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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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할수록 더 끌리는 ‘명당’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7-03-26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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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면할수록 더 끌리는 ‘명당’
    아직도 고리타분하게 풍수를 따지는 사람이 있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같은 값이면 지기(地氣)가 좋은 곳에 살고 싶어한다. 또 화장(火葬)하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고 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기왕이면 명당에 모시려고 한다. 땅이 길흉화복을 부르고 자손 번성에 영향을 준다는데, 어느 누가 쉽게 풍수를 외면할 수 있을까. 특히 권력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풍수에 대한 집착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풍수학자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와 김두규 우석대 교수의 책이 같은 시기에 나왔다. 그러나 보는 시선은 전혀 다르다. 최 전 교수는 인간과 도시풍수를 살피는 반면, 김 교수는 올 대선 유력주자 13명의 생가와 선영에 주목한다.

    먼저 반갑다. 땅을 보는 눈이 탁월한 최 전 교수가 몇 년간의 깊은 잠을 깨고 돌아왔다. 그러나 컴백 첫마디가 ‘나, 이제 풍수를 떠나리’다. 지난 세월 풍수를 안다며 떠들고 다닌 것이 부끄럽다고 털어놓는다. 이제부터는 땅을 보는 전통적인 시선을 인간과 도시로 돌리겠다는 선언이다.

    “명당도 변하는 거야?” 최 전 교수는 우리의 사회문화적 가치가 변한 만큼 명당 개념도 바뀔 수밖에 없음에 주목한다. 인구 대부분이 도시에 몰려 사는 현실에서 ‘배산임수’ 조건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제 명당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편안히 쉴 수 있는 집이라면 그게 바로 ‘도시의 명당’이라고 설명한다. 잘 꾸며진 호화주택이 아니라 각자의 몸에 익숙한 곳이다.

    교과서에 ‘풍수란 봉건 도배들의 터잡기 땅놀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북한에서도 풍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에 눈길이 간다. 하지만 최 교수가 방북 답사 때 만난 북한의 젊은 안내원들의 대답에서 풍수의 질긴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풍수의 풍자도 모릅네다. 하지만 할아버지 산소는 명당에 아주 잘 모셨습네다.”



    ‘13마리 용의 비밀’은 일단 흥미를 자극한다. 저자가 답사해본 결과 유력 대선주자 13명의 생가와 선영은 일반인의 그것보다 월등히 뛰어났다고 한다.

    한나라당 유력 주자들의 경우는 어떨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청계천을 통해 스스로 대운을 개척했다. 이 전 시장에게 이번 대선은 서울의 명당수를 되살린 업적을 천심(天心)에 평가받는 것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선영은 기가 아직도 강할 뿐 아니라, 생가의 경우 위기의 시대에 승승장구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 정국이 혼란스러울수록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당장은 기가 강하지 않지만 기다림을 통해 여유롭게 대권을 성취해가는 형국이다.”

    범여권은 어떨까.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손 전 지사와 마찬가지로 통일시대를 준비할 미래형 지도자라고 볼 수 있다. 천청배 전 장관도 당장보다는 미래를 준비해가는 지도자의 면모를 풍긴다. 주목할 것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다. 아직 정치와 선을 긋고 있지만 생가의 강력한 기를 받고 있다. 하지만 ‘울리지 않는 종’이다. 누군가 나서서 종을 울려준다면 고건 전 총리의 뒤를 이을 재목이다.” 김 교수는 “풍수로 따지면 차려진 밥상을 스스로 물린 고 전 총리가 가장 앞선다”고 말한다. 생가와 선영이 즉시발복의 강한 기운을 품고 있어 역대 대통령들의 특징을 빼닮았다고 한다.

    풍수를 과학의 잣대로 들이댈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조상의 지혜가 농축된 인문학이다. 난개발로 신음하는 우리 땅을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다면, 두 책의 역할은 충분하다.

    최창조 지음/ 판미동 펴냄/ 392쪽/ 1만5000원

    김두규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272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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