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장기나 골수, 정자와 난자의 이타적 기증은 <br>쉽지 않다.
그런데 공청회 과정에서 난자 기증자의 자격을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여성계 일부에서 제기됐다. 정자 기증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20세 이상 남성이면 가능한 데 반해 여성의 경우 출산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이며, 비록 출산 경험이 없더라도 자유로운 의사결정으로 난자를 기증하려 한다면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 그 밖에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 한 여성 기증자가 자발적으로 결정한 난자 기증 의사를 부정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승인 거치면 특정인 지정 난자 기증
기본적으로 생식세포인 정자와 난자 구입에 금전적 대가를 지급하거나 대리모의 자궁을 빌려 출산하기 위해 금전적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기증자의 가치는 물론 인간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다. 이런 관점은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취급돼야 한다는 기본 원리에 근거한다. 만약 난자 제공을 무제한 시장원리에만 맡긴다면 여러 가지 폐해가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면 경제적으로 궁핍한 여성은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몸을 상품화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불임부부의 경우 부유층은 난자나 대리모를 시장거래를 통해 제공받을 수 있겠지만 가난한 계층은 그렇지 못한 불공평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불임부부의 딱한 사정을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알선조직이 암약할 수도 있다. ‘주간동아’ 보도대로 나라를 가로지르는 암시장이 벌써부터 성행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는 연구용 난자를 돈으로 구입한 황우석 연구팀의 사태를 겪은 뒤에야 난자 매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장기매매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다가 부작용이 극에 이르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을 만든 배경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포인트는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 그 밖에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하지 않고도 난자 기증이나 대리모에 대한 자발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지 여부다. 장기의 경우는 이를 법률로 해결하고 있다. 법률은 ‘장기 등의 기증자를 다른 사람의 장기 등의 기능 회복을 위해 대가 없이 자신의 특정 장기 등을 제공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으며, 장기 기증자의 의사가 자발적이라면 ‘이타적 기증’을 허용하고 있다. 장기 기증자가 살아 있는 사람인 경우엔 미리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의 장(長)에게서 승인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기증자 스스로 ‘이식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다’. 가끔 신문, 방송을 통해 가족이나 이웃 간에 장기 일부를 기증해 이식수술에 성공했다는 미담을 접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규정 덕분이다.
앞으로 제정될 법률안에 따르면 난자 기증도 장기 기증과 기본 틀은 동일하다. 먼저 자신의 생식세포를 채취 또는 기증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은 전적으로 기증자 본인이 갖는다. 원칙적으로 난자나 정자 기증자는 이타적 기증 형태로 특정인을 지정해 기증할 수 없지만, 기증자가 불임부부 또는 그의 친족으로 기증의 자발성 여부, 가족관계에 관한 문제 가능성 등을 기관위원회 심의를 거쳐 승인받았다면 ‘특정인을 지정해 기증할 수 있다’.
서두에 제기한 난자 기증 조건에 관한 논쟁으로 돌아가보자. 당초 난자 기증자를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 한다는 전제조건을 둔 까닭은 다음과 같다. 난자의 채취는 매우 고통스런 과정을 동반한다. 과배란 유도를 위해 투여한 호르몬제제의 부작용으로 난소과자극증후군이 초래될 수 있고, 심하면 부종이나 복수, 혈액응고 장애, 간부전 및 성인성호흡곤란증후군이 발생할 수도 있다. 중증인 경우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 이런 합병증은 발생률이 낮기는 하지만, 발생할 경우 골반염으로 발전해 이후 난자 기증자가 불임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만약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과 위험으로터 기증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특히 미혼여성의 경우 더욱 배려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 논쟁의 결과는 절충적인 방법으로 해결됐다. 난자 기증자가 출산 경험이 없는 경우엔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 승인을 받는다는 단서를 포함시켜 기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선의의 기증자 의사결정 배려와 존중 필요
우리 사회에서 장기나 골수, 정자와 난자의 이타적 기증은 쉽지 않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어야 하고 장기의 경우 16세 미만이거나 임부, 해산일로부터 3개월이 경과하지 않았거나 정신질환자, 정신지체인은 제한되며, 마약이나 대마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에 중독된 자도 기증자가 될 수 없다. 또한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시술 의사에게 장기적출 수술에 대한 내용과 시술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 향후 치료계획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동의 여부를 표시해야 한다. 난자는 특히 기증자와 수증자가 고용관계나 친족관계인 경우, 그 밖에 종속적이거나 강압적인 관계로 의심되는 경우엔 기증을 금지하고 있다. 친지 등에게 ‘지정 기증’하는 경우엔 정부기관이나 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의 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런 제약 요건은 결국 기증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를 위한 완충장치 구실을 한다. 이런 완충장치가 많이 요구될수록 그 행위 자체에 윤리적 논쟁과 안전상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사전에 대비하고 다시금 점검하는 잣대가 생명윤리 규범이며, 실천규범으로서 보호와 배려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타적 기증자들의 선의의 의사결정을 우리 사회가 수용하고 존중해야 함은 물론이다.
예를 들면 근로자가 이식대상자나 수증자를 선정하지 않고 장기나 생식세포를 기증하는 경우, 신체검사 또는 적출에 소요되는 입원기간이나 채출에 소요되는 내원일에 대해 공무원의 소속기관 장은 병가로 처리해야 하며, 그 외 근로자의 사용자는 유급휴가로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상업적 매매가 아닌 이타적 기증인 경우 사회가 이를 수용하고 복지 차원에서 지원도 고려한다는 의미다.
완충장치의 고려가 없는 이타적 기증이 있을 수 없듯, 윤리를 바탕으로 한 이타적 기증에는 그들을 위한 배려와 존중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우리도 윤리를 바탕으로 한 이타의 바다로 빠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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