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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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몰라도 경쟁논리 알아요

88년생 새내기 이념보다 실리 추구 … 횡적 소통에 강해 다양성 넘치는 사회 이끌 것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7-05-16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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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철 몰라도 경쟁논리 알아요

    연세대 교정을 걷고 있는 07학번 새내기들. 왼쪽부터 김희재 김혜선 서정혁 서주연 윤수영.

    # 1987년 5월

    4·13 호헌조치와 6·29 민주화선언 사이의 계절. 대학생들은 휴업을 결의했고 축제 중에도 시위를 벌였다. “전국에 걸쳐 경찰의 갑호비상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5·17을 전후한 대학가 종교계 재야단체 등의 각종 시위 및 집회가 ‘호헌철폐’ ‘독재타도’ 등의 정치구호를 전면에 내세우며 잇따라 ‘어수선한 5월’이 계속되고 있다.”(‘동아일보’ 1987년 5월18일)

    # 1997년 5월

    ‘연대사태’가 벌어진 이듬해인 1997년은 학생운동에 대한 대학생들의 태도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시작한 때다. 연세대생 2명 중 1명이 총학생회의 한국대학총학생연합(이하 한총련) 탈퇴를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뉴스가 보도된 5월의 마지막 날, 한총련 소속 대학생 1만2000여 명은 경찰의 원천봉쇄에 맞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2007년 5월



    연세대 총학생회는 ‘한총련 가입 시 학생들에게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학생회칙 개정안에 대한 투표를 실시했지만, 투표율 저조로 무산되고 말았다. 과반수 투표에 투표자 과반수 찬성이 필요한데, 투표율은 고작 26.7%에 그쳤다.

    6월 민주항쟁 20주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학 캠퍼스를 가득 메웠던 구호 소리와 최루탄 냄새를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현재 대학 캠퍼스의 주인공은 화염병을 든 386세대도, 개성 넘치는 X세대도 아니다. P세대(Pragmatic Generation). 40년간 한국 대학생을 연구해온 최평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21세기 대학생들을 이념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실용세대라고 정의한다. 과연 P세대란 어떤 인종일까.

    올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은 한국 경제가 비상했던 1988년에 태어났다. 이들은 88서울올림픽을 책에서만 봤고, ‘박종철’에 대해선 고등학교 선택교과목인 ‘근현대사’에서만 접한 세대다. 초등학생 때부터 e메일을 즐겨 사용했고,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하지 않는 친구가 없다. 또한 초등학생 때 갑자기 닥친 외환위기로 실직한 아빠를 지켜봤고, 엄마와 함께 금모으기 운동에 참가한 경험이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 있다. 지금의 30, 40대가 학교에서 반공 포스터를 그리며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각했다면, 이들은 중학생이던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학원 수업을 ‘제끼고’ 거리로 뛰쳐나가 ‘대~한민국’을 외치며 조국을 체감했다.

    “록밴드 동아리랑 국제정치학회에 들어갔어요. 강의가 다 끝나면 할 일이 없거든요. 학부제라서 이런 활동을 안 하면 사람 사귀기가 어려워요.”(성균관대 사회과학부 1학년 문선미 양)

    사람 사귀기 위해 동아리 가입 그러나 ‘수업 우선’

    386세대가 선배의 권유로 동아리에 가입해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했다면, 07학번들은 사람을 사귀기 위해 동아리에 가입한다. 인기 있는 동아리는 록밴드나 댄스 동아리. 그리고 각종 공모전에 참가하거나 경영컨설팅·마케팅·영어 등을 공부하는,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가 인기다.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회원을 선발한다는 연세대 경영컨설팅 동아리 YMCG는 항상 문전성시여서, 심지어 ‘재수’를 하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X세대에겐 동아리 활동 때문에 강의를 빼먹는 일이 일종의 ‘특권’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강의 우선, 동아리 나중’이 철저하다.

    박종철 몰라도 경쟁논리 알아요
    “1년에 두 번 학내 공연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초등학생들에게 풍물을 가르쳐요. 하지만 강의를 빼먹으면서까지 활동하진 않아요. 조모임과 시간이 겹쳐 연습에 빠지는 건 이해하는 분위기예요.”(이화여대 풍물동아리 ‘액맥이’ 패장 유은혜 양)

    요즘 대학생들은 대학생활 내내 학점과 취업 준비에 매달린다. 캠퍼스에서는 ‘고4(고등학교 4학년)’란 신조어가 유행인데, 학부제에서 전공 배정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는 대학 1학년생들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미국 사이판 이민자로 연세대에 유학 온 김혜선 양(인문계열 07학번)은 “다들 열심히 공부하니까 나도 그렇게 한다. 고등학교 시절과 비교하면 3배쯤 더 공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고4 현상과 관련된 07학번들의 고백들.

    “‘족보’나 각종 학점 관련 정보를 잘 공유하지 않는다.”

    “리포트를 무척 잘 써내니까 어떤 교수님은 100점도 모자라다며 100점 플러스를 주셨다.”

    “조모임 과제를 좀 부실하게 해온 친구가 있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이 교수님한테 ‘누구 때문에 내용이 부실해졌다’는 e메일을 보내자고 해서 참 살벌했다.”

    “벌써 고시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다.”

    “군에서 제대해 복학하니까 학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어요. 200명이 수강하는 교양 강의에서 자리배정을 하는데, 무려 100명이나 ‘눈이 나쁘다’는 이유로 맨 앞자리를 원했어요. 학점을 잘 받아야 인기 전공을 딸 수 있으니까 교양과목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위기인 거죠.”(연세대 경영학과 02학번 양광모 군)

    “1학년 1학기부터 복수전공 강의를 듣는 친구들이 많아요. 인문학 전공으로는 취업이 어려우니까 경영학 복수전공을 하는 거죠. ‘맨큐의 경제학’을 들고 다니는 학생이 많아서 그 책을 ‘만인의 교양책’이라고 불러요.”(서강대 국제문화계열 07학번 정보희 양)

    학생운동, 사회문제 무관심 자기 이익이 우선

    “호기심에 공대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결국 안 듣기로 했어요. 학점을 잘 받아야 하는데 위험부담이 커서요.”(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1학년 윤수영 군)

    07학번의 술 문화도 예전 같지 않다. 술을 강권하는 문화는 많이 사라졌다. 올해 고려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사발식’을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했다고 한다. 연세대 공학계열 07학번 서정혁 군은 “게임 벌칙으로 술을 마실 때도 자신 없는 사람은 음료수를 마시면 된다”고 말했다. 연세대 인문계열 11반 06학번들은 후배들을 맞이하면서 아예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고 한다. 술을 강요하지 않기, FM(구호를 외치며 자기 소개하는 것) 시키지 않기, AM(FM의 에로 버전) 시키지 않기 등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07학번들에게 학생운동은 관심영역 밖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연세대 총학생회가 추진한 학칙 개정은 투표율 저조로 무산됐다. 처음으로 온라인 투표까지 동원했지만, 학생들의 무관심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음, 학생운동에는 별로 관심 없어요. 얼마 전에 등록금 투쟁 모임이 있었는데, 망설이다 안 갔어요. 워낙 사람이 적게 모여 제가 간다고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서요. 고등학교 때는 논술 준비 때문에 신문을 읽었지만, 요새는 읽지 않아요.”(서강대 국제문화계열 07학번 김진희 양)

    학생운동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은 적고 학점 취득과 취업 준비에만 몰두하는 자신들에 대해 대학생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일간지 명예기자, 벤처포럼, 2006년 독일월드컵 태극전사 서포터스, 대학생 국토대장정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이면서 많은 대학생 친구들을 만나온 홍익대 06학번 김윤규(전자전기공학부), 이정국(국어국문학) 군은 “우리 세대는 이기적”이라고 인정했다.

    “대학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진짜 친구는 아니다 싶을 때가 많아요. 다들 자기 이익이 먼저거든요.”(김윤규)

    “우리 세대는 남과 함께 교집합을 만들지 못해요. 서로 겹치는 영역이 있으면 교집합으로 남겨두는 게 아니라, 자기 영역으로 차지해버리려 하죠.”(이정국)

    북한에서 군사전문학교 재학 중에 탈북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탈북자 정모(28) 씨는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남한 대학생들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 학생들은 남몰래 모여서 나라의 문제점을 얘기해요. 하지만 걱정해도 망하는 나라가 북한이고, 걱정 안 해도 망하지 않는 나라가 남한 아닌가요? 그러니 대학생들이 사회문제에 관심 없다고 해서 탓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한편 김윤규 군은 “관심사 하나만으로 쉽고 빠르게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우리 세대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인터넷에 기댄 바가 크다. 김군이 다양한 대외활동을 벌일 수 있는 것도 대학생들에게 많은 활동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클럽 덕분이다.

    조건 따지지 않고 쉽고 빠르게 공동체 형성

    요즘 서울대 중앙도서관 통로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약속, 심플라이프’ 캠페인이 한창이다. ‘나는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이고도 공익적인 성격의 약속을 실명으로 공개하는 캠페인이다. ‘3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겠다’ ‘리포트를 베끼지 않겠다’ ‘도서관에서 하이힐 소리를 내지 않겠다’…. 학생들이 내건 약속들은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작지만 중요한’ 내용이 많았다. 이 캠페인을 기획한 김희선(국문과 4학년) 양은 “우리 세대가 그저 자기만 아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면서 “다만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장(場)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김인경 강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요즘 대학생들의 희망을 발견한다. ‘횡적 사고’에 강한 P세대로 인해, 저마다 중시하는 가치가 다른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사회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위계, 지위, 계층에 개의치 않고 어울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들은 거창한 것보다는 실천 가능한 것, 소소한 것에 의미를 두고 그것에서 기쁨을 찾죠. 기성세대는 쩨쩨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덕분에 다양성이 넘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07학번 의식 설문조사

    “사랑보다 경제력 우선 … 절충 방식으로 제사 지낼 것”


    “사랑보다 경제력이 배우자의 우선 조건” “동아리 활동보다는 학교수업이 우선” “전통방식 아닌 절충된 방식의 제사 고안해내겠다” ‘주간동아’가 취업포털 ‘커리어’(www.career.co.kr)와 함께 대학 1학년생 1032명을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이상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P세대(Pragmatic Generation)다운 특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자의 조건에서는 성격(41.7%)이라는 응답의 뒤를 경제력(29.1%), 사랑(20.8%) 순으로 이었다. 동아리 활동과 학교 수업이 중복될 때 무엇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서는 학교수업(82.9%)이 동아리 활동(17.1%)보다 월등히 앞섰다.

    부모 세대는 후손에게서 현재 방식대로 제사를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반수 이상(51.6%)이 ‘절충 방식의 제사를 고안해 지내겠다’고 답했으며 ‘전통방식으로 제사를 지내겠다’는 응답은 34.5%에 그쳤다. 아예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는 응답자도 144명이나 됐다. 준법의식 관련 질문에서도 ‘교통법규를 어길 수 있다’(54.9%)가 ‘그렇지 않다’(45.1%)보다 앞섰고, ‘편법으로 군 면제’ 질문에서는 ‘편법을 사용한다’(42.4%)는 응답 비율이 절반에 가까웠다.

    한편 해외 경험의 거의 없었던 80년대 대학생들과 달리 07학번들은 절반 가까이가 이미 해외여행 경험이 있었다. 1~3회 있다는 응답이 10명 중 3명에 가까웠으며 49명은 “7회 이상”이라고 답했다. 또한 이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국내 사건으로 외환위기 사태(28.4%), 2002년 한일월드컵(25.2%), 황우석 박사 논문조작 사건(18.2%),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14.9%) 순으로 꼽았다.


    박종철 몰라도 경쟁논리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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