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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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물 취급 마라, 나 아직 안 죽었다”

이대진·염종석·문동환 등 왕년의 에이스들 화려한 부활투

  •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입력2007-05-16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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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7일 LG와 KIA의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구장. 1회 초 KIA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선발투수가 마운드에 오르자 3루 측 원정 스탠드에서 노란 종이비행기 3000개가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에이스의 귀환을 반기는 팬들의 마음이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대진(33). 팬들은 2004년 4월 이후 근 3년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마운드로 돌아온 이대진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는 1998년 타자 10명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울 때만큼의 강속구를 뿌리진 못했다. 그러나 그에겐 노련미와 원숙미가 흘러넘쳤다. 연륜과 꾸준한 자기계발로 다듬은 피칭이 은은하게 빛을 발했다.

    6이닝 3피안타 2볼넷 3탈삼진 무실점의 완벽 투구. 그가 마운드를 내려올 땐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모든 팬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이날 그는 2003년 5월11일 SK와의 경기 후 4년 만에 승리 투수가 됐다.

    부상으로 인한 고통, 퇴물 취급 수모 ‘극복’



    이대진을 비롯해 염종석(34), 문동환(35) 등 한때 한국 프로야구 무대를 호령했던 ‘왕년의 에이스’들이 부활하고 있다. 부상이라는 큰 시련을 이겨내고 돌아온 이들은 올드 팬의 향수를 자극한다. 젊은 세대에겐 시련에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선사한다.

    이대진은 1999년 처음 어깨 통증을 느낀 뒤 수술대에만 세 번 올랐다. “단 한 번만이라도 아픔 없이 공을 던지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재기에 성공하는 듯하다가 무너지기를 여러 번. 투구의 고통을 잊기 위해 2002년 시즌 중반에는 타자로 잠시 외도하기도 했다. 그의 얼굴에는 한동안 그늘이 가시지 않았다. 그는 “정말 힘들었던 것은 공을 던질 수 없다는 사실, 마운드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말 결혼한 뒤 신기하게도 통증이 사라졌다. 오랜만에 재활이 아닌 전지훈련에도 참가했다. 이제야 비로소 아픔 없이 공을 던지게 된 그는 4월8일 현재 6경기에 선발 등판해 2승3패에 평균자책 4.09점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승패를 떠나 마운드에 서 있는 자체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호남에 이대진이 있다면 영남에는 롯데 염종석이 있다. 염종석의 벗은 상체를 보면 팔꿈치 주변으로 긴 칼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다.

    1992년 17승(9패)을 거두며 신인왕에 오른 염종석도 무리한 투구 후유증으로 세 차례나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93년 10승을 거둔 뒤 지난해까지 한 번도 10승 고지에 오르지 못한 데다, 팔꿈치 통증이 도질까봐 항상 투구수를 조절해서 던져야 했다.

    그러나 올해 프로 16년째를 맞는 그는 다시 15년 전으로 돌아간 듯놀라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0km대 초반에 그치지만, 선동렬 삼성 감독 이후 최고라는 그의 슬라이더는 여전히 날카롭게 타자들에게 파고든다. 5월11일 현재 네 차례 선발로 나와 3승1패에 평균자책 1.64점의 특급 피칭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14년 만의 10승 고지 등정도 가능할 듯하다.

    30대 중반 나이에 전성기 못지않은 활약을 보이기로는 한화 문동환이 으뜸이다. 그는 2000년 이후 고질적인 팔꿈치 부상에 시달리며 ‘이제 끝났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팔꿈치에 칼을 댄 것만 세 차례.

    롯데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던 그는 2003년 시즌 후 동네북처럼 이리저리 버림받다 삼각 트레이드 끝에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2004년 4승으로 재기에 시동을 건 그는 2005년 10승에 이어 지난해에는 16승으로 다승 2위에 오르면서 완벽하게 전성기 모습을 되찾았다.

    92년 신인왕 염종석 3승1패에 방어율 1.64

    올해도 그의 활약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5월2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9이닝 7안타 2볼넷 4탈삼진 2실점 완투승을 거뒀다. 똑같이 3승을 거둔 후배 투수 류현진(20)과 함께 8개 구단 최강의 ‘원투펀치’를 형성 중이다.

    이들의 노력이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재활이라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재활은 모든 훈련 중 가장 힘들다. 공을 던질 수 있을 때까지 아령이나 기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단순 동작을 무수히 반복해야 한다. 공을 던지기 시작해 거리를 점점 늘려가다 통증이 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실전에서 공을 뿌리다 통증을 느껴도 원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들 왕년의 에이스는 모두 세 번씩이나 똑같은 과정을 이겨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결혼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 뒤 재활의 긴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그리고 팬들을 위해서도 이제 더는 아프지 말고 오랫동안 공을 던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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