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어도 그냥저냥이다. 도시의 찌든 삶이 자연을 저만치 떨어뜨려놓은 게 분명하다. 며칠 전 지방 출장을 갔다가 매화를 보고도 ‘아, 벌써 봄이구나’ 하고 만다. 예전 같으면 꽃잎을 따다 연한 녹차에 올려 온몸으로 그 향을 음미했을 텐데….
몇 해 전 요리사 임지호 씨 음식점에서였다. 밥을 다 먹고 차 한잔 마시려고 마주 앉았는데 임지호 씨가 자랑하듯 천주머니 하나를 들고 나왔다. 안에는 한지로 곱게 싼 매화 꽃잎이 들어 있었다.
“남쪽 바닷가에 갔는데 마침 매화가 만발했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하룻밤 잤지요. 새벽에 해무가 조용히 깔렸는데 그때 꽃잎 몇 장을 땄습니다. 매화는 해뜨면 향이 옅어져요. 그걸 방바닥에 깔아 말렸습니다.”
녹차와 함께 우려낸 매화는 남쪽 바다 향까지 담고 있었다. 잠시 스쳐가는 듯한 봄을 조금이나마 연장하려고 꽃잎을 말렸던 것일까. 난 매화보다 그의 풍류에 취해 지난 봄날들을 추억했더랬다.
약간의 단맛과 새콤함 … 꽃향기 즐기는 행위
고향 뒷산은 돌산인 데다 습한 골이 많아 봄이면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었다. 형들을 따라 새벽운동 삼아 뒷산을 자주 올랐는데 그때 진달래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특별한 맛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은은히 퍼지는 향은 아직도 내 입 안에 남아 있다. 이걸 흔히 화전으로 부치는데 기름과 불기운으로 모양만 그럴듯할 뿐 향은 다 달아나 봄을 오롯이 느끼기에는 미흡하다.
이처럼 먹을 수 있는 꽃이 많다. 국화 진달래 호박꽃 잇꽃 딸기꽃 아카시아꽃 동백꽃 민들레꽃 복숭아꽃 살구꽃 연꽃 목련 장미 제비꽃 난꽃 유채꽃 등꽃 귤꽃 등등. 10여 년 전부터 이 꽃들로 음식을 만들어내는 식당이 생겨났는데 꽃을 먹는다는 게 어색한 일인지 장사가 잘된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꽃을 먹는다고는 하지만 그 꽃에서 우리가 얻는 감각은 혀로 인한 게 아니라 대부분 코를 통해 들이는 것이다. 앞에 거론한 ‘식용 꽃’을 하나하나 음미해보면 약간의 단맛과 새콤한 맛 정도만 있을 뿐 대부분의 맛 요소는 입천장 너머 콧속으로 올라오는 향이다. 그러니까 꽃을 먹는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꽃의 향을 즐기는 행위인 것이다.
벚꽃이 필 때면 진해가 군항제로 온통 난리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40여 년 전에도 진해는 벚꽃이 피면 난리가 났었다. 지금은 군항제라 불리지만 그때는 ‘벚꽃장’이라 했다. 벚꽃 피는 무렵에 열리는 난장이라는 뜻이다. 이때면 여인네들은 벚꽃보다 화사한 한복을 차려입고, 그보다 더 화사한 양산을 받쳐들고는 봄나들이를 나갔다(아마 일본 풍습이 전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린 내게 벚꽃장은 참으로 흥분되는 행사였다. 곡마단을 볼 수 있고 솜사탕이나 사이다 같은 별스런 군것질거리를 먹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어른들은 벚나무 밑에 자리 펴고 싸온 음식과 술로 낮부터 거나하게 즐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나 싶다.
청소년기부터는 벚꽃장에 갈 일이 없었다. 진해 군항제라는 전국적인 행사로 바뀌면서 ‘가봤자 고생만 한다’고 어른들도 가지 않았고 나도 덩달아 가지 못했다. 그러니까 진해 벚꽃은 어릴 적 잠시 본 이후 40여 년간 사진이나 텔레비전에서 볼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벚꽃만 보면 설레고, 왠지 그 아래에서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벚꽃장에 먹을 것 파는 장사치들이 난장을 벌였는데 그때 먹었던 음식은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솜사탕과 사이다가 전부다.
어머니의 도시락 음식도 김밥이었는지 유부초밥이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그런데 그날 벚꽃이 흩날리면서 뿜어냈던 향은 오롯이 내 몸에 배어 있다. 벚꽃의 향은 흐려서 언뜻언뜻 코끝을 스치고 말 뿐이다. 그런데 꽃잎이 바람에 와르르 떨어질 때 그 속에서 눈 감고 꽃바람에 몸을 맡기면 그 여린 향이 온 우주를 감싼다. 남녘에서 올라오는 벚꽃 소식에 식욕이 자꾸 돋는 것은 그 옛날 벚꽃장에서 먹었던 것이 흩날리는 꽃바람이었기 때문일까.
몇 해 전 요리사 임지호 씨 음식점에서였다. 밥을 다 먹고 차 한잔 마시려고 마주 앉았는데 임지호 씨가 자랑하듯 천주머니 하나를 들고 나왔다. 안에는 한지로 곱게 싼 매화 꽃잎이 들어 있었다.
“남쪽 바닷가에 갔는데 마침 매화가 만발했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하룻밤 잤지요. 새벽에 해무가 조용히 깔렸는데 그때 꽃잎 몇 장을 땄습니다. 매화는 해뜨면 향이 옅어져요. 그걸 방바닥에 깔아 말렸습니다.”
녹차와 함께 우려낸 매화는 남쪽 바다 향까지 담고 있었다. 잠시 스쳐가는 듯한 봄을 조금이나마 연장하려고 꽃잎을 말렸던 것일까. 난 매화보다 그의 풍류에 취해 지난 봄날들을 추억했더랬다.
약간의 단맛과 새콤함 … 꽃향기 즐기는 행위
고향 뒷산은 돌산인 데다 습한 골이 많아 봄이면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었다. 형들을 따라 새벽운동 삼아 뒷산을 자주 올랐는데 그때 진달래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특별한 맛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은은히 퍼지는 향은 아직도 내 입 안에 남아 있다. 이걸 흔히 화전으로 부치는데 기름과 불기운으로 모양만 그럴듯할 뿐 향은 다 달아나 봄을 오롯이 느끼기에는 미흡하다.
이처럼 먹을 수 있는 꽃이 많다. 국화 진달래 호박꽃 잇꽃 딸기꽃 아카시아꽃 동백꽃 민들레꽃 복숭아꽃 살구꽃 연꽃 목련 장미 제비꽃 난꽃 유채꽃 등꽃 귤꽃 등등. 10여 년 전부터 이 꽃들로 음식을 만들어내는 식당이 생겨났는데 꽃을 먹는다는 게 어색한 일인지 장사가 잘된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꽃을 먹는다고는 하지만 그 꽃에서 우리가 얻는 감각은 혀로 인한 게 아니라 대부분 코를 통해 들이는 것이다. 앞에 거론한 ‘식용 꽃’을 하나하나 음미해보면 약간의 단맛과 새콤한 맛 정도만 있을 뿐 대부분의 맛 요소는 입천장 너머 콧속으로 올라오는 향이다. 그러니까 꽃을 먹는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꽃의 향을 즐기는 행위인 것이다.
벚꽃이 필 때면 진해가 군항제로 온통 난리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40여 년 전에도 진해는 벚꽃이 피면 난리가 났었다. 지금은 군항제라 불리지만 그때는 ‘벚꽃장’이라 했다. 벚꽃 피는 무렵에 열리는 난장이라는 뜻이다. 이때면 여인네들은 벚꽃보다 화사한 한복을 차려입고, 그보다 더 화사한 양산을 받쳐들고는 봄나들이를 나갔다(아마 일본 풍습이 전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린 내게 벚꽃장은 참으로 흥분되는 행사였다. 곡마단을 볼 수 있고 솜사탕이나 사이다 같은 별스런 군것질거리를 먹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어른들은 벚나무 밑에 자리 펴고 싸온 음식과 술로 낮부터 거나하게 즐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나 싶다.
청소년기부터는 벚꽃장에 갈 일이 없었다. 진해 군항제라는 전국적인 행사로 바뀌면서 ‘가봤자 고생만 한다’고 어른들도 가지 않았고 나도 덩달아 가지 못했다. 그러니까 진해 벚꽃은 어릴 적 잠시 본 이후 40여 년간 사진이나 텔레비전에서 볼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벚꽃만 보면 설레고, 왠지 그 아래에서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벚꽃장에 먹을 것 파는 장사치들이 난장을 벌였는데 그때 먹었던 음식은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솜사탕과 사이다가 전부다.
어머니의 도시락 음식도 김밥이었는지 유부초밥이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그런데 그날 벚꽃이 흩날리면서 뿜어냈던 향은 오롯이 내 몸에 배어 있다. 벚꽃의 향은 흐려서 언뜻언뜻 코끝을 스치고 말 뿐이다. 그런데 꽃잎이 바람에 와르르 떨어질 때 그 속에서 눈 감고 꽃바람에 몸을 맡기면 그 여린 향이 온 우주를 감싼다. 남녘에서 올라오는 벚꽃 소식에 식욕이 자꾸 돋는 것은 그 옛날 벚꽃장에서 먹었던 것이 흩날리는 꽃바람이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