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조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 저희 자매는 종종 물었습니다. “큰이모랑 둘째이모랑 막내이모 중에 누가 제일 좋아?” “큰이모랑 둘째이모랑 막내이모랑 좋아.” 우문현답(愚問賢答)이란 이런 거겠죠. 다 좋은데 하나를 고르라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2PM의 박재범 사태와 관련, 한국에 거주하는 해외교포 청년들을 만나면서 한국인이 ‘우문’에 빠져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교포들을 한국인으로 ‘믿는’ 것도, 미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여기며 밀어내는 것도 이들에겐 참 답답한 일입니다. 재미·재일교포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선 많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물론 한국인이죠. 그러나 필리핀 베트남 등 ‘엄마 나라’의 문화 또한 내재한 한국인입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재미교포 2, 3세 청소년들이 ‘화이트워시(whitewash·백인화)’에 애쓰는 것처럼, 이 아이들 또한 ‘코리아워시(koreawash·한국화)’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한국 사회가 ‘동남아계 엄마를 둔 한국인’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이들의 청소년기는 덜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또 한국을 배우느라 겪는 좌충우돌을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줬으면 합니다. 청소년기에 잔소리하는 엄마를 향해 “엄마 싫어” “엄마 짜증나”라는 말, 안 해본 사람 없잖아요. 한국 비하로 매도된 박재범의 발언도 이런 수준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세상에는 무 자르듯 명확하게 나눌 수 없는 것들이 지천입니다. 그런 것을 무리해서 나눠버리려고 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죠. 저도 예전에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교포 친구에게 “네 조국은 한국이야, 캐나다야?”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My country는 캐나다인데, 우리나라는 한국이야”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중정체성의 의미를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서울사람, 부산사람, 이북사람, 목포사람이 있듯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미교포, 엄마가 필리핀인인 소년, 한국에서 지낸 지 꽤 오래된 조선족과 탈북자도 있습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박재범 사태가 한국 사회의 ‘다문화지수’를 높이는 계기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2PM의 박재범 사태와 관련, 한국에 거주하는 해외교포 청년들을 만나면서 한국인이 ‘우문’에 빠져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교포들을 한국인으로 ‘믿는’ 것도, 미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여기며 밀어내는 것도 이들에겐 참 답답한 일입니다. 재미·재일교포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선 많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물론 한국인이죠. 그러나 필리핀 베트남 등 ‘엄마 나라’의 문화 또한 내재한 한국인입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재미교포 2, 3세 청소년들이 ‘화이트워시(whitewash·백인화)’에 애쓰는 것처럼, 이 아이들 또한 ‘코리아워시(koreawash·한국화)’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한국 사회가 ‘동남아계 엄마를 둔 한국인’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이들의 청소년기는 덜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또 한국을 배우느라 겪는 좌충우돌을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줬으면 합니다. 청소년기에 잔소리하는 엄마를 향해 “엄마 싫어” “엄마 짜증나”라는 말, 안 해본 사람 없잖아요. 한국 비하로 매도된 박재범의 발언도 이런 수준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세상에는 무 자르듯 명확하게 나눌 수 없는 것들이 지천입니다. 그런 것을 무리해서 나눠버리려고 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죠. 저도 예전에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교포 친구에게 “네 조국은 한국이야, 캐나다야?”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My country는 캐나다인데, 우리나라는 한국이야”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중정체성의 의미를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서울사람, 부산사람, 이북사람, 목포사람이 있듯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미교포, 엄마가 필리핀인인 소년, 한국에서 지낸 지 꽤 오래된 조선족과 탈북자도 있습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박재범 사태가 한국 사회의 ‘다문화지수’를 높이는 계기로 거듭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