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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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BBK(투자운용사) X파일’ 진실의 문 열릴까

김경준 씨와 동업 의혹 수그러들지 않아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7-06-07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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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BBK(투자운용사) X파일’ 진실의 문 열릴까

    본지가 입수한 BBK 정관과 투자운용전문인력 현황보고 문건.

    그동안 여러 언론사가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검증에 나섰다. 그때마다 등장한 사람이 한때 이 전 시장과 동업했던 김경준 씨. 이 전 시장이 수백억원대의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미국으로 도피한 김씨와 어떻게 해서 동업을 시작했는지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이 전 시장과 김씨는 어떤 관계일까. 이 같은 의문을 풀 수 있는 결정적인 열쇠가 바로 김씨가 대표이사로 있었던 투자운용회사 BBK와 이 전 시장의 관계다.

    이 전 시장은 당초 BBK를 자신이 만든 회사라고 소개했다. 다음은 이 전 시장이 2000년 10월 국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BBK와의 관계에 대해 밝힌 내용이다

    2000년 “내가 만든 회사” 2001년 “관계없다”

    “생소한 증권업 투신을 통해 첨단 기법의 증권 업무를 보여줄 작정이다. 올 초 새로운 금융상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LK이뱅크와 자산관리회사 BBK를 창업한 바 있다. BBK를 통해 이미 외국인 큰손들을 확보해둔 상태다.”



    당시 이 전 시장은 잠시 정치권을 떠나 금융업을 통한 재기를 모색 중이었다. 그러나 다음해인 2001년 4월 BBK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대표이사 해임권고와 투자자문업 등록취소라는 중징계 결정을 받은 이후 이 전 시장의 태도는 급변했다.

    BBK라는 회사는 자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김씨 혼자 운영한 회사라는 것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전 시장과 측근의 일관된 주장이다. 앞서 이 전 시장이 BBK를 창업했다는 인터뷰 기사는 ‘오보’였다는 것.

    사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에 따르면, 이 전 시장은 BBK로부터 피해를 당한 것처럼 보였다. 이 전 시장의 친형 상은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다스(구 대부기공)가 장기투자일임계약을 체결해 투자한 190억원 중 140억원을 떼인 곳이 바로 BBK인 것. 다스가 미국에서 김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유도 이 돈을 되돌려받기 위해서다.

    또 이 전 시장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금융지주회사 설립계획 자체를 백지화해야 했다. BBK가 MAF 펀드 운용과정에서 투자회사에 위·변조한 펀드운용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BBK는 이 전 시장과 아무 관계 없는, 오히려 피해만 준 회사일까. 올해 초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BBK의 정관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 보인다. 정관에 이 전 시장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는 것.

    정관 제30조 2항을 보면 “과반수의 결의에는 발기인인 이명박 및 김경준이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이명박 및 김경준이 지명한 이사가 의결권을 행사하여야 한다”고 명기돼 있다. 이는 이 전 시장이나 김씨의 의결권 행사 없이는 이사회 결의가 무효라는 제한조항이다.

    만일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자신과 전혀 무관한 회사’라는 이 전 시장의 주장은 부정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이 전 시장이 BBK의 자금운용 과정에도 관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 해명에 나선 사람은 서울메트로 김백준 감사다. 김 감사는 정관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 감사의 말이다.

    “지난해 5월28일 미국의(이 전 시장 민사소송사건) 담당 변호사로부터 이상한 정관이 접수됐다는 연락이 왔다. 김경준 쪽에서 제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루트를 통해 금감원에 접수된 BBK 정관을 확보할 수 있었다. 비교해보니 금감원에 제출된 정관에는 이 전 시장의 이름이 들어간 내용이 없었다. 그쪽(김경준)에서 위조한 것이다.”

    이명박 ‘BBK(투자운용사) X파일’ 진실의 문 열릴까

    이뱅크코리아(e-Bank Korea) 안내책자에 소개된 임원 명단과 BBK에 대한 설명문.

    실제로 김 감사가 제시한 정관에는 이 전 시장의 이름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본지가 입수했던 정관은 다스가 미국 법원을 통해 김씨 측 변호사에게 제출한 자료였다.

    현재 다스와 이 전 시장의 변론을 담당하는 로펌은 ‘Lim, Ruger · Kim, LLP’로 동일한 곳이다. 다스가 제출한 자료를 이 전 시장 측이 위조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같은 로펌에서 제출하고 위조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얼마 후 김 감사를 대신해 미국에서 이 전 시장과 다스의 사건을 맡고 있는 리자 양 변호사가 답변에 나섰다. 리자 양 변호사는 “김백준 씨가 조금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이 전 시장의 이름이 들어간 정관은 소송이 시작한 뒤에 우리 측에서 별도로 입수한 자료 중 하나다. 김경준 씨가 옵셔널벤처스 사무실에 남기고 간 개인 서류 중 일부로 보면 정확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서류가 위조된 것이라고 믿는다.”

    ‘주간동아’ 입수 정관엔 발기인으로 이름 올라

    당시 본지는 김 감사와 리자 양 변호사 측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 보도를 보류했다. 김씨가 위조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그런데 최근 본지는 국회를 통해 BBK가 2000년 5월12일 금감원에 정식으로 제출한 개정 정관을 입수했다. 이 자료는 금감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다. 법무법인의 공증까지 받아 금감원에 제출된 이 정관은 확인 결과, 당초 본지가 입수한 것과 내용이 동일했다. 정관 30조에 이 전 시장의 이름이 명기된 조항이 포함돼 있었던 것.

    특히 주목되는 것은, 개정 정관이 접수된 시기가 이 전 시장이 김씨와 동업을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라는 점이다.

    김 감사는 이에 대해 BBK 설립 시기를 들어 반박했다. BBK가 만들어진 것은 1999년 4월이다. 이 전 시장은 이때 발기인으로 참여한 적이 없기 때문에 개정 정관에 발기인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게 김 감사의 주장이다. 또 정관이 바뀌려면 주주총회를 거쳐야 하는데 관련 서류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정상적인 정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감사는 “(BBK 정관 개정을 위한) 주총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알지도 못한다. 그 주총이 적법하게 이뤄졌다면 제대로 된 요식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확인해본 결과는 그게 안 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본지는 또 정관과 함께 입수한 2000년 5월29일 BBK가 금감원에 제출한 ‘투자운용전문인력변경 현황 보고’ 문건을 통해 이 전 시장의 법정대리인인 김 감사가 투자운용전문인력 명단에 포함됐던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이 문건에는 김 감사의 경력증명서와 경력퇴직증명서 사본까지 첨부돼 있다. 본인 모르게 위·변조가 불가능한 자료들이다.

    김 감사는 이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당시 김경준이 내 인감이나 이력서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BBK는 다스 등으로부터 투자받은 돈 수백억원을 운용한 회사다. 만일 이 전 시장이 BBK의 정관 내용처럼 실제 회사 운영에 관여했다면 다스가 입은 140억원의 피해에 대해 자유스러울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진실을 호도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도덕적 책임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이 전 시장 측의 좀더 근거 있는 해명이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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