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스타 이천수가 쇠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 네덜란드 무대 적응 실패 뒤 야심차게 입단한 수원에서는 아예 전력에서 이탈된 상황이다. 여기에 그를 둘러싼 각종 스캔들은 끊이지 않고, 최근엔 고소까지 당했다. ‘오늘’의 몰락을 그가 ‘악바리’차럼 이겨낼 수 있을까.
2002 한일월드컵과 2006 독일월드컵은 물론 올림픽과 아시안컵 등에서 ‘없어서는 안 될’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며 K리그에서도 2005년 당시 소속팀이던 울산 현대의 우승을 이끌어 MVP로 선정됐던 이천수였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서 ‘점’만 찍고 유턴했을 때도 K리그에선 그의 귀환을 열렬히 환영했다.
지금 그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미 수원 삼성에서 이천수를 ‘팀 분위기를 해치는 요인’으로 꼽은 탓에 다른 팀에서 쉽게 그를 불러들이기가 어렵다. J리그 진출설도 나돌지만 아직 ‘설’로만 떠돌 뿐이다.
이천수 잡을 사람은 김정남 감독뿐?
이천수가 수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차범근 감독 때문이다. 차두리와 친한 이천수는 평소 차 감독을 ‘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다. 차 감독은 이천수를 좋은 선수로 평가했고 이천수가 네덜란드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을 때 일부러 네덜란드까지 찾아가 그를 격려했다. 그런 관계는 이천수가 K리그로 돌아오는 데 촉매제 구실을 했고, 그동안 ‘대표팀급’ 선수들을 영입해 재미를 못 본 차 감독으로서는 그에게 큰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상 팀에 합류한 이천수는 겉돌았다. 열심히 해보려는 의지는 강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수원에서 거둔 이천수의 성적표는 4경기 출장에 ‘달랑’ 1골. 더욱이 사타구니 부상과 오른쪽 대퇴부 뒷근육 부상으로 경기장 안보다는 밖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이 사이 구단 안팎에선 이천수가 태업을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진위 여부야 어떻든 이천수와 차범근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결국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전력 외로 분류된 이천수는 수원 삼성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고 기쁨을 나눌 때 이방인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천수의 한 측근은 “천수도 평소 존경하고 따랐던 차 감독님 밑에서 잘해보려고 노력 많이 했다. 그러나 부상이 계속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마음은 앞서고 몸은 따라주지 않고…. 천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소문’들이다. 사생활에 대한 언급과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선수단 쪽에서도 흘러나왔다. 천수는 변명이나 설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그냥 경기장 밖에서 소속팀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이천수가 가장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감독은 울산 현대 김정남 감독이다. 스페인에서 보낸 2년여의 시간을 제외하고 2002년 입단 시부터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진출 때까지 이천수는 김정남 감독의 특별보호 아래 운동했다.
김 감독은 이천수에게 자율과 책임을 강조했다. 자유분방한 이천수를 억압하지 않았고 스타 플레이어답게 행동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가르쳤다. 그는 울산 현대 시절 해외 이적 문제로, 열애설로, 심판 욕설 파문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던 이천수에게 ‘겉으론’ 한마디도 뭐라 하지 않았다.
이천수는 김 감독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기보단 지켜보시는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아시는 분이다. 그래서 감독님 말씀에는 꼼짝 못한다”고 표현했다. 이천수가 김정남 감독 밑에서 마음껏 날개를 펼쳤다면, 수원의 차범근 감독은 ‘처음이라’ 어려웠고 부상으로 ‘밥값’을 못한다는 자책감에 스스로 겉돌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천수는 끊임없이 터지는 열애설로 화제를 모았다. 더욱이 그 열애설의 상대가 대부분 연예인이었다. 공식 커플로 인정받았던 김지유(본명 김민경)와 헤어진 뒤 곧바로 심은진과 데이트를 즐겼고 결별 후엔 신인연기자 장미인애와 사귄다는 소문이 났었다.
“나는 마음 약한 남자”
언론에 알려진 것 외에도 신인가수, 미스코리아 등이 이천수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이에 대해 이천수는 “내가 누굴 사귄다고 광고한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 상대가 연예인이라 관심도 욕도 더 많이 듣는 것 같다”면서 “내가 연예인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만난 여자가 연예인이었을 뿐이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또한 “일반 여성과는 만날 기회가 없지만 연예인들과는 이런저런 자리를 통해 얼굴을 보게 된다. 서로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처지다 보니 더 애틋해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천수는 사석에서 기자에게 그동안 나돌았던 여자 연예인과의 열애설에 대해 속내를 밝힌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만난 여자들 중에서 자기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한두 명뿐이라고 했다.
대부분 여자한테 먼저 이별을 통보받거나 여자가 또 다른 남자와 사귀어 헤어진 경우라고 말했다. 즉 사람들은 이천수가 여자들과 쉽게 만나고 헤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천수가 ‘당한’ 일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이천수는 자신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줄곧 그런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오죽했으면 ‘혀천수’ ‘오럴 천수’로 불렸을까. 이천수는 “나를 직접 보지도 않은 사람이 ‘싸가지’ 운운할 땐 정말 화가 난다”면서 “겉으로는 냉정하고 사나워 보여도 마음도 약하고 눈물도 많다. 어릴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보니 피해의식이 생겼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천수는 히딩크 감독 시절, 다소 왜소한 체격에도 지기 싫어하는 승부근성과 정교한 프리킥, 잠재력 면에서 박지성 이영표보다 인정을 받던 선수였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을 떠나 PSV 에인트호벤으로 복귀했을 때 가장 먼저 ‘러브콜’을 보낸 선수도 이천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해외 진출과 관련해서 이천수는 운이 없었고 심하게 꼬이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해외무대와 ‘화려한 결혼과 참담한 이혼’을 두 번이나 겪으며 K리그 복귀를 반복했고, 결국 ‘아버지’의 팀 수원과 재회했으나 그 만남도 6개월 만에 파경으로 끝날 전망이다.
하지만 이천수의 ‘오늘’을 ‘몰락’으로 결론짓는 건 너무 섣부른 판단이다. 항상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다시 일어서던 그였다. 악몽 같았던 2008년이 지나고 새해가 밝아온다. 새해에는 ‘풍운아’ 이천수가 아니라 축구 잘하는 이천수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