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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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여인들 누구 입김 센가

비서 겸 부인 격인 김옥, 동생 김경희, 딸 김설송 … 후계구도에 영향력 행사 소문 솔솔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8-04-02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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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의 여인들 누구 입김 센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될 경우, 김 위원장의 개인비서이자 사실상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는 김옥이 김 위원장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고 대리인으로 나설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미국 정보당국은 주시하고 있다.”

    미국 해군분석센터(CNA) 코퍼레이션의 켄 고스 해외지도자연구국장은 3월 초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스 국장의 분석을 더 들어보자.

    “세자 책봉 둘러싼 후궁·외척들 사이의 암투”

    “김옥은 김 위원장의 신변에 관한 정보를 입수해 만일의 사태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또한 김옥은 김 위원장의 개인 조직이나 ‘39호실(김 위원장의 통치자금 관리부서)’에도 깊이 연관돼 북한 정권의 자산에 일정한 영향력이나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김 위원장 유고 시의 후계구도에서 힘과 수단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CNA의 이 같은 분석에는 놓친 구석이 적지 않다고 여긴다. 북한 로열패밀리의 역학관계를 정치(精緻)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것. 김옥(43)이 누구던가.



    “김 위원장에게 거리낌 없이 반말을 하는 여성이 한 명 있었다. ‘권력 위의 권력’에 서 있던 그 여자가 바로 김옥이다.”(탈북한 전직 북한 관료)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네 번째 부인 격인 김옥은 평양 금수중학교와 금성고등중학교를 졸업했다. 이 학교는 문화예술 분야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선발, 육성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경음악단에서 활약하던 그가 김 위원장의 눈에 든 것은 1980년대 후반으로 전해진다. 그가 ‘옥이 동지’라고 불릴 만큼 위상이 높아진 때는 90년대 중반. 그는 김 위원장의 전처 김영숙(61), 성혜림(1937~2002), 고영희(1953~2004)와 달리 깜찍하고 애교 많은 스타일로 알려졌다.

    “세자 책봉을 둘러싼 왕조시대의 후궁, 외척들 사이의 암투로 북한의 후계구도를 들여다볼 수 있다.”(정보 당국의 한 관계자)

    북한의 후계구도를 로열패밀리의 권력 다툼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로열패밀리의 사생활이 평양에선 곧 정치라는 주장이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여인이 김옥, 그리고 김경희(62)와 김설송(35)이다.

    “체격 좋고 잘생긴 미남이며 똑똑한 남자다. 오죽했으면 공주님이 반했겠는가.”

    1991년 북한 외교관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에 망명한 고영환 씨는 ‘평양 25시’라는 수기에서 김경희의 마음을 사로잡은 장성택(62) 노동당 행정부장을 이렇게 평했다. 장 부장은 2004년 실각할 때까지 실질적으로 당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희는 김 위원장의 동복동생.

    그런데 김경희는 남편 장 부장을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는 여기지 않은 듯하다. 그가 “오빠나 남편이나 다 똑같다”면서 둘을 깎아내렸다는 얘기도 중국 베이징의 소식통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김경희는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부인 고영희와 마찬가지로 ‘혁명가계승계’(상자기사 참조)를 강조했는데, 남편 장 부장보다 김정철(27)을 후계로 옹위(擁衛)했다고 한다. “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온 조선을 다른 성씨에게 줄 수 없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북한 관료 출신의 한 탈북자에 따르면 고영희는 김경희를 찾아가 ‘바람난 남편’에 대한 원망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 탈북자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고영희와 김경희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4년 고영희가 사망한 뒤 후계체제를 둘러싼 김경희의 스탠스가 다소 바뀌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김설송은 본부인 김영숙이 낳은 김 위원장의 맏딸이다. 용모가 빼어난 것으로 알려진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경제 실무를 익혀왔는데, 김 위원장의 신상과 관련된 일을 다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희가 아버지가 죽은 뒤 ‘오빠의 나라’에서 경공업부장으로 일한 것처럼, 김설송도 김 위원장 사후 특정한 역할을 하리라는 관측이다. 김 위원장은 맏딸을 현지 지도에 데리고 다닐 만큼 아낀다고 한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총애한다는 그는 결혼을 했을까. 김 위원장의 사위와 매제는 후계구도에서 주목받게 마련이다. 그가 결혼을 했는지, 그의 남편이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아직 혼자라면 후계자로 지목된 ‘혁명정통승계자’(상자기사 참조)에게 시집보내는 방안도 나올 법하다. 정통과 가계의 조합이 그것이다.

    세 여인 간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은 듯

    김옥과 고영희의 관계에 대한 탈북자 및 관계자들의 증언은 엇갈린다. “김옥은 아이가 없으며 둘의 사이가 좋았다”는 증언과 “둘의 관계가 좋지 않았으며, 김옥이 낳은 김 위원장의 아들이 있다”는 증언이 그것이다. 어느 증언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고영희가 김옥을 견제했다는 정황은 적지 않다. 고영희가 사망할 때까지 김옥은 마카오에서 상당 기간 머물렀다. 김옥이 유배를 가 있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김옥과 김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37)의 마카오 체류 기간은 수년이 겹친다.

    그래서인지 실각한 장 부장이 지난해 복귀한 것과 관련해 장성택-김정남-김옥을 잇는 그룹이 힘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정남은 장 부장이 복귀한 뒤 국내외 언론에서 후계자군에 다시금 이름을 올렸는데, 그가 배제됐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김옥은 김경희 김설송과 친분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고영희가 죽은 후 김옥-김경희의 관계가 깊어졌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김경희와 베이징에 있는 김정남이 국제전화를 통해 서로의 신상과 북한 지도부의 권력 동향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동아시아의 한 정보기관이 감청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김정철을 후계자로 옹위하려던 김경희의 속마음이 정말로 바뀐 것일까. 김옥이 낳은 김 위원장의 아들은 과연 있는 것일까.

    대북 소식통들 “북한 권력승계, 궁정 암투로 봐선 안 돼”

    그러나 북한 권부를 오랫동안 들여다본 대북 소식통들은 한결같이 북한의 권력승계를 궁정 암투로 봐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소 뒷걸음질에 쥐 잡는 격’으로 나오는 로열패밀리 관련 정보와 분석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로열패밀리의 여성들이 김정남을 낙점하더라도 평양 내부가 그것을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김정남은 ‘혁명승계’라는 틀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2001년 나타난 고영희의 우상화 조짐은 확실한 승계 움직임이었으나 이후 후계 문제는 물밑으로 내려갔고, 간간이 떠오른 것은 확인되지 않는 가십거리뿐이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직계가 아닌 인사를 후계자로 낙점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럼에도 세 여인의 관계와 의중은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CNA의 분석처럼 유사시 로열패밀리에게 정보가 독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여인들 누구 입김 센가
    북한 후계구도 어떤 상황?

    김정철·정운 압축설 이후 세력 간 다툼설


    북한의 후계구도는 ‘혁명승계’라는 개념으로 봐야 하는데, 이는 ‘혁명가계승계’와 ‘혁명정통승계’로 나뉜다. 혁명가계승계는 ‘삼대(三代) 계승’을 대전제로 삼는 반면, 혁명정통승계는 정통성만 있으면 된다는 것으로 ‘가계 세습’을 저어하는 의미가 강하다.

    혁명가계승계의 대상자는 김정남(37·사진), 김정철(27), 김정운(25). 성혜림 소생인 김정남은 ‘후계자의 모친(母親)’을 강조하는 ‘어머니 조국’이라는 개념에서 밀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북자 출신의 이혼녀로 서방에 망명 시도까지 한 생모’라는 배경이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2001년 김정남이 ‘가짜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추방되고, 2002년 김정철과 김정운의 생모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가 이뤄지면서 차남 김정철이나 김정운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한 정지작업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김정철 김정운 형제로 후계구도가 압축됐으며, 김정철이 다소 앞서나간다는 평가가 한동안 ‘정설’이었지만 “고영희가 암으로 사망한(2004년 5월) 뒤 후계구도가 불투명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엔 김정남의 평양 복귀설이 나돌면서 “김정남과 이복동생들 사이 또는 그들을 등에 업은 세력 간에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는 관측이 나왔으며, 김정남이 세력화에 나선다면 북한의 내부 권력투쟁은 엄청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2005년부터 평양에서 ‘혁명가계승계’라는 표현이 사라졌다는 전언도 있다. 혁명가계승계가 대세를 이루던 시기는 2002~2003년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가 진행되던 때다. 혁명정통승계는 2003년 말 다시 고개를 들었는데,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당시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현 노동당 행정부장)이 실각한 2004년 봄의 이른바 ‘분파주의 사건’을 ‘혁명가계 vs 혁명정통’이 만든 잡음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 권력구조에서 장 행정부장의 대척점엔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있다. ‘리제강 그룹’은 후계자로 주목받는 김 위원장의 차남 김정철의 후견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북한 김정일 위원장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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