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7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 우당교양관에서 열린 베르베르의 ‘창의력과 글쓰기’ 특별강연에는 1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또랑또랑한 얼굴의 초등학생부터 개량한복을 입은 장년의 아저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그의 한마디를 듣기 위해 복도 바닥에 앉아서, 창가에 기대서, 대강당 뒤편에 까치발로 서서 기다렸다.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강연장에 들어선 베르베르도 팬들의 열기에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여러 차례 “감사하다. 한국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했다. 1시간 30분가량 동시통역으로 진행된 강연에서 그는 자신만의 창의적인 글쓰기 비법에 대해 특유의 위트를 섞어가며 재미있게 설명했다. 다음은 이날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실생활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베르베르만의 창의적인 글쓰기 비법 속으로 들어가보자.
대학 시절 나는 법학과 범죄학을 전공했다. 법학은 매력적인 학문이 아니었다. 교수님은 “프랑스 법대에선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하나는 유혹하는 것, 또 하나는 속이는 것이다. 좋은 변호사는 타인을 잘 유혹하는 동시에 거짓말도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속담엔 ‘좋은 변호사는 법을 알고, 매우 좋은 변호사는 판사를 안다’는 말도 있다.(웃음) 내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범죄학이 더 매력적이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한 일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많이 하면 할수록 더욱 좋아하게 됐고, 그러다 보면 이야기하는 게 더 쉬워졌다. 하지만 프랑스 대학에서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 즉 작가를 위한 학교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어떤 것에 흥미를 가지고 읽고 싶어하는지, 스스로 파악해야 했다. 그래서 대학 때 나는 공부를 잘하는 좋은 학생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그 이야기를 말하며,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데 매진했다. 좋은 스토리는 일종의 게임과 같다. 읽는 동안에 예상하지 못하다가 막판에 와서 크게 놀랄 수 있어야 한다. 즉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마술과 같은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하지만 창의력을 키우는 나의 비법은 일상에서도 할 수 있는 정말 사소한 것이다.
첫 번째 비법은 ‘규칙적인 생활’이다. 나는 16살 때부터 아침마다 4시간 30분씩 글을 쓰는 습관이 있다. 상상력도 거듭되는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다.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훈련의 결과로 습관이 되면 글을 쓰지 않을 때 오히려 불안감을 느낀다.
일상에서 창의력 키우는 비법
두 번째 비법은 ‘꿈을 메모하기’다. 창의성을 기르려면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기존 소설과 비슷한 것을 써서도, 유행만을 좇아도 안 된다. 자신의 내면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 가장 쉽고도 좋은 방법은 꿈을 메모하는 것이다. 꿈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 본질이다. 꿈에서만큼은 매우 자유롭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 밤 꾼 꿈에 대해 기억이 나는 데까지 두서없이 쓴다. 이는 내 소설의 중요한 원천이다.
9월7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 우당교양관에서 열린 베르베르의 ‘창의력과 글쓰기’ 특별강연에는 1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장사진을 이뤘다(좌). 그의 강연 내용을 하나라도 놓칠까 깨알같이 메모하는 참석자(우).
세 번째 비법은 ‘좌뇌의 경색을 풀고, 우뇌를 활용하라’다. 감옥에 갇힌 죄수가 방(좌뇌)에서 나와 정원(우뇌)을 산책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죄수는 아무리 산책을 해도 결국 방(좌뇌)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조금씩 산책하는 정원(우뇌)의 범위를 넓혀주면 죄수는 더 활기차게 지낼 수 있다. 방(좌뇌)에만 있으면 죄수는 숨이 막혀 죽게 된다. 즉 좌뇌의 경색을 풀어주고, 우뇌로 하여금 좀더 자유로운 창작을 하게 해야 한다.
글을 쓰고, 그 글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는 일 역시 좌뇌의 지나친 간섭이다. 꿀벌은 좋은 꿀인지, 나쁜 꿀인지 판단하지 않고 그냥 꿀을 만든다. 창작물에 대해 판단하거나 계산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그냥 자유롭게 쓰라. 창작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네 번째 비법은 ‘관찰하라’다. 나는 ‘개미’를 쓰는 데 12년이 걸렸다. 16살에 시작해서 28살에 완성했다. 내 마음에 드는 완벽한 버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개미’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은 내게도 도전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를 소재로 해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사실 꿈에 개미가 나와서 모티프를 제공하기도 했다.(웃음) 내 머릿속에 있는, 좀더 정확히는 우뇌 속에 있던 개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풀어내고 싶었다.
어떤 생명체나 사물에서도 오랫동안 관찰하면 넘치는 에너지와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자기 자신을 대상에 투영할 수도 있다. 나는 개미를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개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동화될 수 있었다. 이는 개미뿐 아니라 나무, 물고기 등 어떤 동식물에게도 가능하다. 관찰을 거듭하면 소설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스스로 믿고 사랑하면 세상 변화
다섯 번째 비법은 ‘내면의 다이아몬드를 빛나게 하라’다. 당장 이 강연이 끝나면 나무에 손을 대고 뿌리의 축축함과 잎사귀의 촉촉함을 느껴보라. 또는 빛이 잘 들지 않는 방에 가서 별을 떠올리고, 별의 시각이 돼 세상을 내려다보라. 그러다 보면 나 스스로 알지 못하던 커다랗고 위대한 감각이 내 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국어판 ‘신’의 원제는 ‘우리는 신이다’다. 우리 안에 신과 같은 놀라운 힘이 내재함을 알려주고 싶었다.
즉 우리 내부에 창의력이 자리잡고 있음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로 생각하라. 또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라. 내 강연 이후 여러분이 이전에 몰랐던 것을 깨닫고 창작 욕구를 느낀다면 나는 세상을 바꾼 것이다. 우리 대다수는 너무나도 겸손하다. 이젠 스스로를 믿고 사랑해야 한다.
내면의 다이아몬드 같은 창의력을 스스로 빛나게 하라. 이런 인식은 좋은 의미에서 ‘전염성’ 있는 현상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유로운 마인드로 창의성을 빛낸다면, 당신에게 영감을 받은 사람들도 변해갈 것이다.
강연 이후 참석자들에게서 뜨거운 질문이 쏟아졌다. ‘신’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등 한국에 관심이 많은 것을 언급하며 “어떻게 한국에 대해 공부했는가”라고 한 질문에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내 책을 번역한 이세욱 씨와 한국의 역사나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 속에서 위기를 잘 헤쳐온 한국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적 국가”라고 강조했다.
또한 “공대생에게 필요한 창의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파피용’에 나오는 태양열 우주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학자의 힘이 꼭 필요하다”고 재치 있게 답했고, “정말 싫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북한의 독재자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독재자를 싫어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구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일반 대중이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환경문제를 다룬 작품을 많이 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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