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공연 관람이 ‘업(業)’인 필자에게 공연장은 매우 친숙한 공간이다. ‘집 같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입맛에 맞는 백반집이나 취향에 맞는 찻집 정도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만큼 스스럼없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태어나 한 번도 공연장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깜짝 놀라며 “진짜냐?”고 묻곤 한다.
어찌 보면 나의 이런 반응이야말로 상대가 깜짝 놀랄 일일 수 있다. 문화예술 분야 가운데 클래식 음악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직 소수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콘서트홀과 오페라극장도 ‘소수’를 위한 공간이다. 당연히 각 공연장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문을 두드리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 해답 가운데 하나가 최근 공연장에 개설되고 있는 문화예술 강좌다.
2000년 이후 각 지역에 대형 공연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 버금가는 문화예술 공간을 제 안방에 들여놓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은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을 투자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긍정론과 부정론이 동시에 거론됐다. 부정론의 핵심은 ‘소프트웨어의 부재’였다. 신생 공연장들이 무엇으로 무대를 채우고, 어떻게 지역민을 불러 모을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러한 부정론에 성남 고양 의정부 경기(수원) 대전 등 일부 지자체들이 특화된 기획물을 선보이며 맞서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고양 아람누리의 행보가 주목할 만하다.
공무원에서 주부까지 수강생들 각양각색
21세기 세계 공연장은 멀티콤플렉스, 즉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해 콘서트홀과 오페라극장뿐 아니라 미술관, 카페, 놀이시설까지 갖춘다. 올해 5월 개관한 고양 아람누리는 그중에서도 공연장 내 감상실을 만드는 데 정성을 쏟았다.
공연장 3층에 ‘클라라 하우스’라는 공연 감상 및 강좌 전용 공간을 만들어 아람누리의 ‘사랑방’ 구실을 하게 했는데, 유혁준 아람누리 공연기획부 차장은 “클라라 하우스는 정발산 자락의 가을 숲이 통유리로 내다보이는 가장 ‘아람다운’ 공간”이라고 말했다.
최신 오디오·비디오 시스템, 피아노를 갖춘 이 아늑한 공간에서 아람누리의 예술강좌가 펼쳐진다. 아람누리 예술강좌는 기존의 공연장 강좌에서 한발 앞서가는 시스템을 취한다. 어찌 보면 매우 ‘공격적’이다. 신생 단체로서 자신들의 브랜드를 내세우고 상품을 판매하는 홍보 마케팅 수단으로 강좌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강좌의 주 대상은 아람누리 후원자와 미래의 후원자들. 수강료는 한 달에 5만원으로 저렴한 편인데, 수익에 목적을 두지 않고 미래를 위해 일종의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은행 백화점의 VIP 고객을 대상으로 맞춤형 강좌를 여는가 하면, 인근 학교 교사를 초청해 ‘교육을 위한 교육’을 제공한다.
가장 눈에 띄는 수강생들은 바로 고양시청 ‘공무원 학생’들이다. 아람누리는 고양시장을 비롯해 시의원, 시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예술강좌를 열고 있다. 함께 일할 ‘예술 경영 파트너’의 예술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고양 아람누리가 적극적인 자세로 예술강좌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는 경우라면, 서울 예술의전당은 ‘원조’로서의 전통과 규모를 자랑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의전당 개관과 함께 시작된 ‘예술의전당 아카데미’는 1988년 서예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이후 미술 아카데미, 음악 아카데미로 확대됐다. 현재 80개가 넘는 강좌를 개설하고 있으며, 학기당 2500명 이상의 수강생을 배출한다.
사무실 밀집지역에선 회사원 위한 점심강좌도 열어
이중에서도 음악 아카데미는 등록률 95% 이상으로 예술의전당 아카데미의 중심축 구실을 하고 있다. 1999년 개설 이후 성인을 위한 순수한 형식의 강좌를 유지하며 현재 6개 반, 400명 정원으로 운영된다. 예술의전당 음악 아카데미는 그 전통과 명성에 걸맞은 강사진으로도 유명하다. 홍보 담당자는 “예술의전당 아카데미의 최대 매력은 강의 수준과 경력 면에서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강사진”이라고 말했다. 김상헌 서남준 박종호 정경영 등 현 강사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오페라 해설가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박종호. ‘공기관’에 그의 강좌를 최초로 개설하기 위해 예술의전당이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의전당 음악 아카데미의 주 수강층은 50, 60대 주부다. 이는 문화예술에 대한 주부들의 욕구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고, 평범한 직장인들이 여가를 위해 평일에 따로 시간을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을 내는 만큼 얻는 것은 많다. 박종호 씨의 오페라 강좌를 듣고 있는 한 20대 회사원은 “오페라는 종합예술인 만큼 정복하기 어려운 산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강좌를 듣고 보니 거기에는 우리가 아는 신화 설화 동화적 요소가 많아 무척 흥미로웠고, 음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도 수준에 맞춰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과 더불어 국내 공연장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세종문화회관도 6월 아카데미를 개관했다. 세종예술아카데미의 개관은 광화문의 지역 특성을 고려할 때 반가운 일이다. 세종예술아카데미 역시 예술의전당과 마찬가지로 저녁시간대 강좌를 개설하고 있지만, 사무실이 밀집한 광화문의 지역 특성을 고려한 점심시간 강좌도 인기다. 클래식, 뮤지컬, 미술사, 오페라 관련 5개 강좌가 12시부터 1시간 동안 이어지며 일부 수업에서는 11시40분부터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제공한다.
최근 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기업의 메세나(Mecenat)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직장인들이 클래식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소외계층에 대한 문화예술활동 지원과 특정 공연을 후원하고 그 대가로 자사 임직원을 공연에 초대해 문화예술 소양을 길러주는 경우가 그것이다. 따라서 세종예술아카데미 등에 대한 직장인들의 관심과 참여가 점차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예술아카데미 홍보 담당자는 “실제로 회계사 변호사 금융권 종사자 등 지역 특성이 반영된 수강층이 생겨났고, 모 제과기업은 회장 이하 사장단과 임직원이 단체로 강좌를 듣는다”고 전했다.
이런 공연장 예술강좌는 공연장이라는 ‘밤의 공간’을 ‘낮의 공간’으로 확대해 자연스럽게 대중의 접근을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한 공연 관계자는 “앞으로는 신입사원이 세종문화회관 강의실에서 같이 클래식 수업을 듣는 회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풍경도 낯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나의 이런 반응이야말로 상대가 깜짝 놀랄 일일 수 있다. 문화예술 분야 가운데 클래식 음악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직 소수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콘서트홀과 오페라극장도 ‘소수’를 위한 공간이다. 당연히 각 공연장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문을 두드리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 해답 가운데 하나가 최근 공연장에 개설되고 있는 문화예술 강좌다.
2000년 이후 각 지역에 대형 공연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 버금가는 문화예술 공간을 제 안방에 들여놓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은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을 투자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긍정론과 부정론이 동시에 거론됐다. 부정론의 핵심은 ‘소프트웨어의 부재’였다. 신생 공연장들이 무엇으로 무대를 채우고, 어떻게 지역민을 불러 모을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러한 부정론에 성남 고양 의정부 경기(수원) 대전 등 일부 지자체들이 특화된 기획물을 선보이며 맞서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고양 아람누리의 행보가 주목할 만하다.
공무원에서 주부까지 수강생들 각양각색
21세기 세계 공연장은 멀티콤플렉스, 즉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해 콘서트홀과 오페라극장뿐 아니라 미술관, 카페, 놀이시설까지 갖춘다. 올해 5월 개관한 고양 아람누리는 그중에서도 공연장 내 감상실을 만드는 데 정성을 쏟았다.
공연장 3층에 ‘클라라 하우스’라는 공연 감상 및 강좌 전용 공간을 만들어 아람누리의 ‘사랑방’ 구실을 하게 했는데, 유혁준 아람누리 공연기획부 차장은 “클라라 하우스는 정발산 자락의 가을 숲이 통유리로 내다보이는 가장 ‘아람다운’ 공간”이라고 말했다.
최신 오디오·비디오 시스템, 피아노를 갖춘 이 아늑한 공간에서 아람누리의 예술강좌가 펼쳐진다. 아람누리 예술강좌는 기존의 공연장 강좌에서 한발 앞서가는 시스템을 취한다. 어찌 보면 매우 ‘공격적’이다. 신생 단체로서 자신들의 브랜드를 내세우고 상품을 판매하는 홍보 마케팅 수단으로 강좌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강좌의 주 대상은 아람누리 후원자와 미래의 후원자들. 수강료는 한 달에 5만원으로 저렴한 편인데, 수익에 목적을 두지 않고 미래를 위해 일종의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은행 백화점의 VIP 고객을 대상으로 맞춤형 강좌를 여는가 하면, 인근 학교 교사를 초청해 ‘교육을 위한 교육’을 제공한다.
가장 눈에 띄는 수강생들은 바로 고양시청 ‘공무원 학생’들이다. 아람누리는 고양시장을 비롯해 시의원, 시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예술강좌를 열고 있다. 함께 일할 ‘예술 경영 파트너’의 예술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고양 아람누리가 적극적인 자세로 예술강좌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는 경우라면, 서울 예술의전당은 ‘원조’로서의 전통과 규모를 자랑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의전당 개관과 함께 시작된 ‘예술의전당 아카데미’는 1988년 서예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이후 미술 아카데미, 음악 아카데미로 확대됐다. 현재 80개가 넘는 강좌를 개설하고 있으며, 학기당 2500명 이상의 수강생을 배출한다.
사무실 밀집지역에선 회사원 위한 점심강좌도 열어
클래식 애호가들이 고양 아람누리 ‘클라라 하우스’에서 클래식 강의를 듣고 있다.
예술의전당 음악 아카데미의 주 수강층은 50, 60대 주부다. 이는 문화예술에 대한 주부들의 욕구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고, 평범한 직장인들이 여가를 위해 평일에 따로 시간을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을 내는 만큼 얻는 것은 많다. 박종호 씨의 오페라 강좌를 듣고 있는 한 20대 회사원은 “오페라는 종합예술인 만큼 정복하기 어려운 산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강좌를 듣고 보니 거기에는 우리가 아는 신화 설화 동화적 요소가 많아 무척 흥미로웠고, 음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도 수준에 맞춰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과 더불어 국내 공연장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세종문화회관도 6월 아카데미를 개관했다. 세종예술아카데미의 개관은 광화문의 지역 특성을 고려할 때 반가운 일이다. 세종예술아카데미 역시 예술의전당과 마찬가지로 저녁시간대 강좌를 개설하고 있지만, 사무실이 밀집한 광화문의 지역 특성을 고려한 점심시간 강좌도 인기다. 클래식, 뮤지컬, 미술사, 오페라 관련 5개 강좌가 12시부터 1시간 동안 이어지며 일부 수업에서는 11시40분부터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제공한다.
최근 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기업의 메세나(Mecenat)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직장인들이 클래식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소외계층에 대한 문화예술활동 지원과 특정 공연을 후원하고 그 대가로 자사 임직원을 공연에 초대해 문화예술 소양을 길러주는 경우가 그것이다. 따라서 세종예술아카데미 등에 대한 직장인들의 관심과 참여가 점차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예술아카데미 홍보 담당자는 “실제로 회계사 변호사 금융권 종사자 등 지역 특성이 반영된 수강층이 생겨났고, 모 제과기업은 회장 이하 사장단과 임직원이 단체로 강좌를 듣는다”고 전했다.
이런 공연장 예술강좌는 공연장이라는 ‘밤의 공간’을 ‘낮의 공간’으로 확대해 자연스럽게 대중의 접근을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한 공연 관계자는 “앞으로는 신입사원이 세종문화회관 강의실에서 같이 클래식 수업을 듣는 회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풍경도 낯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