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로이’
하지만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신통기’ 저자)가 자기보다 400년 전, 그러니까 기원전 9세기에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은 19세기 말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해 기원전 13세기경의 트로이 전쟁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했고, 호메로스의 시들은 기원전 7세기 이전의 작품으로 귀족들의 구전문학이라는 데는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오늘의 관점에서 흥미를 끄는 건 호메로스가 지금의 터키 서부 해안인 이오니아 지방 사람이고 그의 작품이 이오니아 방언으로 쓰인 점이다. 당시에는 이오니아가 그리스 식민지였고 수많은 그리스인이 이주해 살았다. 철학사에서도 기원전 6세기경의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그리고 ‘흐르는 물에 한 번 담근 발을 두 번 다시 담글 수 없다’는 말로 유명한 헤라클레이토스 등 이른바 그리스 최고(最古)의 철학학파인 밀레투스학파도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인 식민도시 밀레투스에서 생겼다.
그런데 이오니아는 오늘날 터키 영토다. 그렇다면 ‘현재 영토 안에 있는 모든 과거는 오늘날의 국가 것’이라는 ‘영토주권’에 따라 호메로스와 밀레투스학파는 터키의 문화유산일까? 만약 터키가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를 답습해 그것을 역사의 진리인 양 받아들인다고 가정해보자. 터키는 호메로스와 밀레투스학파가 자기네 것이라는 ‘터키 버전 동북공정’을 계획할지도 모를 일이다. 키프로스 섬을 두 동강 낸 터키와 그리스는 그러지 않아도 앙숙지간인데, 싸움이 ‘과거 역사와 지적 영토’에까지 확전될 수도 있는 셈이다.
‘일리아드’는 서양이 가진 하나의 서사시
하지만 미국이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를 배워 아메리칸 인디언 역사를 미국사라고 하면서 200년 미국 역사를 수천 년 전으로 소급하는, 즉 미국 버전 ‘하상주 단대공정(하나라와 은나라가 실재 역사라는 것)’ 같은 역사 프로젝트가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는 외신에 뜬 적이 없고, 호메로스와 밀레투스학파 또한 ‘역사주권’에 따라 헬레니즘 문명으로 인정하는 게 인류의 보편적 상식이다.
9년 동안의 일을 단 50일로, 20년 동안의 일을 40일로 각각 압축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중 어느 것이 더 뛰어난가라는 논쟁도 흥미롭다. 스탕달 팬들끼리 ‘적(赤)파’와 ‘수도원파’ 로 나뉘어 전자는 ‘적과 흑’, 후자는 ‘파르므의 수도원’을 최고로 꼽는 것처럼 말이다. ‘서양문학의 비조(鼻祖)’인 호메로스도 양대 팬덤(fandom·마니아 현상)을 거느리고 있다. 오디세이 팬들은 화장품 ‘오디세이’나 오디세이의 이름을 딴 수많은 가게들, 베스트셀러인 ‘미학오디세이’와 ‘과학오디세이’, 텔레비전 프로그램 ‘클래식 오디세이’,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미국의 화성탐사선 ‘오디세이’ 등을 거론할 것이고, 반면 일리아드 팬들은 영화 ‘트로이’가 영화 ‘율리시스’(오디세우스의 로마식 이름)보다 잘 팔리지 않았는가라고 반격할 것이다. 그러면 오디세이 팬들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20세기 영문학을 이끌지 않았느냐고 반박하고, 논쟁은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다.
동양인들이 유비, 조조, 손권, 제갈공명, 관우, 조자룡, 장비, 방통 등 ‘삼국지’ 인물들을 놓고 호불호(好不好) 따지기를 즐기듯, 서양인들은 호메로스의 주인공들을 놓고 그렇다. 일찍이 헤겔은 ‘역사철학 강의’에서 “중세 이후 아킬레스 같은 비극적 영웅은 죽고 단지 오디세우스 같은 교활한 인간의 간지만이 문명을 이끌고 간다”고 푸념했다. 전리품을 놓고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불화를 일으킨 ‘일리아드의 남자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싸움을 파업하지만,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 왕자’ 헥토르에게 죽자 ‘우정’을 위해 다시 출정, 전세를 역전시킨다. 결국 파리스의 화살에 ‘아킬레우스의 건’을 맞고 죽었지만 그는 이타적이기 때문에 이상적인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으려고 여자들 사이에서 여장한 채 숨어 있는 아킬레우스를 칼 한 자루의 선물로 찾아내고, 거인족인 폴리페모스의 외눈을 찌르고 동굴을 탈출하면서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자(nobody)’로 소개할 만큼 영악한 인간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서양에서는 위대한 영웅을 아킬레우스라고 부른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격퇴한 웰링턴 공작이 바로 ‘영국의 아킬레우스’라 불렸고, 권모술수에 능한 이를 흔히 오디세우스라고 한다.
후자가 전적으로 부정적인 뉘앙스는 아니지만, 시몬 베유는 ‘일리아드’를 ‘서양이 가진 단 하나의 진짜 서사시’라고 칭송하고 ‘오디세이’는 ‘일리아드와 동양의 시들을 모방한 작품’일 뿐이라고 폄하한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들인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자신의 아들인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하는 비참함, 헥토르의 시신을 학대한 아킬레우스 또한 화살 하나에 죽는 허망함, 맞지만 누구도 믿지 않는 카산드라의 예언, 트로이 목마라는 속임수에 무너진 트로이의 멸망 등이 슬프고도 냉혹하게 그려지는 일리아드의 비극적 전통에 빚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타당한 말이다. 또한 트로이 멸망 이후 트로이 왕자인 아이네이스가 피난민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가서 로마를 창건했기 때문에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다시 말해 그리스가 멸망시킨 트로이가 ‘다시 로마로 살아나’ 종국에는 그리스 로마 문명(헬레니즘)이 탄생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생길 수 있었던 셈이다.
‘오디세이’는 희곡의 원조 … 중세 기사도 문학에도 큰 영향
하지만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나 에우리피데스의 사티로스극(비극이 희극적으로 끝나는 연극) ‘키클롭스’에서 알 수 있듯 희곡의 원조격인 작품이고, 오디세우스의 모험과 귀향 모티프가 없었더라면 중세의 기사도 문학이나 엘리자베스 시대의 낭만문학, 스페인의 위대한 풍자문학가 세르반테스가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조차 프랑스 동료에게 오디세우스의 노래를 가르치려 했다. 프랑스 비평가 모리스 블랑쇼는 오디세우스가 돛대에 매달려 세이렌의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음악을 듣는 행위처럼 ‘문학은 죽음을 통과하는 글쓰기’라고 할 정도로 오디세이를 높이 평가했다.
두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재해석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서양에선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을 ‘페넬로페의 베짜기(web of Penelope)’라고 한다. 20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 남편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는 이타카 왕국의 왕비 페넬로페가 20년 동안 청혼자 108명의 구애를 뿌리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바로 ‘낮에 짠 옷을 밤에 풀어 날마다 다시 베짜기’를 한 데서 유래한다. 한마디로 정숙한 춘향이다.
하지만 ‘일리아드’의 여주인공 헬레네는 남편 메넬라오스(스파르타 왕)를 배반하고 연하남인 트로이 왕자 파리스를 따라 도망가고 만다. 트로이 전쟁의 불씨였다. 그런데 파리스가 죽고 트로이도 멸망하자 그녀는 다시 메넬라오스 품으로 철면피처럼 돌아온다. 과연 누가 더 현대적인 여성이고, 페미니즘 시각에 더 어울리는가.
페넬로페가 과연 자발적 현모양처였고, 헬레네는 결국 미를 숭배하는 남성들의 전쟁 구실이었다는 관점에서 둘 다 고대 그리스 가부장 사회의 희생양으로도 볼 수 있다. 이렇듯 고전을 비교분석해 보는 것은 즐거운 상상이 사고를 확장하는 생각의 사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