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
민주당 공천심사위원 12명 중 외부인사 7명을 직접 임명한 박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 박지원 씨, 둘째 아들 김홍업 씨는 물론 친노(親盧·친노무현) 핵심 안희정 씨 등 거물 정치인을 단칼에 공천심사에서 배제했고, 정동채 김태홍 의원 등 호남 현역의원을 물갈이해 구태 정치권에는 공포감을, 일반 시민들에겐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장 출신의 박 위원장이 이끄는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이하 공심위) 공천의 특징은 고도의 정치행위인 공천과정에 ‘정치적 고려를 일절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심위의 태도는 계백 장군의 대의멸친(大義滅親) 정신에 비유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이 주도하는 공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다. “선량한 국민은 우유 하나라도 구멍가게에 가서 훔쳐 먹으면 수년씩 징역을 살게 된다. 그러면 공직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수십억, 수천억원씩 그렇게 해도 대통령이 사면해버리니 바로 다음 선거에 나가서 당선된다. 이러니 국민은 정치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일갈한다.
박 위원장의 정치적 고려 없는 공천 방식은 ‘당선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음’과 ‘계파 구분 고려 없음’으로 요약된다. 공심위가 처음부터 당선 가능성을 숙고하지 않고 ‘국회의원 적격 여부’만 가리는 것을 목표로 삼은 덕에 민주당에선 외부의 정치적 개입이 통할 여지가 줄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현직 최고위원인 김민석 씨와 현직 사무총장인 신계륜 씨가 공천에서 배제되는 수모를 겪었지만, 손학규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박 위원장에게 전권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켜냄으로써 공심위의 권위를 높였다.
박 위원장의 공천은 전략적으로도 뛰어난 측면이 있는데, 공천 첫 단추를 ‘거물들과의 정면승부’로 택한 점이 그렇다. 박 위원장은 공천과정에서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가 던진 승부구의 핵심은 ‘고도의 정치행위를 정치적 고려 없이 해냈다’는 역설에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보다 먼저 금고형 이상 받은 사람들의 공천 신청은 아예 받아주지도 않았고, 이 때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 씨도 공천 신청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안 위원장의 공심위는 이후 지속적인 퇴행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일부 현역의원들에 대한 물갈이 공천이 이명박계의 약진과 박근혜계에 대한 숙청으로 해석되면서 정치적 갈등 양상을 심화시켜, 영남 공천의 뚜껑이 열린 뒤 박근혜계에선 오기 어린 독설이 터져나왔다. 김무성 의원은 공천 탈락 사실이 발표된 뒤 “박근혜 죽이기가 시작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 공천 갈등 확대재생산 부작용설 시달려
또한 공천 초기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공천함으로써 ‘형님 공천’이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정덕구 의원 등 당적 변경자들의 공천으로 ‘철새 공천’이라는 오명을 안았다.
안 위원장의 공심위가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 이유는 공천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한나라당 최대 기득권 지역인 영남과 서울 강남지역을 공천의 후순위로 미루면서 추진력을 확보하는 데도 실패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정치적 잣대로 해석했다는 비판도 따라붙는다.
한마디로 검사 출신의 안 위원장이 이끈 공심위는 지나친 정치적 고려로 공천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 위원장의 공심위가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든, 안 위원장의 공심위가 정치적 짜증을 가중시키든 외부인사들에 의한 공천권 행사는 정치발전이라는 대의에서 볼 때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4·9총선의 양당 공천 방식은 17대 총선 공천 방식에 비해 대의제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는 퇴보라고 볼 수 있다. 유권자 또는 당원에 의한 상향식 공천은 사라지고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 경선제도의 폐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는 극복의 대상이지 폐기 대상은 아니다. 각 정당의 공심위 심사가 늦어지면서 유권자가 후보를 검증할 시간이 줄었다는 것도 문제다. 이번 총선이 인물과 정책에 대한 비교 검토보다는 정당 선호에 따른 투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