렇게 ‘삶의 문화’에 취하다 보면 그 영역도 자꾸 넓어진다. 집을 소박하게 꾸미는 게 이 정도니 손수 짓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소중한 자기 표현이 된다. 틈틈이 글을 쓰고 사진 찍는 것 역시 그림 못지않게 문화를 생산하는 즐거움을 준다. 여러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것도 문화가 되며, 작물을 가꾸는 농업(agriculture)도 빼놓을 수 없는 문화(culture)가 아닌가.
9월이면 풋풋하던 옥수수 알맹이가 딱딱하게 영글어간다. 다 익은 옥수수는 참 아름답다. 영롱한 보석인 옥(玉)처럼 반질반질 윤이 난다. 이 가운데 잘 익고, 빛나는 옥수수가 다음 해 씨앗이 된다. 이는 따로 묶어 저장을 하는데 나는 거실 한쪽에 걸어둔다. 이를 보고 있으면 여러 감흥이 겹쳐 떠오른다. 내게 씨앗을 건네준 마을 할머니가 먼저 떠오르고, 덩실덩실 춤추듯 펼쳐지던 옥수수수염이 손에 잡힐 듯하고, 씨앗을 지키기 위해 짐승들과 씨름하던 날들도 눈에 선하다.
이런 것 말고도 철 따라 집 안팎을 장식하는 것들이 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면 감과 곶감, 메주를 빼놓을 수 없겠다. 땡감을 창틀에 놓아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붉게 변하고 나중에는 하나둘 말랑말랑 홍시가 된다. 땡감이 곶감으로 바뀌는 과정은 홍시보다 많은 사연이 있다. 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을 눈요기로 즐기다가 어느 순간은 사진을 찍고, 또 감흥이 밀려오면 글을 쓰고, 곶감이 되어 군침이 돌면 이를 먹는다. 이런 변화와 기다림을 즐기다가 먹는 맛!
메주는 우리네 1년 양념. 그런 만큼 한결 정성을 기울여 볏짚으로 예쁘게 엮어 처마 아래 매단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이들을 먹는 순간은 문화를 삼키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이렇게 삶에서 우러나는 문화는 그 끝이 없어, 우리네 정신과 영혼을 풍요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