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xy Paine ‘Maelstrom 2009’
옥상정원을 금방이라도 타고 넘어갈 듯 쭉쭉 뻗은 가지를 가까이에서 보니 수만 개의 스테인리스스틸 파이프 조각을 직접 용접해 만들었네요. 작가는 나무의 성장 구조와 인간의 신경조직, 그리고 산업 파이프라인과 인터넷 연결망의 놀라운 유사성에 주목합니다.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결국 자연의 질서를 닮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통해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인공물이 결국 자연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거죠.
이 인공나무의 이름은 ‘대소용돌이(Maelstrom)’인데요. 작품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카오스적이고 격정적인 자연의 힘을 상징합니다. 작가는 1908년 시베리아 퉁구스카 대폭발 사건을 작품에 인용했는데요. 지상 5~10km 상공에서 발생한 정체불명 물체의 폭발로 인근 2000km2 내에 있던 8000여 만 그루의 나무가 모두 쓰러졌고, 폭발 당시 먼지에 부딪쳐 생긴 산란 광선으로 이곳에서 1만km2나 떨어진 런던에서도 한밤중에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의 무려 1000배 위력을 지닌 이 폭발 사건은 현재까지 인간이 인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규모의 외계 물체 충돌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당시 주변의 나무가 모두 불타 누워 있었지만 폭심으로 추정되는 지점의 나무들만은 하늘을 향해 똑바로 서 있었다고 하는데요.
저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옥상정원 한가운데서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솟은 인공 마천루들이 실은 대폭발의 가장 조용한 폭심에 자리한 것은 아닌지, 어쩌면 이 폭심 바깥으로 조금만 나가면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엄청나게 파괴적인 자연의 힘이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지고 말았습니다. 10월25일까지 전시되는 록시 페인의 인공나무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긴장을 고조시키며 정신적 ‘대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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