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매운탕’
일산은 아주머니들의 세상이다. 수도권 중산층의 베드타운답게 평일 낮 음식점들은 아주머니들이 점령한다. 식당 주인들은 이들 일산 아주머니를 ‘꼬시기’ 위해 평일 점심메뉴 할인을 기본으로 서비스한다. 그래서 일산 아주머니들은 동네 음식점 정보에 빠삭하다. 가끔 아내가 이웃과 전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 거기 그 집은 양만 많지 맛은 아니더라. 어디에 시푸드 뷔페가 생겼는데 꽤 괜찮더라고. 점심은 할인되니까 이번 모임은 거기서 하자” 등의 식당 정보가 오간다.
600회 반죽으로 쫄깃한 맛 각별 ‘입에 착착’
며칠 전 아내와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밖에서 점심을 먹게 됐다. 정말 이럴 땐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집 근처 음식점들은 대부분 섭렵한 데다 맛있다고 단골로 삼은 집이 정해져 있으니 달리 갈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바로 그때 아내가 하는 말 “어, 있다. 동네 엄마들이 다 이 집 가봐라 하더라고. 이산포IC 나오는 길에 있는 메기매운탕집인데 우리만 안 갔나봐요.” “거기 메기매운탕집이 있었나?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는데….”
과연 있었다. 자유로 이산포IC를 빠져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GS주유소가 있는데 그 샛길로 들어서니 ‘메기 일번지’라는 큰 음식점이 나왔다. 이런 곳에 식당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어떻게들 알았는지 넓은 주차장엔 차 댈 데가 없을 만큼 손님이 많았다. 보아하니 일산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호수공원이나 파주 쪽으로 바람 쐬러 나왔다 들르는 외지인도 꽤 돼 보였다.
메뉴는 메기매운탕, 참게매운탕, 메기구이 같은 민물 음식이다. 종업원 말이 양어장을 직접 운영한다고 한다. 메기매운탕으로 시켰다. 대, 소밖에 없는데 소자를 앞에 두고 질려버렸다. 그다지 많이 먹지 않는 우리 식구들 양으로 따지면 5인분은 돼 보였다(매운탕이나 찜집에 가면 이게 늘 불만인데, 왜 인분으로 팔지 않을까. 대, 중, 소 3단계는 그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대, 소만 있는 것은 대자를 4인분 기준으로 보면 2인분은 팔지 않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메기 위에 미나리, 깻잎 등 채소가 올려지고 그 위에 자잘한 민물새우가 듬뿍 놓였다. 김이 오르자 채소부터 먹으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국물이 둔탁하지 않은 게 마음에 들었다. 대부분 메기매운탕은 특유의 흙내를 제거하기 위해 양념을 강하게 하는데 이 집은 최대한 가볍게 육수를 냈다. 메기 살도 잡냄새 없이 깨끗하다. 양식한 메기를 맑은 물에 며칠 둬 잡내를 제거한 게 아닌가 싶다.
웬만큼 먹었을 때쯤 수제비를 내왔다. 반죽 덩어리째 가져와 종업원이 그 자리에서 뜯어 넣는데 보통은 손님이 직접 하는 것 같았다. “이 집의 매력은 수제비래. 그것도 무한제공. 이런 거에 아줌마들이 깜빡 넘어가잖아!”
반죽이 아주 차지다. 첨가물을 넣지 않고 이만큼 치대려면 보통 노고가 들어가는 게 아니다. 식당 벽에 직원용이라며 이렇게 써 있다. “공고 수제비 반죽 횟수 1다라 600번, 2다라 1200번 남자직원 쉬는 날 각각 200번 추가. 정해진 횟수는 반드시 이행하시기 바람.” 다른 벽면에는 손님용으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너무너무 힘들게 직접 손으로 만든 손수제비 반죽입니다. 집에는 가져가지 마십시오. 부탁드립니다(더욱 쫀득하게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메기매운탕집인데 메기 자랑보다 수제비에 대한 ‘주의사항’이 더 눈에 띄어 신기했다. 이 때문인지 수제비가 쫄깃하고 밀가루 풋내 없이 깔끔한 게 입에 착 붙었다.
집에 돌아와 원고 쓰자고 인터넷 검색을 하니 두어 차례 방송 탄 집이었다. 그렇다면 일산 이웃들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소문난 집이란 말인가. 신문 방송 나간 집은 다루지 않기로 내심 정했는데, 하여간 난 이 집은 몰랐다는 것으로 스스로 변명 삼고 만다. 매운탕은 몰라도 수제비 하나는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